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천사

7.

by 이연

“… 이번 역은 옥수역, 옥수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하철 방송이 들리자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내릴 곳을 놓칠 뻔했다. 나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사라져 가는 지하철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립니다. 당신을 위한 완벽한 안식처, 지금 선택하세요! 파라다이스 시티. 신도시 분양 중‘

나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나를 향하고 있었고, 나에게 언질을 해주고 있었다. 나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 광고 속 남자는 꽤 믿음이 가게 생겼다. 나의 파라다이스, 그곳은 어디인가. 그곳을 향해 나는 가고 있는 것일까. 반짝거리는 스크린 도어 광고에 비친 나의 눈빛은 여느 때와 다르게 빛나고 있었고, 나의 눈을 조용히 응시하였을 때 그 사이로 조그마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황급하게 역에서 나왔을 때 찬 공기가 내 뺨을 맞이했고, 이제 정말 겨울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차가운 공기에 나는 정신을 차렸고,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경계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 돈은 언제 보내줄 거야? 다른 집 딸내미들은 부모님께 따박 따박 월급 받으면 드리고 그러던데. 내가 지금까지 너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 하여간 키운 보람이 없어, 보람이.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잘하면 몰라, 이런 걸 내가 너한테 일일이 다말해줘야 하니? 그리고 말이야,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엄마한테 전화 한 번을 안 하니? 딸 맞아?”

나는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엄마의 폭풍 잔소리에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휴대폰을 몸에서 멀리하여 최소한의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가뜩이나 신경 쓸일도 많은데 나를 한층 긁어대는 엄마의 전화는 나를 더 괴롭게 한다.

"알았어, 그만 좀해. 나도 바쁘단 말이야. 이번 달 말에 월급날이니깐 그 때 보낼게."

“쯧쯧, 하여간. 그러고 너 말이야, 어떻게 집 한 번을안 오니, 네가 그러고도 딸이야? 대체 뭐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엄마랑 그렇게 연락도 하기 싫고, 보기도 싫으면 앞으로도 연락하지 마!”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뚝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언제나 내가 못난 존재였고, 내가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그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나무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맞지 않았지만 내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렇기에 그 비좁은 집에서 버티고 버티다 성인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나왔을 때는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항상 허덕이는 가난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집에 거의 있지 않고 음식점과 공장을 돌며 일을 해왔다. 자연스레 나는 엄마와 대화할 시간도 줄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최근의 나에게서 있던 변화도 당연히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아니,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말을 해도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나는 오랜만에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는 왕따는 아니지만 은근히 겉도는 소외된 아이였고, 성인이 되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으나 사회에 나가서는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더군다나 지방에서 혼자 서울로 올라와 살고 있으니, 아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길거리를 다니는 것이 더욱 익숙해질 뿐이었다.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연고지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며 외로워하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외로워도 그들을 직접 만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뉴스 기사를 보면 세상이 워낙 흉흉하기 때문이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그 누구에게도 나의 외로움을 채워줄 사람은 없었기에 고립감이 들었다.나는 말을 할 사람도 없고, 말을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기에 혼란스럽고 답답한 이 마음을 오늘도 쓸데없는 유튜브 영상이나 인스타 숏츠를 보며 시간을 때우고, 바보같이 웃으며 넘겼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샌가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내 나름대로 즐겁게 보냈다고 생각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불을 끄고 다음날 일을 가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매트리스만 깔려 있는 방바닥에 누웠다. 고급진 침대는 아니지만 나만의 포근한 안식처였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진정 이상해지고 있는 것일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것일까? 하지만 대체 왜 이런 일이 나한테만 일어나는 거지? 이 모든 근원은 남자친구와 친구로 인한 스트레스임이 틀림없었고,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지우고 싶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채린이와 계속 친구로 남았을 것이고, 남자친구로 인해 고통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파국으로까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씩 나의 발끝에서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화가 났고,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성경책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도저히 그 책을 볼 자신이 없었다. 성경책을 버리고 나는 집으로 들어와 다시 침대로 온몸을 구겨 넣었다. 어쨌든 종교와 관련된 책인데 밖에다가 버리다니, 나는 찝찝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지만 이내 어둠이 내 눈커풀 속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나는 거대하고 웅장한 성 안에 서 있었다. 고딕 양식인가? 내가 지식이 짧아 건물 양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긴 하지만 나는 이곳이 오래된 건물인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와'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 교과서에서 얼핏 보았던 성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성 안의 모양새는 밝고 누런색으로 화려하고 멋있는 대리석 조각들이 채워져 있었지만 어딘가 음침한 기운이 있었다. 으스스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었기에 나는 옷을 여몄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성안을 조심스래 둘러보았다. 원래 인간이란 위험한 곳임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하지만 호기심으로 인해 발을 멈춰 세우고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간다. 나 또한 그랬다. 성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성 앞의 제단 위에는 붉고 어두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오래된 조각상은 나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 듯했고, 조각상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온몸이 굳어지고 피가 솟구쳐 오르는 느낌이었다. 온몸은 차갑게 변해갔고, 굳은 나의 몸은 도망칠 수가 없었다. 살려줘, 온몸으로 나는 외치고 있었으나 그 무엇도 나를 도울 수 없음을 알고 나는 절망에 가득 찬 울음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저 멀리서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무언가가 나를 향해 쳐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 그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 무언가의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까만색이었고, 눈 안에는 새까만 파리와 알 수 없는 풍뎅이과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징그럽고 소름 끼쳤다. 기괴하게 웃고 있는 커다란 입 속에 날카로운 이빨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납빛의 얼굴을 한 뱃사공이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이를 으드득 갈며 나를 향해 노를 젓고 있었다.

“어리석은 영혼아, 나는 카론이다. 네가 신의 권능을 모독하였다. 신의 뜻을 저버렸다면 내 친히 너를 심연으로 가는 지옥으로 인도해주겠다. 악마 케르베로스에게 네 몸뚱아리를 던져 갈기갈기 물어뜯게 할 것이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미 늦었다. 죄악으로 더럽혀지고 미련한 자야. 건방지고 어리석은 너의 행동에 분노에 정복된 영혼들이 네 손과 머리, 가슴을 쥐어 뜯으며 밟아 죽게 할 것이야. 무엇이 너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성서를 버린 것이냐? 네게 있는 그 하얗고 탐스러운 날개를 내가 갈기 갈기 찢어주마. 너는 앞으로도 지옥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야.”

그 무언가가 나를 향해 소름 끼치게 피로 물든 손을 뻗었고, 나의 등에 들러 붙어 있는 두 날개를 잡고 비틀려고 할 때, 나는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쳤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내 두 날개를 움직이며 그를 뿌리쳤다. 나는 반대쪽으로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 나갔지만 그 무언가가 훨씬 빨랐다. 그 무언가의 손이 나의 몸에 닿으려는 그 순간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에는 내 눈앞에서 스파크가 터진 것처럼 밝은 빛이 순간적으로 내 눈을 쏘았고, 이내 검은색의 어떤 무언가가 자신의 몸보다 커다랗고 긴 낫을 들고 서 있었다. 나의 온몸은 경직이 되어 있었고, 두 눈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최대한 온몸을 비틀고, 나의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풀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게 바로 신성한 성경책을 버린 죄라는 생각에 밖에 버렸던 책을 다시 주워왔다. 나는 온몸을 덜덜 떨며 이불속에서 뒤척이기도 하고, 벽에 붙어있는 파란 바다의 포스터를 보았으나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새벽 4시 40분. 일을 가려면 아직 너무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나에게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어서 밝은 햇살이 나타나 이 지옥 같은 곳을 나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현재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내 등을 만졌으나 그 무엇도 만져지지 않았다. 내 등의 아름다운 날개는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다시 고요히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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