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정신과 간호사야?

3번의 퇴사 끝에 정신과 간호사를 선택하다

by 이연

3년 간의 서울살이 동안 3번의 퇴사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고 하루하루 숨 쉬는 것조차 괴롭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출근 전에 이미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듯이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가슴이 너무 빨리 뛰어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면 내 심장소리가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속으로 '제발 오늘 하루 무탈하게 지나가 주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으면!'을 외치며 일을 했다. 쉬는 날마저 방안에 있으면 끊임없이 일 생각이 나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무작정 한강에 나가 자전거를 타며 내 머리를 비워주어야 했다. 퇴근 후에는 조그마한 나의 자취방으로 돌아와 술과 배달음식, 그리고 미드(미국 드라마)만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잦은 술과 반복되는 긴장감 끝에 나는 심한 우울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거지? 이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인가? 이럴 거면 그만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주변 간호사 친구들은 힘들다 힘들다 노래를 불렀지만 나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환자의 목숨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 큰 중압감을 느꼈고, 알아서 눈치껏 행동하라는 선임들, 군대 같은 직장 분위기, 이름 대신 "야"라고 불리며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쫙 째려보며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는 선임들, 막내라서 쌓여있는 잡일들, 정규일들 속에서 콜벨(환자분이 간호사 선생님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출벨)이 울리면 내 담당 환자가 아니더라도 막내이기에 무조건 뛰어가야 하는 분위기, 너무 바빠 화장실 갈 시간도 없고 물조차 마실 수 없으며 식사도 거의 못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실수도 잦아지게 되었다. 실수가 잦아지면서 나는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게 될까 봐 큰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과연 간호사로서 자질이 있을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퇴사를 꿈꾸며 무얼 하며 살아야 하나 라는 걱정과 고민을 가지고 널스 스토리(간호사 커뮤니티 사이트)만 들락날락 거리며 '나와 같은 사람이 있나? 다들 나처럼 힘들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다른 사람들은 그래서 임상을 떠나 무얼 하는데?'와 같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 위로를 하고 방법을 강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딱히 도움은 되지 않을 뿐, 걱정만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사직서를 또 내게 되었다.



두 번의 대학병원 퇴사, 한 번의 검진센터 퇴사를 거쳐 몸과 마음이 망가져있는 상태로 나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본가인 경기도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부모님의 눈빛과 그렇게 나약한 멘탈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와 같은 온갖 질타를 받으며 본가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병원만 아니면 된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뭐라도 해야 하니 무조건 상근직, 임상만 아니면 된다는 것과 지역사회 간호에 대한 흥미만 가지고 쉬는 기간 없이 바로 간호직 공무원 준비에 뛰어들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라 어색했고 온종일 독서실에 박혀 공부를 해야 해서 답답했지만 대학병원을 그만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내서 할 수 있었다. 결론은 2점 차이로 떨어졌지만 오히려 후련했고 공부하는 기간 동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후회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백수로 살아갈 순 없기에 어떻게든 내게 맞는 직장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카페에 가서 큰 A4용지에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마인드 맵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간호사 면허증이 있기에 그 면허증을 가지고 나와 맞는 직장이 무엇일까 끙끙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머리에서 문득 스치는 과가 있었다. '정신과 간호사'.



나는 어려서부터 정신과에 관심이 많았다. 소심한 성격 탓에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많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도 잘해서 친구들이 내게 '상담사'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소리를 듣고 막연하게 심리, 상담 쪽으로 직업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또한, 가족 중에 ADHD인 사람이 있어 자연스레 정신과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기에 간호학과 실습 중 정신과 실습을 할 때면 타 과에 비해 흥미가 있었고 정신간호학 수업 땐 그 어느 수업시간보다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고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3년 동안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살았던 나였기에 정신과 간호사가 되어 후에 우울증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다. 그러한 생각이 스치면서 나는 조금씩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는 것 같았고 무덤덤했던 나의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해보자, 그래. 이보다 더 나빠지겠어? 뭐라도 해보자. 전부터 한 번은 해보고 싶었잖아 어때, 도전해보자'






현재는 만성 조현병 환자들이 있는 남자 폐쇄 병동에서 정신과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왜 하필 정신과 간호사야? 다른 과로 가보지... 정신과 안 무서워? 어우 난 절대 못할 거 같아'였다. 그럴 수 있다. 나도 정신과를 자원해서 갔지만 처음엔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에게 해코지하는 거 아냐...? 나도 정신과에 오래 있으면 영향을 받는 것 아니겠지?' 이러한 생각이 정신과 공부와 실습을 경험한 나 조차도 들었다. 하지만 정신과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괜찮다'와 '지인 중 정신과를 희망한다면 추천하고 싶다'였다. 현재의 나는 나름 만족하고 있고 앞으로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정신과가 마음 편하고 쉬운곳은 아니다. 일을 하면서 내가 이상을 품고 정신과 간호사에 도전하면서 많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초반에 정신과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우연히 읽은 책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온 내용에 많은 공감을 했다.


이 모든 상황이 어려웠다. 내가 상상했던 정신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따뜻하고 깊이 있는 상담? 그런 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허락된 것 같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모든 동기가 통과의례처럼 환자에게 맞는 일을 경험했다. 심히 난폭한 사람을 강박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 <어쩌다 정신과 의사>김지용-


처음에 나는 정신과 병동에 들어가면 환자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그들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며 환자들에게 적절한 간호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저 헛된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정신과 병동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폭력적인 상황을 감수하면서 그 속에서 환자들과 대화를 이끌어 가야 했으며, 환청과 망상을 가진 채 몇 십년간 살아왔는데 한 순간에 이를 해결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할 것이다.






대학시절엔 '무조건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얻고 싶다'라는 알 수 없는 강박관념에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대학교 4학년 때에 마구잡이로 지원서부터 냈다. 무작정 지원하고 면접보고 그렇게 최종까지 합격한 곳에 나는 입사를 했고 그렇게 나는 좌절을 했다. 20대 초중반엔 직장만 들어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고 그걸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직장에 들어가면 새로운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직장에 들어가서 앞으로 어떻게 살 지 계획하지도 않았고, 정작 내가 무엇을 목표로 하면서 살아야 할지 생각조차 해본 적 없기에 나는 조금 더 일찍 무너졌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나는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아직 나는 부족한 점이 많고 배워야 할 점도 많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전할 것이다. 돌고 돌아 방황 끝에 어렵사리 정신과 간호사로 정착을 했으니 이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정신과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공부를 하고 환자들에게서 놓친 것이 있진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씩 나아지는, 환자들이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그런 간호사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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