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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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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10. 2022

72. 거의 맞음

거의 맞음 

     

    우리 속담에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있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농부가 ‘날이 자꾸 추워진다는데 배추 뺀 김에 김장할까?’ 묻는다. ‘좋지. 거의 맞음 수준이네.’ 흔쾌히 대답했다. 농부 눈치만 보던 중이다. 어차피 김장은 해야 할 것, 누가 와서 도와주지도 않을 텐데. 시작한 김에 끝을 보고 싶은데 농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김장이다. 날씨도 풀렸다. 햇살 나면 배추를 절이기로 했다. 덕분에 도랑 치고 가재 잡게 됐다. 우선 냉동실, 냉장실에 쟁여놨던 김장에 쓸 재료를 꺼내 육수부터 우렸다. 찹쌀 풀도 쑤었다.     


 마침 청년이 왔다. 농부는 청년과 연말정산을 끝냈다. 올해 단감농사는 예행연습이었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본전 치기라도 했다면 괜찮다. 내년 농사는 잘 지어보겠다고 한다. 우리 집 대봉이 몇 박스 안 나와 청년의 대봉 몇 박스를 팔아줬다. 대봉이 풍년이란다. 대봉 농가는 밑천도 못 건졌다는 소문이다. 청년이 갖다 준 대봉 가격을 후하게 쳐줬다. 청년도 대봉 값을 알기에 고맙고 감사하단다. 더 팔아주고 싶었는데 주문이 뚝 끊어졌다. 


 청년을 보내고 배추를 쪼갰다. 농부는 예리하게 벼린 칼인데도 잘 안 들어간다며 ‘여자들은 이런 배추 쪼개지도 못하겠다.’고 한다. 쪼갠 배추를 소금물에 담갔다가 통에 담는다. ‘힘든 일은 당신이 다하는데 왜 내 숨이 차?’했더니 ‘숨이라도 차야 공평하지.’ 오가는 대화가 막상막하다. ‘나는 마님인데 당신은?’하면 ‘당신은 여왕이고 나는 시종이지.’하여 웃는다. ‘좋은 건 넘 다 주고 비루먹은 것만 우리가 먹네.’ 좋은 것만 골라 친구 집에 갖다 준 것을 빗댄 말이다. ‘당신이 김장 적게 하라했잖아. 남 주는 건데 좋은 걸 줘야지. 얄궂은 것 주고 욕먹을래?’ 하니 ‘ 니 말이 맞소.’하는데 어째 말에 어패가 느껴진다. 


 저장고에 넣은 단감도 도매상에 올려야 할 것 같다. 서울 가락동 공판장 시세를 살폈다. 쑥 올라갔던 가격이 살금살금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 올리면 손핸데. 망설인다.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이다. 단감농사 마무리를 짓고 홀가분해지고 싶어서 서두는 편이다. 내년 연말까지 미뤄볼까? 해마다 저장단감 철이 돌아오면 가격이 높아진다. 기다려봐? ‘도매상에 올릴까 말까?’ 농부가 묻는다. ‘당신 뜻대로 하소.’ 오십 보 백 보다. 내 복대로 산다. 욕심내려 놓기.


 점심은 동네에 국수 먹으러 갔다. 오십 대 예쁜 여사장이 국수를 만다. 그 집 국수는 싸고 맛있다. 읍내 손님까지 찾아올 정도로 소문이 났다. 손 두부 한 접시에 국수 두 그릇 15천 원이면 푸지다. 육수가 차다. ‘사장님 냉국수 아니고 온국수 시켰는데요.’ 농담을 던졌다. ‘아침에 육수를 끓여 온수 통에 담아놨는데 전기선이 빠져있네요. 미안해요.’ 난 냉국수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 생각한 거다. 겨울이니 따끈따끈한 육수가 낫다. 


 국숫집을 나서다 방앗간 집 텃밭을 봤다. 배추밭두둑은 우거지만 널렸는데 무밭 두둑에는  무가 가득 있다. 뽑아서 방치했다. 굵기도 하다. 아깝다. 적기에 뽑아 들이지 못해 얼어버린 모양이다. ‘언무도 채 썰어 나물로 볶으면 괜찮은데. 놔뒀다가 육수 우릴 때 쓰면 되는데.’ 애써 가꾼 것이 버려져있어 애가 탄다. 그 집 할머니가 아픈가. 젊어서부터 환자였던 할머니다.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지만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본 할머니는 건강해 보였다. 부지런하신 어른인데 무를 얼리다니. 탈이 생겼지 싶다. 


 도시 삶은 돈 없으면 무 한 뿌리 공짜가 없는데 시골에서는 흔해서 썩힌다. 촌로는 애써 가꾼 채소도 나누어주기 힘들다. 다듬어서 포장해 보내는 것도 힘겹다. 도시 친인척이나 자식들에게 보내는 것도 노인이 되면 힘에 부친다. 자급자족할 정도로 조금만 심어 가꾸는 게 최선책이다. 저 무를 아깝다 생각할 사람이라면 촌부 거나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거다. 언무도 녹였다가 썰어 말려서 차를 끓여도 좋다. 이틀 정도 언 것이라 속까지 꽁꽁 얼진 않았을 텐데. 가꾼 공이 아깝다. 


 농부가 목욕탕 가잔다. ‘웬일이래?’ 반겼다. 힘든 일을 혼자 도맡으니 고단하기도 할 게다. 고단한 사지를 뜨거운 물에서 풀어주는 것도 약이다. 농사 많이 지을 때는 일 끝나자마자 목욕탕이든 찜질방이든 가야 했다. 읍내에 수영장이 생기면서 단골손님이 되었다. 마침 읍내 지인이 단감 한 박스 갖다 달란다. ‘아우님 단감은 참 달고 연해서 자꾸 찾네. 내가 단골 맞지?’ 그럼요. 가을 들어 대여섯 박스째다. 단골이란 말이 참 정겹다. 단감 배달하고 목욕탕에 갔다.


 읍내 목욕탕 중에 카드 결제를 안 받는 목욕탕이 몇 군데 있다. 그 목욕탕도 현금만 받는다. 현금이 모자라 카드를 내밀자 부가세를 징수한다. 목욕 비 6천 원에 부가세 600원. 둘이 13, 200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설이 더 좋은 대형 목욕탕 갈 걸. 카드 결제 거부하는 것도 카드 결제 시 부가세 징수하는 것도 불법 아닌가? 부가세 징수하는 것이 맞나? 한 나라의 지도자층도 법 운운하면서 제멋대로 하는데 이득을 좇는 개인사니 따따부따 한들 씨알이나 먹히겠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꿀꿀함도 냉 온욕을 하며 씻어내고 나오자 농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오늘 통닭 한 마리 어때? 맥주랑 막걸리 어때?” 

 “좋지요. 어째 요즘 당신하고 나는 거의 맞음 수준이네.”  

 부부가 오래 살다 보니 거의 맞음이 되어간다. 거의 맞음 덕에 기분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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