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천사

2.

by 이연

스무살 중반, 남자와 거리가 멀었던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내가 짝사랑이라니,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내가 다니는 교회 사람이었다. 청년부를 통해 알아본 정보로는, 그는 나보다 연상이었다. 그는 서글서글한 얼굴에 나를 볼 때면 반달 모양의 눈웃음을 지어 보여 곰돌이 푸우같이 보였다. 그의 삐죽 튀어나온 이도 이상하게 귀여워보였다. 어둡고 밑바닥에서 외롭게 살던 나와는 달리 그 남자는 밝은 세계에 속했다. 그는 선한 눈을 하고 있으며 교회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기에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남자라곤 여중여고를 다녔던 나의 세상에선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교회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이상하게 빛이 났다.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매우 친절하고 젠틀했고, 무엇보다 세련된 서울 남자 같아 나의 환상은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나는 수수한 시골 촌년처럼 생겨 화장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주근깨도 가득하였지만, 시골에서 나름 귀엽게 생긴 얼굴이라 들어온 터라 내가 서울 여자들처럼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면 그가 나를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 듣기로는 그는 중산층의 교사 집안의 아들로 그 또한 중학교 교사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이혼 가정에 기초생활수급자인 초라한 나의 집과 남들 다 나오는 대학교도 나오지 않은 나와 비교가 되었다. 가끔 말할 기회가 되어 그가 내게 조금만 더 파고드는 질문을 할 때이면, 나는 이런 내 상황을 들킬까 싶어 별 거 아닌 질문에도 괜스레 말끝을 흐렸다. 그를 멀리서 볼 때이면 행복감에 젖어있다가도 내 마음 깊숙이 그가 나의 밑바닥을 보게 되다면 어찌될까 싶어 불안감에 떨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나는 그에 비해 신앙심은 깊진 않았지만 그를 보기 위해 매주 금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교회를 갔다. 사실 나는 교회를 처음 다니게 된 것은 함께 유일하게 상경한 고등학교 친구 채린이 때문이었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어린 내게는 그 모든 말이 와닿지 않았고 크게 관심도 없었다. 채린이는 외로워 하는 나를 꼬셔 함께 교회를 다니자고 했고, 나는 별 생각없이 채린이를 따라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그는 신이 내게 내린 선물과 같은 존재였다. 언젠가부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품과 옷을 샀고, 유튜브랑 채린이를 통해 조금씩 나에 맞게 바꿔 나갔다. 이렇게 해야 시골 촌년의 모습을 지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을 바라볼 때면 어릴 때의 그 맨 얼굴에 주근깨 가득하고 순진한 어린 그 여고생의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의 얼굴은 바뀌어 있었다. 나는 어린 티를 막 벗어내고 성숙한 여자의 태를 하고 있었다.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이상하게 어깨가 으쓱하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채린아, 나 너무 설레. 그 사람이 오늘도 교회 나오겠지? 어서 보고싶다.“

”미치겠다, 김하늘. 지훈 오빠한테 그냥 고백해버려. 오빠가 알면 좋지 않아? 내가 팍팍 밀어줄게!“

”됐어. 너가 밀어주면 지훈 오빠가 이쁜 너한테 빠지지, 나한테 오겠냐. 그리고 난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천천히 다가갈래.“

”아휴 답답해!“

채린이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지어보이더니 쯧쯧 혀를 차더니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채린이는 늘씬늘씬하고, 누가 봐도 세련되게 생겨 남자라면 한번쯤은 뒤돌아 볼 만큼 예쁘게 생겼다. 내가 남자였어도 작고 촌스럽게 생긴 나보다는 채린이를 좋아했을 것이다. 가끔은 나는 채린이가 내 친구인 것이 뿌듯하다. 채린이와 같이 다닐 때면 나도 인싸가 된 착각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해본 나로서는그런 멋진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 덕지다.

"오늘 예배 끝나고 카페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지훈 오빠도 같이. 너가 말 못하면 내가 말한다?"

"정말? 으악, 너무 떨려!"

지훈 오빠는 함께 카페를 가겠다며 수긍하였고, 채린이는 지훈 오빠와 내가 이어지도록 자연스럽게 내 옆에 지훈 오빠를 앉혔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채린씨와 하늘씨, 이렇게 셋이서 이야기 해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 여기 교회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청년부 같은 조가 아니면 친해지기도 힘들죠. 뭐 시킬까요? 제가 한번에 결제할게요.“

”가..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아이스라떼 마실게요. 다음엔 제가 살게요.“

”그래? 앞으로 같은 교회 다니니깐 마주칠 일도 많겠네. 편하게 대해.“

우리는 그 이후로 셋이서 종종 카페를 가게 되었고, 채린이는 지훈오빠와 나를 이어주기 위한 큐피드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채린이 덕에 지훈오빠와 사귀게 되었다. 채린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계속해서 멀리서 지훈 오빠를 바라보기만 했을 것이다. 소중한 친구와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내 곁에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났을 때에는 채린이에게는 좋은 일만 가득했다. 채린이는 지훈 오빠와 같은 직장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친구 소개를 통해 멋진 남자친구도 생겼다. 채린이의 남자친구는 조금 사납게 생겼고, 인스타 스타 같이 화려하게 꾸몄다. 채린이가 남자 친구를 나와 지훈오빠에게 소개시켜줬을 때엔 헉 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모델인가? 싶을 정도로 큰 키에 잘 생긴 얼굴이었다. 나는 채린이가 예쁜 연애 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남자는 자신의 진짜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좋은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술만 마시면 채린이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채린이와 싸울 때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벽에 밀치고 하다 못해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 되면 그 남자는 채린이를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사과를 했다. 나는 채린이에게 그런 놈은 당장 헤어지라고 조언했지만, 이미 그에게 홀려버린 채린이는 같은 상황이 여러번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해 주었다.

"오빠,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채린이같이 예쁘고 착한 애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채린이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해.“

”나도 안타깝긴 해. 하지만 채린이에게 우리가 남자친구와 헤어져라 마라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니깐...채린이가 알아서 잘 할거야.“

나는 입이 닳도록 내 남자친구에게 채린이 남자친구를 욕했다. 남자친구도 그런 채린이를 안타까워했지만 나와는 달리 남자친구는 점잖은 말투로 나를 타일렀다. 남자친구의 말에 의하면 같은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채린이는 인기가 많다고 한다. 예쁘고 일도 잘해 여러 남자들이 채린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나 채린이가 당장 그 나쁜 놈과 헤어지고 좋은 사람을 만나길 진심으로 바랐다.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일 년이 지나고서야 채린이는 그 지긋지긋하고 너덜거리는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 채린이는 매일 같이 하염없이 울었다. 저 가녀린 몸에서 저렇게 많은 피눈물을 쏟고 있다니, 나는 그저 채린이가 안쓰러웠다. 나와 내 남자친구는 여러 번 채린이를 위로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채린이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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