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천사

5.

by 이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널브러져 있는 책을 열었다 닫았다를 수 회 반복해 보았으나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갑작스럽게 내게 일어난 일들에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요새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아서 이상해지고 있나 생각을 했다. 나는 이내 크게 한숨을 쉬어 보이고 왜 내게만 이런 나쁜 일이 생기는것일까 하는 우울감에 뒤척이다 어느 새 온 몸의 긴장감이 스르르 녹았고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꼬옥 감은 눈에서는 옥구슬 같은 눈물 한 방울이 베개를 적셨다.


"하늘아 미안해. 하지만 내가 너보다 더 예쁘고 가난하게 사는 너보단 내가 오빠랑 더 잘 어울리지 않겠어? 이건 어쩔 수 없어. 너도 잘 알잖아.”

채린이는 나를 향해 비웃고 있었고 하얗고 가느다란 손으로 지훈 오빠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채린에게 안겨있는 지훈 오빠는 지금껏 내게 보인 적 없던 차가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나를 냉정히 밀쳐내었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제발 나를 버리지말아 달라고빌어보았다가 악 소리를 질러보았다. 가슴 한 편이 미어졌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너는 내 소중한 친구였잖아. 지훈 오빠, 오빠도 나보고 사랑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날 배신하고 내 친구한테 가버릴 수 있어?

"너네들은 인간도 아니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목에 선 핏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그 꼴은 나를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쓱 쳐다보더니 점차 내 시야에서 멀어졌고, 조금씩 짙고 어두운 안개가 나를 향해 들이닥치더니 어느덧 내 시야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는 스산했고 내 뼈가 시리도록 차갑다 못해 얼어붙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방을 더듬거렸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두려움이 차 올랐고, 갑자기 무언가가 나를 세게 밀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악 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어둠은 그 소리를 금세 흡수해 버렸다. 이윽고 서서히 저 멀리서 밝은 빛이 보였고, 그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걸어갔다.

“빛의 천사여. 내 메시지를 들어라.”

온몸이 내게 도망가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나의 몸은 굳어버린 나뭇가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나의 상황을 개의치 않는 듯 빛은 내게 계속해서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을 걸었다.

“너는 내 오른편에 설 것이다. 지체 말고 너의 손으로 어둠을 몰아내라. 너는 나의 사도가 될 것이다. 하늘을 향해 가는 순수한 영혼이여, 너는 신의 은혜를 받아 그림자는 빛을 받게 되어 그 어둠을 물리치게 될 것이다. 불쌍한 죄인들을 애휼하며 악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나의 두 다리의 힘은 탁 풀려버렸고, 나는 그 빛을 향해 무릎을 꿇어 보였다.그 순간 빛은 내 위로 쏟아졌다. 그 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나를 따뜻하게 품어 보였다. 알 수 없는 따뜻한 감정에 나는 조용히 울음이 터져 나오는것을 막을 수 없었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나는 너를 도와주러 온 하늘의 사자이다. 너는 내가 품은 인간이다. 그러니 나의 뜻을 거스르지 말아라. 감미로운 빛이여, 신의 믿음으로 너를 새로운 길로 드나니, 우리를 인도하라. 이 세상을 따사롭게 하고 너의 빛살이 비추니 사랑의 향연으로 인도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는 그 무언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낀 따스함에 나는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나를 구원해 주러 온 빛이구나. 나도 행복해질 수 있구나, 이 포근함을 더욱 오래 느끼고 싶었기에 눈을 감고 그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보았다. 그 빛은 나를 감싸더니 나의 몸 안으로 서서히 흡수되어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목 근육의 뻐근함이 느껴졌다. 창문을 보니 아직 어둠이 한창이었고, 창 밖에 보이는 별빛이 유난히 밝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별빛을 바라보았다. 생각이 많아졌기에 나는 이불속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 답답한 마음에 대충 늘어진 후드 집업을 걸쳐 입고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오늘따라 스산한 바람이 내게 말을 걸 듯 소름 끼치는 바람소리를 내며 내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다. 괜스레 무서운 마음에 빠르고 보폭을 줄여 집으로 달려가듯 걸어갔다. 밖에 나가보아도 정리되지 않는 심란한 마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이상하게 나의 등이 심하게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피부가 좋은 편이라 뾰루지가 한두 개 나고는 금방 사라지는 편인데, 의아해하며 등을 긁었다. 요새 잠을 적게 잤나,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은 탓일까. 나는 점점 국소 부위에서 등의 전체를 피가 나도록 벅벅 긁기 시작했고, 아무리 긁어도 해소되지 않는 가려움에온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스탠드를 켜고 내 등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나는 거울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뭔가 틀린 그림 찾듯이 이리저리 내 등을 훑었고, 이내 나는 단숨에 이상한 점을 알 수 있었다. 빨간 두드러기 속에 조그맣고 새하얗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수줍게 피어나 있었다. 그것은 나오다만 어정쩡하고 불성 사나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날개? 나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게 뭐야. 나는 너무 놀라 헉 하고 그 자리에서 멈추어 버렸다. 의학지식이 아무것도 없지만 이건 정상적이지 않음을 느꼈다. 내가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니겠지, 온갖 생각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뒤척거렸다. 어제 그 이상한 꿈이 현실이었나? 그 꿈에서 내게 한 말이 진짜인걸까? 머리가 복잡해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어느 새 환하게 날이 밝아왔다. 나는 오후 반차를 쓰고 곧바로 피부과에 가보았다.

"피부 질환입니다. 약 잘 바르시고 항생제 처방해 드렸어요. 약 꾸준히 잘 드시고요."

피부과 의사는 무심하게 나의 등을 쓱 만져보다 약을 처방해 주었다. 이상하게도 피부과에서는 나의 '하얀 무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봤지만 피부과 의사는 나의 말에 갸우뚱하며 다른 이야기를 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처방전을 들고 약을 처방받고는 의아해할 뿐이었다.

이제는 그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고 혼자서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보러 교회를 간다. 신앙심이 있는 것인지 뭔지 모르지만 어느 샌가부터 집에만 있으면 공허했기에 아무 이유를 만들어 억지로 나갔다. 지훈오빠와 채린이는 교회를 옮겼고, 그 이후 그들은 어떻게 사는지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 어떠한 알림도 없는 텅 빈 휴대폰 화면. 나는 여전히 그 누구에게도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휴대폰 전원 버튼을 딸각거리고 있었다. 초조함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는 터에 조금씩 어디선가 기어나와 나의 귀를 후벼 파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네가 행하라, 네가 행하라. 네가 지옥의 불덩이에서 구원해 줄 희망이다. 믿어라. 너는 신의 자비로 태어난 자, 그 어떤 악마도 네게 손을 대지 못하고 불더미의 불꽃으로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귀한 말씀을 받들어라. 과연 너는 이를 무시할 수 없으니.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겐 천벌만이 남아있으리."

나의 우측 귀에서 무언가가 알 수 없는 말들이 속삭였다. 그것은 빠르게 속사포로 내 귀에 작은 목소리로, 반복적으로 속삭였다. 불길하게 낄낄거리는 그것은 여자 목소리 같기도 하고, 높은 톤의 남자 목소리 같은 알 수 없는 불길한 음성들이 뒤섞여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전에 들었던 그 낮은 남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목소리였다.

나는 그 무엇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았다. 그만 좀 해. 시끄러워. 그만 좀 말하라고. 나는 괴로운 마음에 귀를 파기도 하고, 귀를 막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 보이기도 했다. 온몸을 비틀어 보이기도했다. 양쪽 귀는 붉게 물들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통증을 느끼면 잠잠해지는 것은 그때일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이상한 계시 같은 전언을 이야기했다. 이곳 저곳에서 서로에게 웃으며 하하 호호 떠드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고, 정신줄을 놓을 것만 같았다. 누가 날 좀 도와줘. 누가 이 목소리를 좀 꺼줘. 나는 힘껏 웅크렸다.

“내 빛이 너를 통해 세상에 전해질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세상을 정화하라. 그 누구도 네 앞을 막지 못할 것이다.”

계속해서 지역방송 같은 잡음 섞인 목소리들을 끌 수도 없었지만, 나는 도저히 이를 더견딜 수도없었다. 나는 이내 조금씩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만 좀 하라고, 누군지 몰라도 나를 그만 좀 괴롭히라고. 나는 이제 견딜 수 없었고, 온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두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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