"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크게 피해를 보진 않거든요.”
“그냥 저는 제 대에서 멸종을 선택한 겁니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기 위해서 아이를 원하지 않아요.”
‘아이 안 낳는 삶’은 지극히 이기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생물학적 이유)’ 못 낳은 분들은 예외입니다.
낳을 수 있음에도 안 낳기를 ‘스스로 선택’한 부류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선,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시켜드려야겠습니다.
‘자발적 멸종’을 선택하건 그건 자유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멸종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는 독립적 삶을 살 경우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산 속에 들어가서 풀 뜯어 먹으며 살다가 혼자 알아서 땅의 거름이 되는 삶 말입니다.
그렇지 않는 삶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누군가’는 누가 낳았을까요. 온전한 ‘자발적 멸종’은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돈 많이 벌어서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살다 죽으면 됩니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세요. 내 집에 불이 났을 때 불은 누가 끄나요?
밤길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은 누구 덕분인가요?
호전적인 세력과의 정전상태에서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것은 누구 덕분인가요?
내가 보는 TV, 내가 타는 자동차는 누가 고쳐주고, 전기는 누가 공급하나요?
주유소는 누가 운영하나요?
아프면 병원에서 나를 진료하고 치료해주는 이는 누구인가요?
한마디로 ‘소는 누가 키우나요’
산 속에서 문명의 혜택들과 담 쌓고 살다 죽지 않는다면,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멸종은 불가능합니다.
저출산이 지속되면 앞으로 곧 1대1 부양의 시대가 옵니다.
젊은 세대 1인이 자기도 벌어먹고 살면서 노인세대 1인을 추가로 부양해야 합니다.
결국 합계출산률 2.0이 되어야 인간은 지속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식을 낳지 않는 ‘거창한’ 자발적 멸종을 선택한 이들도,
결국 늙고 병들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늘고 병들지 않아도, 살아가는 내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결국 내가 자식 안 낳고 편하게 살면서 노후까지 남의 자식에게 의탁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자식을 셋 낳았습니다. 어떤 이는 한명도 안 낳았습니다.
누구는 죽도록 자식 키워, 자식 안 낳고 자기들만 편하게 살아온
생면부지의 늙은 몸뚱이들까지 부양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요? 그럼 다 같이 낳지 말고 살면 된다고요?
그걸 원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로 하여금 모성(母性) 보호를 위해 노력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이를 낳기 때문에 여성은 보호해야 할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해서 강제적 국방의 의무도 순전히 남자의 몫입니다.
여성은 강제가 아닌 선택입니다.
정당에서 공천할 때 여성비율을 의무적으로 할당한다던가,
여성 신인에게 추가 가산점을 준다거나 하는 식의 숱한 여성우대 정책들도 모두 그렇습니다.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의 저자 엘런 L. 워커는
“아이를 낳는 대신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 두 마리 키우면서 사는 삶이 ‘완전한 삶’인지 나는 여전히 의문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모가 되는 일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은 번지르르 하고 듣기에도 좋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부모가 되는 일은 아무나 제 맘대로 선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의무도 아닙니다.
그것이 축복이라면 너무 고리타분한 소리일까요.
‘낳을 수 있는(생물학적)’ 부모가 아이를 낳는 일은,
선택이나 의무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禮儀), 또는 의무라고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일출의 장엄함이 아침 내내 계속되지 않으며
비가 영원히 내리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한밤중까지 이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땅과 하늘과 천둥,
바람과 불,
호수와 산과 물,
이런 것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만일 그것들마저 사라진다면
인간의 꿈이 계속될 수 있을까
인간의 환상이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라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다
-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의 찬송가 작사가이자 시인인 세실 프란시스 알렉산더(Cecil Frances Alexander)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