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천사

11.

by 이연

"저기... 저 물 좀 주세요."

"네, 물 드릴게요. 진정 좀 되세요? 주치의 선생님이 환자분 깨어나시면 면담하신다 했거든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무슨 면담을 해요, 저기요. 저 나가게해 주세요.저 여기 있을 사람아니에요."

"...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까는 정신이 없었지만 옷차림이나 행동을 보니 간호사인 것 같다. 그럼 이곳은 병원이겠지, 내가 왜 병원에 있는 거지. 혼란스러워 정리할 틈도 없이 간호사는 내게 물을 주었다. 그리고 아까 그 난리를 쳤으니 오늘은 주치의가 이곳에서 지켜보자고 했다며 이 방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나는 언제 집에 가요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묵묵부답이 되었고, 이내 주치의와 면담을 해보라고 하며 쌩하니 나를 지나쳐 갔다. 창밖을 보니 조금씩 해가 지고 어두워져만 갔고, 몸집이 좋고 젊어 보이는 남성이 들어와 내게 저녁밥을 줬다. 식판이었다. 학창 시절에 먹던 식판을 다시 볼 줄이야, 나는 이 상황에서도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식사를 하고 나니 키가 크고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새하얀 머리의 할아버지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들어왔다. 그는 그 어떠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도 않고 사무적으로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누가 봐도 나 의사요 하는 듯한 태였다. 나는 억울해 그 의사에게 오늘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의 몸에 씐 악귀를 떼어내려고 노력했을 뿐, 그 어떠한 해를 가하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의사같이 보이는 그 할아버지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고 더욱 추궁하지 않았고, 그저 끄덕이다가 조금 더 지켜보겠다며 나갔다. 그 이후 간호사와 덩치가 큰 젊은 남성이 들어와 내게 알약을 먹으라고 주었고, 비록 한 알이었지만 나는 화가 나 소리쳤다.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냐 뭐냐, 나는 멀쩡하다. 직장에서 일도 멀쩡히 했고, 이상한 사람 아니다고 외쳤다. 내가 계속해서 저항하자 여자 간호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이 상황을 알렸다. 이후 여자는 네네 하더니 전화를 끊고 덩치 큰 남성에게 의사로부터 내게 약을 먹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방을 나갔고, 나는 내가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한 덕에 그 의사 할아버지도 내 진심을 알아줬구나 싶고 이 두 사람들로부터 이겼다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했다. 하지만 이는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매 저녁마다 내게 약을 먹이려 했고, 화가 나 내가 난리를 치며 베개나 식판을 던지면 이내 양 손발이 묶이고 주사제를 주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K.O 했다. 이곳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신이 나를 저버렸는지, 내게는 이들을 이길 힘이 없었고 약을 억지로 먹을 뿐이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저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나를 다인실로 옮겼다. 이 미친 사람들과 내가 무얼 하라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약에는 독이 든 것이 틀림없었다. 샤워를 하고 나니 나의 날개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 약으로 인해 신성한 힘을 잃었다. 신은 나를 저버린 것이었다, 아니 신이 나를 시험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약을 몰래 버리려고 할 때마다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찾아내어 끝까지 먹이곤 했다. 나는 그렇게 점점 더 힘을 잃어갔고, 내 귀에 들리던 천상의 목소리들도 나를 피해 갔다. 나는 이제 정말 아무것도 내게 남은 것이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의사가 또 찾아왔다. 나의 안부를 물었다. 내가 괜찮아 보이냐고,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내 소명도, 내 직업도, 내 연인도, 내 모든 것을 잃었다. 나는 별다를 것 없다며 힘 없이 말했다.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호자분, 그러니깐 하늘씨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스무 살에 조현병 진단을 받으셨다는데 혹시 하늘씨는 알고 계셨습니까?”

”조… 뭐라고요? 그게 뭔데요? “

“조현병, 예전 말로 하면 정신분열증입니다. 남들이 들을 수 없는 환청이나 망상 등이 있을 수 있죠. 혹시 어떠한 목소리가 들리거나, 나를 헤칠 것만 같은 것을 느끼진 못하셨습니까?”

“저는 정신병자가 아녜요 선생님. 저는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지만, 신의 계시를 받았어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제게 하얀 날개가 그 증거이고요. 지금 독약을 먹고서 잠시 보이지 않지만, 이 약을 끊으면 바로 보여드릴 수 있어요, 진짜예요.”

나는 울먹거리며 나를 증명해 보이려 했다. 의사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나의 말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려주었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늘씨, 보호자분과 연락해 보았습니다. 환자분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스무 살에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환자분의 병명을 믿지 못해 이를 무시하고 있었고, 5년이 지난 지금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해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발병 후 5년 이내가 가장 골든 타임인데 말이죠. 현재는 조현정동장애로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것은 현실과 경계가 흐려지는 정신 질환이고, 환청이나 망상, 사고 혼란을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좋은 치료 경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 전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요. 제가 무슨..."

"처음에는 질환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꾸준히 받고 약을 먹으면 호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치료시기를 조금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치료받으시면 됩니다. 약은 처방해 놓을테니 오늘 저녁부터 조금씩 드셔봅시다. 처음엔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치료에 필요한 과정이니 잘 드셔야 합니다.“

”호전되긴 하나요? 정신 질환 있어도 사회생활 가능한 거예요?“

”네. 꾸준한 치료를 받으면 호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약물을 중단하면 재발할 가능성도 높고, 회복까지 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정신질환을 진단받아 입원을 하거나 외래 치료를 받고 나서 다시 직장에 복귀하거나 사회생활을 잘 해 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나는 의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정말 정신질환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정신질환은 티비에서 나오는 그런 무서운 사람들이 아닌가? 그게 나라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조현병을 가진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역 앞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 조현병을 가진 아들이 아버지를 둔기로 살해한 사건. 내가 그들과 같다고? 나는 멀쩡하고 평범한데 왜 나한테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의사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짜고 나에게 몰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정신질환이 있었다면 엄마는 왜 내게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나는 스무 살일 때의 나를 기억하려고 애를 써보았다. 스무 살에 엄마와 정신질환 검사를 받은 것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의사에게 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의사는 치료를 위해 휴대폰을 입원 당시 어머니가 가져갔다고 했다. 치료를 꾸준히 받는다는 조건 하에 휴대폰을 가져와 쓸 수 있게 해 준다고 했고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힘없이 알겠다고 수긍했다. 의사는 떠났고, 나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하루종일 게으르게 잠만 자는 아줌마, 표정 변화 없이 하루종일 굳은 얼굴로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는 할머니, 끊임없이 떠들어 대며 이곳 저곳에 말을 거는 수다쟁이 30대 여성 등이 있었다. 내가 이들과 같은 정신병자라고, 나는 믿을 수도 없었고, 믿기도 싫었다. 나는 정상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방 밖으로 뛰쳐나가 복도를 하염없이 걸었다. 머릿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껏 성실히 아득바득 살아왔고, 나쁜 짓이라곤 한 번도 하지 않은 내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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