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는 그 여자를 피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내 옆자리의 고등학생 여자애가 침대에 누워 버둥거리고 있었고, 간호사가 그 여자애를 진정시키며 주사를 놓고 있었다. 남자 보호사는 그 여자애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빼앗았고, 자세히 보니 마스코 속의 철심이었다. 그 여자애가 버둥거리고 있을 때, 무심코 팔을 보았다. 그 팔에는 바코드 마냥 선이 그어져 있었고, 빨갛게 부어올라 있고 한쪽에서는 피가 맺혀있었다. 끔찍했다. 나는 속이 울렁거려 다시 방 밖으로 나가 복도에 있는 창문에 가서 숨을 골랐다. 그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주 슬픈 눈을 하고 있었고, 내게 살려달라고 외치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눈을 외면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여자애는 자해를 했기 때문에 자해를 하지 못하도록 내가 전에 묶였던 보호실에 묶였고, 진정제를 투여했다. 한 시간이 지나 그 여자애는 진정이 되어 보호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저녁시간에 밥을 먹지 않는 그 여자애 옆에 조용히 앉았다.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혼자 놔두면 안 될 것 같기도 했고,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기에 함께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 여자애랑 나랑은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긴 시간을 조용히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 그 침묵 속에 오직 TV 소리만이 방을 가득 메웠다. 그 이후로 그 여자애는 나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 지, 이것저것 조금씩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보다 그 여자애와 많이 편안해졌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말을 했다. 그 여자애는 계속된 우울증과 조증으로 인해 대학교를 휴학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그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고 한다. 들어보니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명문대였다. 돈이 없어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취업을 선택한 나였지만, 사회 생활을 오래 하고 좋은 동기들을 만나며 잘 지냈었던 터라 어쩐지 이상하게 그 여자애에게 연민이 생겼다.
”나, 처음에는 우울증이 심했어. 친구들도 적당히 있었고, 집도 못 사는 것도 아녔어. 근데 이상하게 자꾸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 고등학생 때부터 치열하게 공부하고 명문대에 들어가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대학교를 들어갔는데 치열해서 학점 따기는 힘들지, 외로움을 많이 타서 연애도 많이 했는데, 과에서 안 좋게 소문나서 휴학도 했어.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얕게 칼로 그었는데, 이게 점점 무뎌지더라고. 부모님도 내가 우울증이 있으니깐 더 봐주는 것도 있고. 자해가 습관이 되어 버렸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게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하게 되더라고. 그러다가 조증이 생기고 물건을 막 사서 한 번에 300만원 넘게 쓰고, 잠도 안 와서 며칠을 샌 적도 있어. 그래서 알았지, 내가 우울증만 있는 게 아니라 양극성 정동장애였다는 것을. 꾸준히 약도 먹고 그래서 좀 나아졌었는데, 내가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술도 먹고 싶고 그래서 끊었거든. 그래서 악화되어서 입퇴원이 반복되고, 증상은 더 심해졌어. 너는 약 끊지마. 그러면 더 힘들어져.“
나는 조용히 끄덕였다. 그 여자애는 항상 밝게 웃고만 있어서 그런 슬픈 사연이 있는 지 몰랐다. 어쩔 줄 모르는 내 표정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그 여자애는 내 표정 가지고 바보 같다며 깔깔 웃었다. 나는 머쓱해져 내 병실로 돌아갔다.
몇 주 뒤 나는 퇴원통보를 받았고, 다시 그 여자애를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친한 척하던 예쁘장한 내 또래 여자애의 끈질김으로 나는 그 여자애 번호를 받게 되었고, 퇴원하고 나서 연락하고 지내기로 나에게서 약속을 받아내고 그 여자애는 만족한다는 듯이 나를 보내주었다. 이름도 몰라 그 여자애를 ‘OO병원 여자’라고만 저장했다. 이름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퇴원을 하자마자 몇 안 되는 친한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사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현재는 꾸준히 치료를 받고 나아지고 있다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버림받을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길 바랐고, 그게 어렵다면 그 또한 내가 그들을 원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혜 언니는 그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고, 지은이는 매우 놀라워하였고, 전 보다 연락이 뜸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연이는 이 사실이 당황스럽다며 조금 생각해 볼 시간을 달라했다. 예상은 했지만 내 지인들은 내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나 만큼이나 믿기 힘들어했고, 자신들이 생각해 온 정신질환자의 이미지로 인해 나와의 연락을 꺼려했다.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퇴원을 하면서 서울에 살던 자취방을 정리했고, 지방으로 돌아가 엄마의 작고 낡은 집에서 다시 살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면서 붙여놓았던, 작고 예쁜 가정집에 시원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포스터를 펼쳐보았다. 그저 나만의 작고 편안한 집을 바라는 것조차 내게는 사치였던 것이었을까.엄마의 시골집은 여전히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맡아오던 그 냄새가 나를 안심시켰다. 사촌 언니는 내 소식을 듣고 나의 상태를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헤친 일로 인해 나를 다시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럴 것이다. 아마 사촌 언니와 화해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이고, 어쩌면 영원히 화해하지못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다시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정신질환을 가져도 취업은 가능했으나, 내가 다시 재발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쩐지 이상하게 예전만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은 느낌이었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일들을 한 순간에 겪어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조그마한 김밥집에서 일을 하다 괜찮아지면 다시 일을 하기로 엄마와 약속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내게 살가운 애정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네 마음부터 추스르고 챙겨. 너 자신이 우선이잖아.'라며 무뚝뚝하게 한 마디 툭 던지고는 일을 하러 나가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나는 다시 새롭게 태어난 마음으로 하나씩 천천히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