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 왜?”
“어, 점심 시간 맞지? 문자 답장 좀 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 했다. 됐고, 다름이 아니라 네 사촌언니 딸 백일잔치 이번 주 토요일이니깐 오라고. 너 어릴 때 많이 돌봐주던 언니니깐 꼭 가서 축하해 줘, 알았지? 시간 맞춰서 와. 집 주소랑 시간 문자로 보낼 테니깐. 그때 보자, 잘 지내고.”
아뿔싸, 아직 엄마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계획 없이 퇴사를 했다는 소리를 듣는 다면 엄마는 무조건 나를 향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사촌 언니의 아이라면 내게 귀여운 조카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너무 어렸을 때라 어렴풋이 기억만 났지만 사촌 언니가 장난감을 가지고 나를 놀아 준 기억 몇 개가 떠올랐다. 그 착하고 재밌던 언니에게 축하해 줄 일이 생겼다니, 기뻤다. 엄마가 보내준 사진에 아이의 얼굴이 있었는데, 사촌 언니의 눈을 빼다 닮았고 장난기가 많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게는 가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이에게 가서 축복을 내려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나는 최대한 화려한 공작새처럼 옷을 입고, 진하게 화장을 했다. 피 같이 새빨간 립스틱은 나를 돋보였다. 과하게 새하얀 파운데이션에 파란색과 초록빛이 도는 아이섀도를 발랐다. 아이를 축복해 주기 위해 사촌 언니의 집에 초인종을 눌렀다. 사촌 언니는 잠시 얼굴을 찡그려 보이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많이 야위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걱정해주기도 했다. 언제 봐도 참 착한 언니였다. 집에는 엄마도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도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 나는 참 반가웠다. 책상 위에는 백(百)이라고 적혀있는 흰색 떡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고, 옥색의 선물 상자, 흰색 꽃, 과일들이 나열해 있었다. 정말 예쁘게 잘해놨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이로 분홍색 한복을 입은 통통하고 귀여운 여자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었고,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파노라마처럼 웃고 떠드는 친척들, 반달 웃음을 하며 아이를 흐뭇하게 쳐다보는 사촌 언니 부부.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얼굴이 한없이 어두워지고 굳어져만 갔다. 아이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져 갔다. 검고 불길한 기운이 그 아이를 감싸고 돌았다. 아이의 파란 핏줄은 손끝에서부터 조금씩 올라타 아이를 덮어버렸다.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혀를 가증스럽게 날름거리며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도저히 어린아이의 표정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악마의 자식이다. 그 아이는 악귀에 물들었어. 처단해야 한다, 처단. 저 악귀로부터 사촌언니를 구해야 한다.”
하나의 목소리가 나의 귀 뒤편에서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하나의 목소리는 곧 여러 개의 목소리로 변해 빠르고 날카로운 말투로 나를 몰아 붙이듯이 공격하였다.
“가만히 무얼 하는 거야! 처단해라 처단! 악귀를 없애야 한다!”
"처단해야만 해! 죽여야 해! 저 악귀를 처단하지 못하면 더 큰 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나는 큰 소리로 엉엉 우는 아이의 얼굴, 주변에서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친척들을 번갈아보며 혼란에 빠졌다. 그러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촌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이가 심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테이블 위의 플라스틱 잔이 바닥으로 나뒹굴며 큰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가 신호였다. 나는 즉각적으로 사촌 언니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주변은 소란스러워졌고, 사촌 언니는 소리를 빽 질렀다. 엄마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 소리를 질렀고, 남자들은 나를 향해 달려들어 아이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나의 손을 떼어놓았다. 아이는 더욱더 크게 소리를 질러가며 온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슬로모션처럼 흘러가는 이 모든 장면이 어느 순간 내가 우당탕탕 크게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내던져졌을 때, 다시 원 시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미친 듯이 욕을 하고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질렀고, 사람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친척언니의 집에는 어두운 빛의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나를 덮쳤고, 그들의 울긋 불긋한 얼굴에 악한 기운이 맴돌았다. 나는 무서운 마음에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도망쳤고, 소리를 질러대었다.엄마는 나의 옷자락을 겨우 붙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이해를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무슨 일이지, 나는 사촌언니의 딸에게서 붙은 악귀를 없애려 할 뿐이었다. 나는 멍해졌다. 그들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지, 모두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나를 악한 사람들에게넘기려 한다.나는 혼란스러웠고, 이내 이 혼란스러운 마음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들을 지키려 한 행동 밖에 없다, 그들은 볼 수 없지만 나만이 볼 수 있다. 나는 화가 났고, 내 안에 품고 있던 온갖 험한 말을 내뱉으며 그들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두 팔을 제지당하며검은 차에강제로 탈 수밖에 없었고 조용히 끌려가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에게저항해 보였다.그렇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회색빛이 감도는 불길한 건물로 나를 끌고 갔다.
“이 거지 같은 것들아! 당장 나를 안 풀어줘? 너네들이 나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감히 나를! 나를! 내가 이곳에서 나가면 여기 있는 니들을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조그마한 창문만이 보이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나의 두 팔과 다리는 심판을 받는 듯 천으로 침대에 묶여있었다. 나는 나의 접힌 날개를 퍼덕 거리며 그들에게 경고했다. 나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감히 신의 뜻을 받는 내게, 이딴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신성하고, 그들은 부정하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촌언니와 친척들, 엄마, 그리고 이 알 수 없는 곳의 모든 인간들을 저주하고 벌을 내릴 것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다 온몸을 비틀며 벗어나려다 힘이 빠져 헉헉거렸다. 시간이 얼마 지났을 까, 우람한 몸집을 가진 두 명의 남성과 처음 보는 낯선 여자가 철커덕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여섯 개의 까만 눈을 보고 다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당황한 듯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이내 주사기를 들고 왔다.
"주치의가 주사 주래요?"
"네, 아티반 반 앰플이랑 할로페리돌 원 앰플 아이엠 인젝 하래요. 그리고 알티 유지하고요."
"알았어요. 선생님은주사 주고 물러서 있어요. 다른 보호사님이랑 같이 마저 묶고 갈 테니깐."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나는 내 일을 한 죄 밖에 없어, 하지 마. 나는 날카로운 주사기를 보고 온몸을 더 비틀었다. 망할 것들이 나를 묶어두고 고문하려고 한다. 나는 열심히 반항했지만 두 남성은 나의 사지를 붙잡고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여자는 황급히 주사를 내 엉덩이에 꽂았다. 대체 무슨 이상한 것을 주입하는 거야, 날 죽이려고 이것들이. 나는 따갑고 묵직한 바늘로 인해 인상을 찌푸렸고, 이내 내게 뭐라 뭐라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조금씩 눈이 감기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조심스럽게 떴을 때는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지금 내가 있는 방을 살펴보았다. 흰색과 회색 그 어느 중간의 색으로 칠해져 있는 방. 창 밖에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었고, 작은 방 안에는 덩그러니 차가운 침대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레 내 손을 쳐다보았고,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묶여 있던 나의 팔과 다리는 자유를 되찾았다. 나의 등에 있는 날개도 잘 붙어있었다. 이렇게 날개가 있으면 뭐 하나, 이런 곳에서 나갈 수도 없는 데.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문 앞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두들겼다. 목이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