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연말에 아내랑 개 때문에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아내는 백구를 싫어했다. 백구가 아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강아지 치송을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강아지들이 어릴 때는 진자리 마른자리 골라가며 잘 키우지만 젖떼기 할 정도로 자라면 강아지가 밥을 굶든 말든 제 밥그릇을 허락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먹이 앞에서는 제 새끼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어미인 백구보다 누렁이가 더 강아지들을 챙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렁이가 더 예쁘다는 것이다.
하여튼 누렁이만 유독 챙기는 아내가 얄미워서 그랬는지, 강아지가 세 마리나 되니 수캐는 팔아치워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랬는지, 그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아내에게 누렁이와 암캐 백구를 팔자고 했던 것이다. 집이 개판이 되겠다면서 강아지 중에 괜찮은 한 놈만 키우고 다 팔자고 했더니 아내가 정색을 하며 받아쳤다. 강아지만 다 남 주고 누렁이랑 백구만 키우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렁이도 팔아치우고 백구만 키우자고 했더니 음양의 조화 운운하면서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느냐.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낮은 곳이 있으면 높은 곳이 있고, 긴 것이 있으면 짧은 것이 있어야 정상인데.’ 하면서 개도 짝이 있어야 외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백구가 누렁이는 남자 취급도 안 하고 새서방 얻어 강아지 낳는 걸 뻔히 봤지 않느냐고 했더니 암캐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수캐 잘못이지 암캐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그때는 무심히 들었던 아내의 말에 씨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그 자신의 문제란 말이 아닌가. 아내를 밖으로 몰아낸 것도 자신이란 뜻 아닌가.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올 때까지 책을 읽으며 기다릴 참이다.
아내의 서재에서 책을 한 권 뽑았다.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다. 그는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 다스리기에 좋은 책을 뽑았다고 흐뭇해하면서 늙은 스님의 산골 이야기를 읽는데 자꾸 창밖에 신경이 쓰인다. 간헐 적으로 누렁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강아지의 깽깽거리는 비명 소리도 들렸다. 저 놈이 오랜만에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구나. 그래, 신나게 뛰어놀아라. 낼 아침이면 또 줄에 묶일 신세니. 너의 안쥔처럼 맘껏 놀아봐라 어디. 얄밉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한 기분으로 개들의 아우성을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여보, 여보 옷!”
잠결에 아내의 새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눈을 번쩍 떴다. 아내의 날카로운 비명이 집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난 그가 창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지 봐. 눈이 있으면 보란 말이야.”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내의 쇳소리만 어두운 밤하늘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었다.
그제야 깜짝 놀란 그는 거실로 나와 현관 앞에 있는 외등을 켜고 신발을 질질 끌며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불이 환히 밝혀지자 그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려버렸다. 한 마디로 끔찍했다. 잔디밭은 온통 불그스름한 피투성이 흔적이고, 여기저기 벌겋게 만신창이로 물어뜯긴 강아지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세상에, 세상에 어쩜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강아지들이 다 죽었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뭐했어. 집에 있으면서 뭐 했냐 말이야. 강아지가 살려달라고 우는 소리도 못 듣고 뭐 했냐 말이야. 누렁이 좀 잡아매라고 했더니 그것도 안 하고 뭐 했냐고. 이게 뭐야. 정초부터 이게 뭐야.”
그때였다. 입가와 목 주변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누렁이는 그저 돌아온 안쥔이 좋다고 아내에게 달려들어 뜀뛰기를 하며 아내의 손을 핥으려다가 아내가 ‘저리가 이 개새끼야.’ 하면서 발로 걷어찼다. 누렁이가 깨갱하면서 물러나 그에게 달려왔다.
“뭐, 개새끼? 나보고 하는 소리야? 이놈의 개새끼가 나보다 낫단 말이지?”
순간 그는 표범처럼 사납게 으르렁거리면서 누렁이의 가슴팍을 냅다 발로 걷어찼다. 누렁이는 또 깨앵 비명을 지르면서 마당에 가서 철버덕 떨어졌다. 그는 ‘이놈의 개새끼 패 쥑이 삔다.’며 달려가 개에게 발길질을 해 대자 개는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켜 마당 구석으로 도망을 쳤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던 그는 아내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당신은 뭐가 그리 급해서 그냥 갔노. 개 묶어 놓고 갈 시간도 없더나. 어떤 놈이 당신 혼을 쏙 빼 놨노. 내가, 니 서방 맞기는 한 기가? 당신 뭐 하는 여자고? 아무리 내가 삼식이 아저씨가 됐다지만 당신보고 삼시세끼 챙기라고 한 적 있어? 내 손으로 밥 차려 먹고 설거지해 놓고 당신 기다렸지. 그런 나를 개새끼에 비유해? 여태 돈 벌어주고 산 보답이 이거야?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이 말이지. 그래 우리 이혼 하자. 이혼 해. 각방 쓰자고 할 때 알아봤어. 인자 힘없고 돈 못 벌어다주니 쓸모가 없다 이거지.”
그가 성질이 나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자 아내는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 그가 고함을 지르던지 말든지, 발에 걸리는 돌멩이나 나무 막대를 차든지 말든지 아내는 입을 봉한 채 장갑을 끼고 오더니 강아지의 시체를 수습하여 텃밭 귀퉁이에 갖다 놓았다. 가만히 보니 아내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장갑 낀 손등으로 자꾸 눈을 닦는 것을 보니 화가 나서 펄펄 뛰던 그의 성질이 그만 봄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그는 혼자 분이 나서 펄펄 뛴 것이 열없어서 슬그머니 곳간으로 향했다.
그는 곡괭이와 삽을 찾아들고 와서 텃밭 아래 둔덕의 매화나무 옆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꽁꽁 얼어서 구덩이 파기가 수월찮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땅속은 파슬파슬했다. 그래, 벌써 입춘이 낼 모래구나. 24절기는 신통방통하게 잘 맞는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구덩이를 파내고, 그곳에 강아지 시체를 파묻었다. 강아지 무덤을 만드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아내가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누렁이가 강아지들 시샘해서 다 물어 죽인 것 같아요. 참 당신도 샘 낼 걸 내야지. 나도 생각해 봤는데. 삼식이 아저씨 보기 싫다고 밖으로 나돈 것이 아니라 그냥 사는 게 허전해서 그랬어요. 나이 들면 친구가 좋다기에. 근데 아닙디다. 여전히 허전해요. 집이 편하고요. 당신이 있어 든든합디다. 우리 합칩시다. 각방 쓰니 기름도 많이 들고.”
아내의 목소리가 달달했다.
그는 갑자기 마당 전체가 아프리카의 푸른 초원으로 뒤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내의 손을 확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 어딘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좋은 년이란 개년이 맞긴 맞는 것 같군.’ 그는 한 마리 강인한 표범이 되어 포획한 영양을 물고 당당하고 느긋한 자세로 초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