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천사

8.

by 이연

“… 언니! 하늘 언니!”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보던 나에게 친한 직장 동기가 정신을 차리라는 듯 내 어깨를 세게 흔들었다.

“어...어, 지은아 왜?”

“아니, 언니 무슨 일 있어? 요새 멍 때리는 일도 잦고, 평소에 꼼꼼하던 언니가 안 하던 실수도 하니깐 걱정돼서...아까 언니 팀장님께 혼난 건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언니 최근에 그 나쁜년이랑 남친이랑 바람난 일 때문에 그래? 안 되겠다, 언니 오늘 일 끝나고 다혜언니랑 해서 맛있는 거나 먹자. 요 앞에 새로 생긴 포차 안주 맛있어 보이던데.”

말이 많은 친한 동기이자 나보다 두 살 어린 지은이는 몇 안 되는 친한 동기들 중 하나였다. 친화력이 없는 내게 먼저 다가와 준 것도 지은이다. 지은이는 나와는 달리 옆에서 쫑알쫑알 말도 잘하고 센스 있어 직장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 지은이는 뚝딱거리는 나의 반응에도 재밌다며 까르르 아이처럼 웃는데, 재미 없는 내가 마치 재미 있는 사람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나는 평소에 시끄러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은이는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이다.

“아, 아냐. 나 요새 몸이 좀 안 좋네. 계속 머리도 아프고 소화도 잘 안돼. 나중에 같이 밥 먹자. 오늘은 좀 쉴게.”

“언니, 변했어. 원래는 우리랑 노는 거 좋아했잖아.”

지은이는 입이 삐죽하고 나왔고,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어색하게 허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히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커피를 쏘겠다고 했고, 지은이는 신이 나 다혜 언니를 부르러 갔다. 다혜 언니는 지은이보다 먼저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알 수 없는 벽이 있어 허물 없이 대하기는 어려웠다. 며칠 전 다혜 언니가 내게 커피를 사주었기에 오늘은 내가 사겠다고 카드를 들이밀었으나, 다혜언니는 별 거 아니란 듯이 거절하였다. 처음 언니를 보았을 땐 워낙 선을 긋는 성격에 나를 싫어하나 싶었지만 몇 년간 함께 일을 하고 같은 집 방향이라며 말도 섞고 술도 마셔보니 원래 그런 성격임을 알게 되어 이상하게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그저 시크한 언니라는 생각이었다. 참 이상한 조합이었다.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싶었지만 팀장님은 우리가 같이 있을 때마다 '또 그 삼인방 모였네'라며 놀렸다. 연고지도 없는 서울에서 고립되어 있다 마음이 맞는 동기들을 만났다. 동기사랑 나라 사랑이라 했던가, 나는 맞지도 않는 일을 꾸역꾸역하며 힘들어했지만, 좋은 동기들 덕분에 어떻게든 이 회사에서 육 년이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항상 고마운 마음이 가득해 뭐든 해주고 싶은 내 착한 동기들이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붙잡힐까 나는 퇴근하자마자 도망가듯 집으로 향했다. 요새 나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너네들은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겪고 있는지 말이야. 아니, 너네 뿐이겠어.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일을 겪지 못할 것이다. 집 가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손을 길게 뻗어보았다. 손 끝부터 찬 기운이 나를 얼어붙게 했다. 칼 바람 속에서 숙덕숙덕 거리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며 이내 낄낄 거리며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 하였고, 나는 발끝부터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손을 휘저으니 내 주변에 차갑게 식어버린 낙엽들이 휘몰아쳤다. 마치 내가 낙엽을 치워버리라고 명령을 내린 듯 바람은 나의 손길에 따라 가로질렀다.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고, 나에게만 이런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요새 머릿속이 오래 전부터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엉망이었고, 짙은 안개가 낀 듯이 멍한 기분이 지속되었다. 오랜만에 나를 위해 사치를 부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배달앱을 켰다. 그동안 먹고 싶어 고민만 하며 장바구니에 넣어놨던 치킨을 거침없이 시켰다. 이럴 때 돈을 쓰지, 무엇을 위해 돈을 쓰냐 싶었다. 휴대폰을 끄고 온갖 잡 생각을 멈추기 위해 나는 치킨을 뜯고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맥주를 한 입 가득 들이켰다. 시원하다. 보글거리는 차가운 맥주가 나의 묵힌 고민을 씻어내려 주는 기분을 들게 했다. 맥주를 한 입 더 크게 들이켜고 적적한 침묵을 없애기 위해 나는 얼마 전에 사놓은 싸구려 이동식 티브이를 켰다. 가격은 저렴해도 자취생에게는 유익한 소비였다. 막상 티브이를 켜면 보고 싶은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었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이 나와 서로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하는 채널, 정말 비싸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채널, 평화롭고 따뜻한 집과 그 속에서 함께하는 가족을 보여주는 채널 등. 정말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하는 채널들을 보며 어쩐지 나는 더욱 외로워지고 쓸쓸해졌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만족시킬 만한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바꾸고 있었다.

“악마들이 오고 있어요. 준비 하셔야해요. 그들은 인간의 그림자에 숨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욕망을 식량 삼아 기생하고 있어요. ”

화면 속에는 단단한 쇠 갑옷을 입은 여인이 한 손으로는 창을 들고, 한 손으로는 양피지로 된 성서를 들고 나를 향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치킨 조각을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무서운 마음에 황급하게 기름이 잔뜩 묻은 손으로 채널을 돌리려 했다.

“제 말을 들어주세요. 신의 천사여.”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여인은 잔다르크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메시아이며 하늘에서 내려준 특별한 존재입니다. 저 또한 나라를 구원할 것을 하늘로부터 메시지를 받았고, 그대로 이행하여 하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이 세상을 구할 때입니다. 곧 이 세상은 악하고, 하늘로부터 추방된 영혼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예요. 시간이 없어요.“

“저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평범한 인간이라고요. 어떻게 평범한 제가 악마들을 쫓을 수 있나요? 저는 벌레 하나도 죽이는데 무서워서 벌벌 떠는 사람이라고요.”

“당신에게는 신이 내린 신성한 힘이 있어요. 요새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우연 같나요? 당신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날개는요? 당신에게 내려온 계시들은요?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할 수 있나요?”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등을 확인했으나 여전히 날개는 보이지 않았다. 철갑옷을 입은 여인은 부드럽게 미소를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 여인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도와주세요. 저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부디 악의 존재를 쫓아주세요. 신이 선택한 당신은 특별한 존재이고, 당신이 악을 쫓을 때면 신성한 존재들이 항상 당신 곁에 있음을 잊지 마세요.”

나는 울컥했다. 내가 책상을 세게 내리치자 화면은 지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철갑 옷을 입은 여인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벽에서는 화려한 무지개 색의 빛을 한 기운들이 어지러이 흔들어대며 내게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사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창문을 통해 보름달이 환하게 나를 비추었다. 내게 내리쬐는 달빛은 나의 가슴을 빠르게 뛰게 했다. 나는 눈을 깊게 감았다. 확실히 나는 전과는 달라졌음을 느꼈다. 나는 평범하지 않다. 그 순간 새하얗고 커다란 날개의 그림자가 벽에서 비춰졌다. 나의 등을 돌아보았을 때엔 날개가 보이지 않았지만, 벽에 비친 그림자에는 아름다운 날개가 달빛에 반사되어 보였다. 나는 자연스래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나의 얼굴은 광이 났으며 눈은 반짝거리며 진주알 같았다. 흥분이 되면서도 두려웠다. 내가 어떻게 악마를 내쫓아야 하는가, 예전부터 엑소시즘 영화나 무당과 같은 샤머니즘에 관심이 많긴 했다. 하지만 내게는 판타지 같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음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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