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간호사의 작가 도전기
"우리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의 소명을 거부할 선택권이 있다.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신의 소명을 따라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와 반대로 무언인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또는 그 일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신의 소명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소명을 달성한다는 것이 곧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 생겨날지도 모를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와는 반대로 하는 일과 삶의 방식이 그들이 받은 소명과 어울리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는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 삶은 낭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 너머에> M.스캇 펙-
나는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다. 크게 이유는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단순히 부모님께서 서울에서 일을 하셔서 그 모습을 동경해왔나 보다. 그렇게 대학교 졸업 후 운이 좋게도 서울에서 직장을 잡을 수 있었고 자취방도 작지만 조금만 걸어 나가면 한강공원을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위치도 괜찮았다. 그걸로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고 스스로에게 뿌듯했다.
'봐봐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물론 남들만큼 대단한 걸 이룬 것도 아니고 정말 소박하게 서울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걸 얻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나서 나는 삼 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너무나도 절망스럽고 스스로 의지가 없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혼자서 자취방 주변 카페에 앉아 주변 사람들을 보았다. 웃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세상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바보 같고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한 느낌이었다. 저녁에 혼자서 한강 공원을 걷는데 마냥 예쁘게만 보였던 한강이 이상하게도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 사람들이 왜 한강을 보며 자살을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사람도 없겠다 나는 조금씩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슬픈 것도 슬픈 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월세를 내야 하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도 막막했다. 나는 간호사와는 맞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과연 봉사정신,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일까? 아닌 것 같은데... 간호사가 아니면 무얼 해 먹고살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간호사 면허증뿐인데... 나는 실패한 인생이야, 내 주변도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티고 사는데 나는 뭐지? 바로 사직이나 하고... 그렇지만 너무나도 힘들었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했고 누군가가 내게 나타나 답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 달 동안 주변 사람들과 연락도 끊었고 가족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에게 연락하면 당장 본가로 돌아오라느니, 너의 능력이 원래 그것밖에 안되는데 너에게 맞지 않게 너무 큰 곳에 들어갔다느니 온갖 상처가 되는 말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깔짝깔짝 취업사이트에 들어가서 뭘 할지 보거나 그냥 혼자서 동네를 돌아다니고 어두워지기만 하면 술을 사서 자취방에 쪼그리고 앉아 신세한탄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니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돈은 떨어져 가고 이대로 가다가 정말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무작정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성인 이후로 잘 보지도 않았던 책을 하나 사서 읽었다. 정신과 의사 한성희 작가님의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였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 그렇게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책은 힘든 시기에 나의 상처받은 마음과 불안한 이 상황에서 등불과 같은 책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더니 큰 힘이 되었어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책이에요.'라고 하는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니 조금 놀랍기도 했다. 나는 그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그 당시 나는 너무나도 우울했고, 불안했으며, 직업에 대한 회의감, 외로움, 신입이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하나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 내가 혼자서 끙끙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이야기가 담아져 있어 나에게는 큰 힘이 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나는 '그래, 완벽할 순 없어. 바닥부터 시작해보는 거야. 꼭 대단한 곳이 아니더라도, 내가 만족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거면 된 거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 난 일하면서 웃을 수만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 다시 차분하게 시작해보자.'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상근직인 검진센터에서 일을 했다가 8개월 만에 나왔고, 다시 마지막으로 대학병원을 도전했지만 마찬가지로 8개월 만에 나왔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길을 찾아가기 위해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돌고 돌아 현재 정신과 간호사로 정착하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최소한 나는 만족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해보고 싶었던 과히 기도 하고 적어도 일을 하면서 심장을 졸이고 숨 막히며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다면 시간을 내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힘이 들 때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확실히 예전보다 생각 정리도 되었고 내가 몰랐던 내 속마음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스스로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날들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그들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만약 나의 예전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글을 보고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저 사람도 이겨냈는데 나도 이겨낼 수 있다 라며 일말의 희망을 얻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쉽진 않다. 나의 아픔, 나의 실패를 보여준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읽고서 누군가가 '아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했구나' 참고를 하거나 '와 나의 상황과 비슷한데 그럼 나는 이렇게 해볼까?'공감을 하며 용기를 얻는 다면 나는 만족을 할 것 같다. 나의 목표는 누군가에게 어둠 속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고 작가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걸로 행복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폐쇄적인 정신과 병동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다. 정신과 병동에서는 도대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생각보다 주위를 돌아보면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들을 그저 무섭다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읽고 정신과 병동과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해 조금 더 열린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