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서기) 40년 경 가이사랴에 주둔한 로마군대에 고넬료라는 한 지휘관이 있었다. 그는 물론 로마사람이었다. 그는 경건한 군인이었고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물질로 구제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항상 하나님께 무릎 꿇는 신앙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리스도에 관해 깊이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 가이사랴엔 전도자 빌립이 살고 있었지만 고넬료가 빌립을 통해 복음을 전해들은 사실에 대해선 우리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고넬료는 당시의 세상을 흔들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전해들은 바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실존하시는 분이지만 사람이 스스로 그분을 알기는 쉽지가 않다. 하나님은 그 자신이 스스로 인간에게 알려주시기까지는 인간 스스로가 그분을 만날 수는 없다. 시나이 평지에서 자신을 알려주심으로 모세가 하나님을 뵈온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시기전까지는 인간은 그분을 스스로 찾기는 어렵다.
모세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가 그분을 만나기까지 여든 나이가 되도록 그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마흔의 나이에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지만 실수만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사십 년이란 세월동안을 하릴없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을 모른 채 우린 그분을 믿을 수가 없고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채 우린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없다.
그들이 만든 하나님
이 땅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들은 날마다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을 섬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저 수많은 인도 땅의 사람들도 그들의 하나님을 믿고 있고 현재 이 땅의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이슬람교의 중심에도 그들의 하나님이 있다. 셀 수조차도 힘든 수많은 아프리카 땅의 각 부족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고 아시아의 각 나라들도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길을 나선다고 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듯 그들은 알지 못해 그림자 같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만들어 따르고 있다.
불행한 것은 그들의 그 무지를 업고 악한 사탄은 하나님을 가장해 그들의 예배를 받고 때로 하나님을 가장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겁주고 무지한 그들을 종으로 삼는다.
하나님과 예수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잡동사니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분은 이렇게 불러도 되고 저렇게 생각되어져도 되는 그런 분이 아니다.
그분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자신이 가진 절대적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만든 세상과 인간들을 사랑하시지만 자신의 절대적인 거룩함으로 인해 그분은 죄에 빠진 인간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 역사의 1세기가 동틀 무렵 죄악으로 신음하는 이 땅의 사람들을 구하시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AD 4년, 나사렛 동네의 한 처녀였던 마리아의 몸을 빌려 오신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다.
하나님을 알면 예수가 보인다
예수이전에 하나님을 진실로 찾았던 사람들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를 만났다.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살았던 순결한 사람들은 다 그 예수를 만났다. 그들은 그 예수로 인해 하나님을 완전히 알게 되었고 그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믿는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여겼던 수많은 사람들은 끝내 그 진실의 눈을 뜨지 못한 채 그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세상을 살았다.
성전의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수많은 바리새인들은 끝내 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그들의 삶을 마쳤다.
간절히 찾고 찾으면
오늘의 백부장 고넬료는 누군가에 의해 알게 된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겼다. 그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했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남을 도왔으며 그 위대하신 분을 알아갈수록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 항상 그분 앞에 고개를 조아려 기도했다.
그러던 그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21세기의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고넬료도 늘 바쁜 직업 군인이었다. 그는 항상 바빴지만 항상 기도했다. 그는 늘 바빴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제 구 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이다. 나는 그 시간을 ‘기름부음 받은 기도시간’이라고 부른다.
온 세상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는 제 구 시에 운명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 구 시 기도시간에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의 지체장애자를 일으킨다.
제 구 시 기도시간에 고넬료는 기도하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를 만난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되어지는 것은 기도와 구제이다. 구원의 조건은 아닐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큰 손을 움직이는 축복의 이유가 된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자 그분만이 이 세상의 주관자임을 고백하는 믿는 자들의 호흡이다.
그리고 구제는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손이 되어 살아가게 하는 거룩한 행동이다.
고넬료의 집안에 성령이 내리시다
고넬료를 찾아왔던 하나님의 사자의 명령으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고 그 베드로의 방문과 함께 고넬료의 집안에 성령이 임하신다. 한 경건한 군인의 기도와 구제로 말미암아 이방인 세계에 성령이 임하셨다. 한 사람의 경건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역사는 이방인을 향한다.
고넬료는 성령 받고 세례 받은 최초의 이방인으로 기록된다.
기도가 없는 구제, 구제가 없는 기도
기도가 없는 구제는 단지 사회운동이 된다. 예수 없는 빵 나누기는 단지 배고픔을 면케 해 주는 자선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 역시 귀한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은 이 땅에서 밖에 상을 얻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의 구제 방식이다.
구제 없는 기도는 더 비극적이다. 입만 가지고 뭐든 다 하는, 말만 잘하는 껍데기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들은 겨우 구원을 받을지는 몰라도 자손대대로 가난뱅이로 살아갈 가문의 운명을 떨치지 못한다.
21세기의 고넬료로 살아갈 당신의 삶은 이것,
1. 날마다 기도하라. 그것은 경건으로 가는 대로이다.
바쁠수록 지혜롭지 않으면 기도시간을 적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 바쁘기 때문에 기도한다고 자신에게 고백하라.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당신은 세상에 톡톡히 속아 살아가는 것이다.
2. 제 구 시 기도시간을 정하고 목숨 지켜 그 시간에 기도하라. 꼭 오후 3시만이 제 구 시 기도시간은 아니다. 당신의 평생의 ‘제 구 시’기도 시간을 정하라. 전략적으로 기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사탄은 당신의 기도시간을 빼앗기 위해 새로운 전술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를 이기지 않으면 그가 당신을 삼킨다.
3. 구제하는 삶을 생활화하라. 이것 역시 전략적으로 하지 않으면 프로가 될 수 없다. 당신의 수입의 일부를 떼어 구제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라. 계획 없는 구제는 감정에 치우치기 쉽다. 당신의 수입 속에는 남을 섬기기 위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라. 당신이 번 돈속에는 당신의 땀만이 아닌 사회적 혜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넬료는 구제에 관한한 전문가였고 기도에 또한 거장이었다. 당신이 하는 구제가 기도를 만날 때 당신의 삶은 격이 다르게 된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손이 당신의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