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늘씨, 요새 왜 그래요? 이런식으로 정신줄 놓고 일할거면 나가요. 간단한 것도 이렇게 계속 실수하면 어떻게요? 예전에는 일 좀 하는 줄 알았더니, 요새 정신을 어디다가 팔아먹고 지금 그래? 그럴 거면 회사는 왜 나와요?”
오늘도 어김없이 팀장님께 크게 혼이 났다. 요새 이상하게 사소한 것도 자꾸 놓치고 실수를 한다. 스스로에 대한 비난은 답답함으로 바뀌었고,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왜 사람들 있는 앞에서 나한테 꼽을 주는 거지,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출고, 재고 관리, 원가, 잡일 등 이러한 일들을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나랑 맞지도 않는 일을 계속 하다보니 당장이라도 퇴사를 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지금까지 참고 어떻게든 버텼다. 이 회사가 아니면 나를 받아줄 곳이있을까, 내 자신 스스로 객관화가 너무나도 잘 되어있었기 때문에 쉬이 사직서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요즘따라 화가 주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숨겨놓았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나 조차도 낯선 이 분노에 온몸이 얕고 빠르게 떨렸다. 나는 잠시 화를 삭이려 비품실로 갔다. 마침 커피를 마시러 온 지은이가 나를 보고 반기다 이내 내 짜증 가득한 표정을 보고는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말을 아꼈다. 나는 비품실에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다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목소리를 줄인다고 줄였지만 이미 분노에 차오른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그럴 때마다 지은이는 소리를 낮추라며 손짓을 했다.
“지은아, 나 퇴사할까? 요새 너무 힘들다, 일이랑 잘 맞지도 않고. 팀장님도 그래. 개인적인 업무를 나한테 은근슬쩍 떠넘기질 않나, 내가 금요일 오후에 정리한 장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월요일까지 다시 해오라고 하질 않나. 내가 데이터 준비 다 했는데 대놓고 신경 쓰지 말라면서 무시하고. 부장님은 젊은 사람이 커피 타서 주는 게 더 맛있다고 타오라고 할 때마다 성희롱 당한 기분까지 든다니깐. 너무 많아서 말도 못 해. 더 이상은 못해먹겠어. 그냥 다른 일 하면서 살까봐.”
“언니 진짜 고생 많았지. 빨리 준비해서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자, 우리. 진짜 복권 당첨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복권 당첨 되면 당장 사직서부터 날릴 거야.”
“내가 왜 여기서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 난 여기서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냐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아니야.”
“그래, 언니. 언니는 똑똑하잖아. 언니는 어딜 가든 잘할 거 같아. 언니 같은 인재는 여기서 썩히면 안 된 다니깐. 언니 좋은 직장 찾으면 나도 데려가줘, 갈래. “
우리는 평소와 같이 회사 욕, 상사 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나는 이상하게 정말로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뇌리에 꽂혔다. 나는 혼자서 조용하게 읊조렸다. 내가 이딴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나는 한숨만 푹 쉬고 있는 지은이를 강렬하게 쳐다봤다.
“지은아, 나 정말로 여기 그만둘까 봐. 나 진짜 이곳에서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닌 거 같아.”
지은이는 나의 말에 깜짝 놀라 커다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 언니 어디 가게? 진짜로? 진짜 퇴사하게? 어디 갈 곳은 정한 거야?”
“아니, 그래도 여긴 더 이상 아닌 것 같아. 지금껏 쌓인 게 너무 많아, 내가 더 이상 참으면서 일하고 싶은 이유가 없어.”
나의 결심은 곧 확신이 되었고, 그날 나는 한 달 뒤에 퇴사를 하겠다며 사직서를 내밀었다. 몇몇의 동기들은 내 퇴사를 만류했지만 나는 이 결정이 맞다고 확신이 들어 그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작은 불씨는 나의 분노를 일으켰고, 내 마음속에 커다란 산불로 번져 걷잡을 수 없어졌다.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뭐든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이상한 자신감이 올라오며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화가 났다가 기분이 미친 듯이 좋았다가, 나의 기분은 하루에도 여러 번 널뛰기를 하였다. 그렇게 나는 한 달 뒤, 모든 짐을 정리하고 회사 밖으로 후련하게 나왔다. 나는 퇴사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을 하며 퇴사해서도 꼭 계속 연락하라는 지은이와 다혜 언니를 뒤로하고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퇴사한 당일의 날은 무척이나 맑았다. 모든 것이 나를 축복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것만 같았다. 진즉에 결정했어야 했던 일이다.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하느냐 나는 고민이 들었다.
퇴사를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고민에 빠졌다. 멍하니 공원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이 엄마, 산책하는 젊은 대학생 커플, 공원 책상에 앉아 한가롭게 바둑 두는 노인들,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들. 항상 바쁘게 출퇴근하느라 놓쳤던 평화로운 광경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일 낮에 돌아 다니는구나. 다들 뭐하는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그 순간 뭔가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며 등줄기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놀이터에서 노는 세 아이들의 모습은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두 손은 조잡한 검은 털이 숭덩숭덩 나 있었고, 두 눈은 이글 이글 타고 있었으며, 도마뱀의 비늘과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한 쪽 귀에서는 흡사 벌 떼가 엥엥거리는 듯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 때 그 철갑 여인이 말한 악귀임이 틀림 없었다. 그들은 실 없이 낄낄거리며 모래에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뚝 끊어졌고, 동시에 여섯 개의 까만 눈들이 나를 향해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생기가 존재하지 않은 죽은 눈을 하고 있었다. 벌 떼의 소리는 더욱 더 커져 내 고막을 찢는 듯 했고, 그 악귀들은 나를 향해 조금씩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미친 듯이 그들에게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역 근처로 도망쳤다.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만 간다면, 나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멀어져 역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내 온몸에 땀이 흥건 했고, 숨이 멎을 듯이 거친 호흡을 했다. 벌 떼의 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그들을 따돌렸음을 확신했다. 나는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다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은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이 많은 곳은 어딜까, 강남? 강남부터 가야겠다. 나는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들의 얼굴은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은 인간의 형상을 하지 않고 마른 가지처럼 뻣뻣해지기 시작했고, 머리에서는 삐죽하고 커다란 뿔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입 주변은 곰팡이가 피어올랐고, 그들의 이빨은 날카롭게 돋아났다. 그들은 나를 향해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쑥덕 쑥덕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저 년을 잡아라, 신의 은총을 받은 자다. 당장 저 년을 붙잡고 지옥으로 떨어뜨리자!”
나는 주 기도문을 큰 소리로 중얼거렸고, 그 소리에 주변에 나를 감싸던 악마들은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나를 피해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내게는 천사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악마를 물리쳤다! 악마를 물리쳤다!”
나는 무서웠던 것인지, 악마를 물리쳤다는 안도감 이었는지,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지만 입을 쫙 찢으며 실성한 듯 웃어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