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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07. 2021

맥주의 여신, 힐데가르트 수녀님

독일 맥주 기행 중

밤베르크

독일 여행의 추억은 대부분 맥주와 소시지와 함께였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맥주는 밤베르크 슐렝캐를라에서 들이킨 훈제 맥주 Rauch Bier였다. 관련한 여행기들은 차고도 넘치니 오늘은 맥주 이야기를 거슬러 가다 만난 수녀님 한 분을 얘기하고 싶다. 바로 힐데가르트 수녀다.

 

힐데가르트 수녀(hildegard von bingen 1098~1179)는 중세의 '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할만한 분이다. 신학뿐만 아니라 작곡도 했고, 의학, 생물학, 식물학, 약초학, 언어학  등 다방면에 걸쳐 연구를 한 분이다. 시인이고도 했고 카운슬러, 예술가, 작가로도 살았다. 당연히 기성교회의 규율도 뛰어넘어 신앙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파문당한 청년의 장례를 집례 했고, 반대를 뚫고 주검을 수도원 영내에 묻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엔 남성 사제에게만 허용되던 강론도 펼쳤고 수녀들에게 신부들과 같은 미사복을 착용토록 하는 결정도 내렸다. 여성 수녀원을 만들어 이런 일을 추진한 분이니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 간 분이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일까 싶은 분은 그때가 중세 시대임을 떠올려보시라. 영화 <위대한 계시>가 그녀의 인생을 다룬 작품이다.

"땅은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를 자라게 합니다. 그걸 쓸모 있고 없게 만드는 건 인간의 행보입니다. 인간이 선한 일을 행하면 만물은 옳은 길로 갈 것입니다.  반면 악한 일을 행하면 만물은 등을 돌려 그를 응징할 것입니다. 만물이 없인 인간도 없습니다" 영화 <위대한 계시> 중 힐데가르트 수녀의 말이다.

수녀님의 맥주 연구 이야기를 짚어보려 한다 했는데, 수도원에서  맥주냐고  분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사실 수도원 맥주는 유명하다. 트라피스트 비어(Trappist Beer) 지금도 수도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파울라너' '레페' 그중 상업화가 이뤄진 맥주의 브랜드다.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체스코  파올라(Francesco di Paola) 기리는 기사단이 독일 뮌헨에 정착한  1634년부터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파울라너 맥주의 기원이다.

독일의 수도원

이렇게 수도원 맥주가 널리 퍼진 데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대제(742-814)의 역할도 컸다. 카를 대제는 전쟁터에 참나무통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술고래였다. 유럽을 통일하고는 제국 곳곳에 수도원을 짓고 부하들을 수도원장으로 파견했다. 그리고 맥주 양조 독점권을 주었다. 그 후 카를 대제가 수도원을 방문할 때마다 수도원에선 카를 대제를 술로 대접했다. 연구가 뒤따른 이유다.


그리고  중세 수도원은 순례자들의 숙박시설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도원의 규칙은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였다. 당연히 맥주를 대접하기 위한 양조장을 짓고 품질 향상에 노력했다. 판매도 했다. 유럽 북부는 기후가 서늘해 포도보다는 보리 재배가 쉬운 곳이다.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를 중심으로 맥주 양조가 발달한 이유다.

또한 중세 수도원에선 규율과 기도를 강조했지만 노동 역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겼다. 베네딕토 수도원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 하라'이다. 당연히 농업의 혁신적 기술들이 수도원을 통해 복원됐다. 농작물 생산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수도원에선 이걸 보관할 필요가 있었는데 액체 빵으로 불리는 맥주로 만들었다. 그런데 맥주의 보관기간이 길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이 지점에서 홉이 방부제로 쓰일 수 있음을 처음 발견한 분이 바로 힐데가르트 수녀이다. 코르비 수도회 소속의 힐데가르트는 직접 쓴 책 자연학(Physica)을 통해 홉에 대한 얘기를 처음 했다. 홉을 술에 넣으면 홉의 쓴맛이 부패를 막고 보존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홉은 따뜻하고 건조하다. 그 특유의 쓴맛 덕분에 홉은 술이 부패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므로, 홉을 술에 넣으면 술이 훨씬 오래갈 수 있다”

그 전엔 맥주에 그루트(Gruit)라는 허브를 써서 향을 내고 있었다. 수도원이 독점 사용권을 가지고 있던 작물이었다. 양조인한테 돈을 받고 수도원이 사용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당연히 수도원은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일종의 맥주세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힐데가르트 수녀가 발견한 홉은 그 당시 거의 공짜였다.


하지만 영주와 결탁한 수도원 내부의 사정 때문에 홉은 쉽게 보급되지 못했다. 힐데가르트의 연구 이후 무려 400년이 지나서야 널리 사용됐다. 앞서 얘기한 독점적 사용권으로 인한 수익을 포기하기 싫어서이다. 결국 종교개혁이 한몫을 했다.  마틴 루터가 95개 조의 반박문을 발표한 이후에야 교회는 그루트 사용권 사업을 접는다.

"홉의 등장은 교회로서는 독점적 수익을 안겨주던 사업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곧 주교 및 교회와 결탁한 영주들에 의해 ‘홉은 독초’라는 가짜 뉴스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가짜 뉴스를 퍼 날라도 촛불 혁명은 진행되었듯, 홉의 유용성은 숨길 수 없었다. 16세기에 유럽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홉은 중심 첨가물의 지위를 확고히 점유하게 되었다. 힐데가르트의 연구 이후 약 400년 정도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p38


종교개혁의 마틴 루터도 꽤 맥주광이었나 보다. 진위 여부는 모르겠으나 독일의 술집 벽면에 적힌 그가 썼다는 글이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잠을 잘 자게 된다

잠을 자는 동안은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맥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


마찬 가지로 힐데가르트 원장도 맥주 예찬론을 펼쳤다. '맥주를 마시면 배 속이 정화되며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진다.' 홉이 만드는 쌉싸름한 맥주 맛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맥주의 여신 힐데가르트 수녀원장 이름 정도는 기억해둬야 할 듯싶다.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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