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하나가 떨어진다. 봄날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나풀거리며 호랑나비 날개 하나가 살며시 내려앉는다. 겨우 보름정도의 짧은 생이건만 온전히 살아보기도 전에 사고를 당한 듯하다. 힘겹게 껍질을 벗고 젖은 날개를 펼치던 순간의 환희와 꽃향기에 취해 달콤했던 기억들이 아쉬워서일까. 날개는 떨어졌어도 빛을 잃지 않는다.
떨어진 날개 위로, 남편이란 날개의 흔적만을 껴안고 살아온 어머니의 깊은 외로움이 스쳐간다.
이사를 한 후, 참새만한 호랑나비가 집 안으로 들어와서 방마다 날아다닌 일이 있었다. 마당에서도 빙빙 돌며 한참을 머물자 어머니는 “이사했다고 새 집 구경하러 왔나보네.”라며 호랑나비를 시아버지의 환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호랑나비는 어머니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산소에 꽃을 심으면 붉은 꽃을 좋아한다는 호랑나비가 더 많이 오겠지.’ 우리는 나비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해 시아버지 산소 앞에 영산홍을 수백그루 무리지어 필 수 있게 심었다. 영산홍이 만발하는 4월 말쯤 주말이면 가족들 모두가 산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꽃이 만발해서일까. 산소엔 갈 때마다 어디선가 큰 호랑나비가 날아들곤 한다. 어머니는 “아이구 니들 아부지가 우릴 보러 또 왔다.”며 미소로 반긴다. 나도 왠지 시아버지를 만난 듯 반가운 착각에 빠지곤 한다. 산소에서 우리 곁을 맴도는 나비를 보면서 어머니의 그리움은 영산홍 붉은 꽃빛처럼 더 진해졌으리라.
영산홍 꽃무리 위를 팔랑팔랑 날고 있는 호랑나비, 가만히 손가락을 내밀었더니 앉을 듯 말 듯하며 내 주위를 빙빙 돈다. 어머니도 나처럼 손을 내밀고 나비가 앉아 주기를 기다렸다. 간절함마저 엿보이는 모습이 애잔하다. 어머니는 아실까? 스치듯 만났다가 떨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며 한가롭게 노니는 두 마리의 나비가 당신 앞에서 진한 사랑의 유희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산소 앞에서 어머니는 추억을 풀어놓는다. 서른한 살 꽃다운 아내와 어린 세 아들을 두고, 37년이란 너무나 짧은 생을 살고 가신 시아버지. “내가 좋아하는 호떡을 사서 식을까봐 가슴에 품고 달려와서 시어른들 몰래 손에 쥐어줬어. 그때처럼 맛있는 호떡은 없더라. 군에서 휴가 나왔을 땐 괜히 부끄러워 뒤뜰에 숨어있으면 살며시 와서 보고 싶었다고 안아줬지. 얼마 전엔 꿈에 팔베개를 해줬는데 너무 생생하더라.” 가슴 깊이 간직해온 추억들은 어머니가 어린 아들들과 살아갈 수 있었던 마음 속 버팀목이었으리라.
두 분이 함께 한 세월은 겨우 십여 년, 다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서로의 날개가 되어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행복을 꿈꾸었을 텐데. 남편이란 날개를 잃고, 지난한 세월을 홀로 견뎌낸 아내를 만나기 위해 시아버지는 해마다 호랑나비로 다시 환생해 오시는 걸까.
나비 두 마리가 나풀나풀 춤을 춘다. “아부지가 여자 친구도 데려왔네.”라며 미소를 짓는 어머니. 오십 년을 넘게 시아버지의 추억만을 안고 살아온 당신의 얼굴엔 그저 아련한 그리움만이 가득하다. 다른 세상에서나마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진정한 염원뿐이리라. 남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호랑나비에게라도 풀어내고 싶은 어머니는 영산홍 꽃잎만 하릴없이 더듬었다.
영원히 잃어버린 어머니의 날개 하나, 이젠 장성한 세 아들과 가족들이 든든한 새 날개가 아닐까. 오랜 세월 허허로웠던 마음속에 듬직한 손주들의 날갯짓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초록빛 잔디는 실바람에 살랑이고 어머니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도 호랑나비 날개 위로 함께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