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천사

1.

by 이연

덜커덩 거리며 온갖 잡다하게 요란한 기계 소리를 내는 지하철 안은 그 누구도 말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요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돌 뿐이었다.어두운 표정의 사람들과 차가운 공기, 그리고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온몸이 벌겋게물든나. 이 모습은 마치 흑백 영화에서 컬러 사진으로 바뀌는 오즈의 마법사 영화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특별하고 소중한, 나만의 비밀이 있다. 그 누구에게라도 들켜서는 안 되는 특별한 소명 같은 것이었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 이마에서는 차가운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처음 느껴보는 이러한 나의 모습에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그것이 뭐가 중요하랴. 패딩 속 더운 기운을 빼기 위해 나는 입 밖으로 크게 후 하고 바람을 불었고, 그 사이로 내가 가두었던 웃음이 터져 나와버렸다.나의 주변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였고,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를 외면하는 그들을 지나쳐 나는 비틀비틀 걸으며 다른 칸으로 향했다. 덜커덩 거리며 심하게 움직이자 나는 황급히 지하철 문 손잡이를 가까스로 붙잡았고, 그 순간 문에 비친 짙고 검은 눈 화장에 새빨간 립스틱을 과하게 덧칠해 놓은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화장을 할 줄 모르던 수수하고 촌년 같던 내가 아니었다. 나는 과거의 나와 확연히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푸석하고 건조한 나의 피부밑에서 알 수 없는 광채가 터져 나오고있었다. 바짝 마른 앙상한 뼈다귀에 간신히 살만 붙어있는 나의 몸 깊숙이 자리 잡은 조그마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그 진동이 나의 온몸에 퍼져 발작하지 않기 위해 단단하고 곧은 나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또다시 기이한 웃음을 한 나의 얼굴과 눈 맞춤을하였다. 지하철 안은 온갖 냄새가 뒤섞여 있다. 옛날 어머니와 살던 허름한 집에서 나던 나프탈렌 냄새, 하수구 냄새, 지린듯한 오줌 냄새 그리고 그와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달콤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향수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 나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지하철 속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과 썩 닮아있다. 소란하고 요란스러우면서 침묵만으로도 내게 폭력적일 수 있으며, 온갖 악취가 뒤엉켜 나를 괴롭힌다. 이 모든 것을 벗어나고 싶어도 함부로 나갈 수 없으며,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랄 뿐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눈을 감고 두 손을 꼬옥 다잡아보았다. 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암울한 터널 속에서 지내왔다. 언제쯤 나는 빛을 볼 수 있을까,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라며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어왔다. 중학생 시절부터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나는 쫓기듯 엄마와 함께 조그마한 반지하방으로 이사 갔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작은 방을 가득 메웠다. 가끔씩 청소하기 위해 가구를 이리저리 옮길 때 에는 조그마한 바퀴벌레들이 어찌나 빠르게 도망가던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이면 나는 바퀴벌레 잡는 것을 포기하고 연막탄을 피워놓고 밖으로 잠시 피신하곤 했다. 우리 집은 조그마한 창문을 열면 철조망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보였는데, 낮이면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빨래를 널고 있는 사람들과 눈 맞춤을 하곤 했다. 소심했던 나는 바로 창문을 닫아버리고 그들의 시야를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누런빛을 띠는 은은한 조명만이 존재하는 선선한 밤에 밖으로 나가 밤 공기를 맡는 것이 나만의 유일한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이따금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포스터를 하나 구입해 벽에 붙여 놓았다. 그 포스터는 따사로운 햇볕이 새하얀 벽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고, 문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따사로움과 평온함은 마치 내가 그곳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언제쯤 나는 이런 집에 살 수 있을까? 어린 나는 그런 집에서 사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꿈이었다. 내가 꿈꾸는 다른 목표는 없었다, 그저 포스터에 그려져 있는 평범한 집에서 누구에게 구애받지 않고 사는 것, 그 뿐이었다. 우울감도 중독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나는 언제부턴가 웃는 날보다 우울감이 더 컸고, 이 우울감이 무뎌졌다고 생각할 즈음에는 '나는 불행한 아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고요한 바닷속에 깊이 처박힌 그 기분을 다시금 느끼려 애썼다. 맬랑콜리하면서 울렁거리는 그 기분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끊임없이 자극시켰다.

나는 사춘기 중학생 시절 그 누구와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서 겉돌았다. 교복을 아무리 빨고 말려도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 반지하 방 이었기에 수건 썩는 냄새를 지우기 힘들었다.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 차디찬 물이 내 살을 파고들어 직접 끓인 물과 적절히 섞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에 평범한 다른 집 친구들처럼 자주 샤워하는 것 조차 내게는 사치스러웠다.그 모든 것들이 섞여 나의 왜소한 몸을 감싸는 냄새들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학급에서 '더러운 애'와 '거지'는 나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버렸고, 어리고 순수했던 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게다가 같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와 이미 서로 친해져 있는 아이들 속에 끼어들 만큼 나는 친화력이 있지도 않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그럴 용기를 내지도 못했기에 반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로 지내왔다. 불우한 나의 가정환경과 못난 나를 탓하며 엄마가 없는 텅 빈 집에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우는 날로 가득 찼다. 항상 일을 하며 나가있는 엄마의 위로를 받을 수도 없었고,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 하나 없었기에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어느덧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성적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나는 졸업 후 대학교 학비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바로 취업하기 위해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왔다. 외로운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나는 최대한 깨끗한 옷을 골라 입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춰 행동하며 살았다. 그 당시에는 많지는 않지만 소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했고, 어머니는 꾸준하게 가게 일을 하신 덕에 전보다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아득바득 자격증을 미친 듯이땄고, 어느새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내던져졌는데, 운 좋게 조그마한 세무사 사무실에서 경리일을 하며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그리고 나는 이후 조금씩 돈을 모아 매일 같이 소중히 보던 포스터 속의 집은 아니더라도 혼자서 살 만한 조그마한 방을 얻었다. 엄마의 잔소리도, 창문만 열면 보이던 담배피는 사람들의 눈들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몸을 숨기게 만드는 중고등학교 동창들도, 이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이제 먹고 싶은 차가운 아이스 라테도 사 마시고, 어릴 때 침을 뚝뚝 흘리며 바라만 보던 파스타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어느 정도 만족하며 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