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은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요즈음 한창 무더위에 푹푹 찌는 날씨가 계속되면서 밖에 잠깐 서 있는 것조차 곤욕이었다.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고 불쾌지수가 오를 대로 올랐다. 그렇게 병동으로 들어가면 당연히 날이 서 있는 상태에서 환자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나는 말이죠, 정상이에요. 환자가 아니라고요! 할렐루야! 나는 정신과 환자가 아니라고요! 근데 우리 가족이 나를 여기에 밀어 넣었어! 아니, 정신과 환자가 아닌데 왜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해요? 네?'
몸이 거의 90도로 굽어진 상태로 걸어 다니는 환자가 있다. x-ray든, 각종 검사를 해봤지만 정상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환자는 몸을 굽힌 상태로 걸어 다닌다. 하루는 본인이 학생이었다가, 하루는 종교인이라고 말을 한다. 매일 근무자에게 와서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잠기고 화난 목소리로 몇 번 이야기하면 '아 저 사람이 화가 났구나'를 느끼며 그만한다. 하지만 정신과 환자들은 어린아이 와도 같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끝까지 근무자를 찾아온다. 초반 몇 번은 받아주겠지만 근무자도 사람인지라 말도 안 되는 같은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 당연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정신과 환자임을 명심하며 최대한 차분하면서 단호하게 이야기를 끊어줘야 한다. 더운 여름날 가뜩이나 예민한데 환자들이 말도 안 되는 걸로 자꾸 내 신경을 건드릴 때면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날씨는 근무자에게만 영향을 줄까? 아니다.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크게 준다.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시작된 장마철, 특히 지금 같은 때에 긴장을 해야 한다. 이럴 때에 큰 사고가 가장 많이 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만해도 병동에서 큰 이벤트가 있었다. 습하고 매우 더운 날이었다. 병동에 에어컨을 최대한 세게 틀어놨지만 구석구석은 여전히 습하고 더웠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조금 휴식을 취하려고 의자에 털썩 앉는 순간 저 멀리서 한 환자가 소리 지르며 근무자에게 왔다.
"선생님! 00이 이상해요!"
우리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혈압 기기 등을 들고뛰었다. 1시간 전까지 봤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환자가 눈을 천장으로 향한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망했다' 가장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이었다. 살을 꼬집어 봐도 아픈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눈을 치켜뜨며 헐떡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말을 걸어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경련으로 혈압 재는 것도 힘들었으며 축 처진 남자 환자이기에 남자 보호사님들 대여섯 명이서 환자를 들어 올려 보호 실안으로 끌고 갔다. 우리는 바로 주치의에게 해당 상황을 이야기하였고 주치의는 급하게 병동으로 달려왔다. 환자를 보더니 이것저것 주사제 처방을 내주시고 타 병원 응급실로 후송 갈 것을 알아봤으나 자리가 나지 않아 일단 병동에서 급하게 처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응급으로 피검사를 나갔는데 역시나... 환자는 물을 과하게 많이 마셔 나트륨 수치가 심각하게 낮은 상태였던 것이다.
만성 조현병 환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은 과다한 구갈로 인해 발생하는 과도한 음수와 과도한 소변 배출이 있다. 병인은 불분명하지만 항이뇨 호르몬 부적절한 분비나 약물 부작용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병동에서는 특히 물을 과도하게 마시는 환자들을 '물관리 환자 대상자'라고 하며 매일 최소 두 번씩은 몸무게를 측정하여 물을 얼마큼 마셨는지 확인한다. 근무자는 지속적으로 환자들이 물을 몰래몰래 마실 때마다 행동 제지를 한다. '아니 물은 인간이 필수적을 마셔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왜 막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환자들은 상상을 초월하게 물을 어마 무시하게 들이붓는다. 환자들은 물을 최소 3L를 마시는데 한 순간에 몸무게가 3~5kg가 불어있다. 문제는 이렇게 물을 마시다 보면 경련이나 신부전(당연히 신장 기능이 망가질 수밖에...), 울혈성 심부전, 앞에서 말했던 저 나트륨 혈증 등이 나타나게 된다. 환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물이 자꾸 마시고 싶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꿀떡꿀떡 마신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물 500ml 페트병을 한 번에 원샷하면 속이 울렁거릴 텐데... 가끔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앞서 말한 환자도 근무자의 눈을 피해 물을 너무나도 많이 마셨기에 그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환자는 다른 '물 관리 환자들'보다도 훨씬 관리가 잘 되는 환자였다. 근데 우리가 크게 간과한 것 있었다. 워낙 관리가 잘 된다고 생각해서 가끔씩 과하게 마실 때 '아 오늘은 좀 많이 마셨네'라고 생각하며 환자분께 주의를 주고 끝냈는데 날씨가 더워지고 장마가 막 시작될 때 환자가 과하게 마시는 날이 어느 순간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일 만에, 그 후엔 3일 만에, 그 후로는 연속 3일... 그렇게 과하게 물을 마시는 날의 cycle? 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는데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침에 괜찮았다고 해서 오후에도 좋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연차가 높으신 선생님들의 경험에 의하면 환절기, 장마철, 같이 날씨가 변할 때 환자들의 상태도 급격히 나빠져 환자의 상태를 훨씬 잘 보아야 한다고 한다. 확실히 온몸으로 느껴지긴 한다. 요새는 출근을 하면 일단 병동이 뭔가 알 수 없이 소란스럽다. 환청이 더 심해지고 갑자기 기분이 확 뜬다.(이걸 mood가 뜬다고 한다, 갑자기 환자가 기분이 좋거나 흥분을 하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면 지나가는 환자가 자신에게 욕하는 줄 알고 오해를 해서 싸움이 나거나 그 환자들을 상대하고 있으면 저 구석에서 물 관리 환자는 몰래 물을 퍼 마신다. 정말로 정신이 없다. 가끔은 너무 힘들고 큰일이 터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며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과 간호사로 불안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한 번씩 더 환자상태를 보고 전조증상을 빨리 캐치해 내어 주치의에게 바로바로 알려 약 조절을 하고 환자들의 정서적 지지 등을 돕는 수밖에 없다. 어서 날씨가 좋아져 환자들도, 그리고 우리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날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