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밤이 되면 이상하게 울적해져 집 밖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곤 했다. 오늘도 역시 나는 어두운 길거리에 누런 빛으로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을 지나 하천까지 걸어왔다. 아직도 나의 질환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었고, 믿기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억울하고 슬픈 것도 내가 저항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뉴스에 나오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또 혼자가 되어버릴 까 너무나도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이 답답함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나는 병원에서 만난 내 또래 여자가 문득 생각났고, 용기를 내어 'OO병원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내 심박동 수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애는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지쳐 보였으나 내게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무슨 일로 차가운 애가 내게 전화도 걸어주셨어?"
“그냥, 울적해서 누군가한테 털어놓고 싶은데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같아서.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고, 내가 뭔 죄를 지었길래 이런 정신질환을 가졌나 싶고. 불공평해. 정상인으로 살아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에서 정신질환이라는 큰 리스크를 가지고 살아야 하니깐. 조현병은 뉴스에서 보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잖아. 나도 그렇게 될까? 이미 내 조카한테도 그런 적이 있는 걸. 또 내가 그럴까봐 무서워. 그냥 모르겠어. 내 질환이 나아지기는 할까? 다시 재발할까?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 게다가 엄마 집으로 돌아가서 사는데 이제는 짐짝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해.”
나는 그리 친하지도 않은 이 여자에게 나의 모든 생각을 쏟아내 보았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끊임없이 울분을 쏟아내다 이내 말의 끝을 울음으로 인해 흐렸다. 그 애는 고맙게도 조용히 나의 투정을 들어주었다.
“하늘아 울지마. 많이 힘들지?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알게 된 게 있는데 조현병 환자가 자의적으로 치료 중단해서 증상 악화되면 범죄로 이어질 수는 있어. 근데 모든 환자가 그런 것도 아니고, 조현병 환자 범죄 비율은 전체 0.04% 밖에 안 돼. 모든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너가 지금 치료도 잘 받고 있고 나아지고 있으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도 너처럼 걱정이 많아. 예전에는 내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실제로 뛰어내리려고 시도하다 붙잡힌 적도 있어. 우울증이 심해져서 별 짓을 다해봤는데, 그냥 그 때만 마음이 좀 편하고 오히려 더 힘들어져. 나중에는 팔에 긋는 것도 무뎌지거든. 근데 어느 누가 나한테 그런 적 있어. 정신질환도 감기 같은 거라고. 몸이 아프면 약 먹고 치료하면 금방은 아니지만 차차 나아지잖아. 정신도 그런 거래. 그거 듣고 나서 솔직히 아직도 반신반의하는데, 그 말을 믿고 싶어. 그리고 그렇게 믿어보자. 그리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러니깐 자책하지 마. 생각보다 정신질환 가지고 있는 사람 흔하다? 티를 안 내지만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많아. 내 주변에는 우울증도 많고, ADHD도 들었고, 내가 처음 듣는 것도 있었어. 그러니깐 우리 다 견디고 사는 건 똑같아. 같이 잘 살아보자, 우리. 포기하지 말자.”
“고마워.”
“너 근데 아직도 내 이름 잘 모르지? 서운하다. 이제부터라도 외워. 서지윤이야. 너 다음에 물어봤을 때 까먹으면 가만 안둔다.”
“알았어. 진짜 외울게.”
“진짜지? 믿는다. 아, 그리고 있지.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정신질환을 가져본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그래서 서로 대화하다보면 정보도 많이 얻게 되고 공감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깐 너무 밀어내기만 하지 마. 서로가 돕고 살아야지.”
“...알았어. 이만 끊을게. 쉬어. 오늘 전화 받아줘서 고마워. 좀 많이 힘들었는데 너한테 말하고 나니깐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
지윤이는 웃으며 다음에 자기가 힘들면 아무때나 전화하겠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하면 차단해버릴거라며 장난을 쳤다. 내가 귀찮았을 텐데 지윤이는 자신도 다 겪어봤다며 조용히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친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모르는 애에게 이렇게 내 모든 것을 내보였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지만, 한편으로는 덕분에 안정을 찾을 수있었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휴대폰을 보았을 때엔 다혜언니로부터 몇 개의 카톡이 와 있음을 알 수있었다.
'미안해,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려서. 네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들었을 때 적잖게 놀랐어.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 많이했어. 나한테는 정신지체를 가진 남동생이있거든. 정신지체를 가진 가족과 사는 것은 정말 힘들어. 모든 관심이 동생에게 쏠리는 것은당연하고, 가족들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빨리 소진되거든.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동생이 너무나도 싫었고, 미웠어. 그래서 네가 조현정동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동생 생각이 떠올랐어. 쉽지 않았을 텐데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 질환에 대해서는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동안 너를 봐온 바 너는 정말 좋은 동생이자 일도 잘하고 꼼꼼하고 내게 도움을 많이 준 친한 동기야. 그 사실은 변하지않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친한 동료로, 그리고 친구로서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지금은 치료를 잘 받고 많이 호전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좋은 소식 있길 바라. 시간이 되면 지은이랑 셋이서 만나서 밥이나 먹자. 지은이도 네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나는 조용히 탄천을 바라보았다. 탄천에 비친 나의 모습에는 새하얗고 커다란 날개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나의 등을 만져보았지만 날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비친 나의 모습에는 조용히 울고 있는여린 여성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 속의 눈빛은 강렬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내 날개, 나의 과거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다시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나의 모습만이 비칠뿐이었다. ‘그래, 푸른 바다가 딸린 나만의 작은집은 큰 게 아니었다. 그저 내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곳이 내가 바라던 집이고 장소다. 나는 지금 그 곳에 있는거야.’ 어느새 나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옅게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