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한 마을로 들어갔을 때에 열 명의 나환자가 그를 보고 멀리서 소리쳤다.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같은 병으로 인해 만난 그들은 그 병으로 말미암아 가족들과 헤어져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 중의 아홉은 유대인이었고 한 명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알다시피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서로 상종치 않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병으로 인해 그 민족적인 갈등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긴 듯하다.
삶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병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타들어가는 사람에게 산다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사람들은 위급함을 느끼기 전에 정작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잘 모른다.
민족적인 반목의 정서로 인해 서로의 땅을 잘 밟지도 않았던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지만 이 열명의 병자들에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 열명의 친구들에게서 ‘하루만 더 빨리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하루만큼 더 값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요즘은 한센 씨 병이라고도 불리는 나병도 다른 질병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병이지만 그 병은 공동체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병의 원인이 죄악과 관계되었다는 터무니없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사람들에게서 배척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엄격히 격리되었고 만에 하나 그 병에서 치유가 됐다 할지라도 제사장들에게서 확인을 통해 철저히 관리 되어졌다. 물론 당시의 제사장들은 그러한 정결 의식 법에 정통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예수의 그 말을 들은 그 열명의 병자는 그들의 발걸음을 제사장에게로 돌렸다. 병이 나은 것이 확인되어야 만이 제사장에게로 가서 보일 수 있는 것인데 그들은 예수의 말을 듣고 곧장 제사장에게로 향했던 것이다.
믿음의 정도(quality)는 그가 믿는 대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신이 믿는 상대가 어떠 하느냐에 따라 그 믿음의 순종은 달라진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은 믿음의 고백에서가 아니라 그 순종에 따른 대가이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그들은 모두 병이 나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육체를 끊임없이 감싸고 있던 그 병이 그들을 떠난 것이다.
제사장들마저 그렇게 단체로 몰려든 그들 모두의 병이 깨끗해졌음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는 가.
갑자기 다가 온 그 기적의 치유 속에서 기뻐 춤추던 그들은 마침내 정신을 가다듬고 가족을 향해 뛰었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가족이었는가.
그런데 그중의 한 사람 사마리아인은 다시 오던 길을 달렸다. 아무도 없는 벌판을 달리며 하나님을 큰 소리로 찬양했다. 삽시간에 달라진 세상을 보며 그는 뛰는 가슴으로 예수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감사를 올렸다.
예수는 다시 돌아 온 그로인해 기뻤지만 나머지 아홉에 대해선 마음이 아팠다.
감사를 생활로 옮기는 사람은 이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이 세상 사람의 10분의 1인지도 모르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곧장 집으로 돌아간 아홉 명의 병자들도 예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믿음으로 치유함을 받았다. 믿음이 구원받는 조건임은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믿음은 신앙의 수준일 뿐이지 삶의 수준은 아니다. 믿음이 있다고 다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가장 첫 단계이지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 날에도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에게서 실망하는 일이 적지 않다.
믿음은 시동 모터이다
차가 움직이기 위해선 시동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차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연료가 공급되어져야 하고 능숙한 기술이 필요하다.
믿음은 삶에서 시동 모터 역할을 하지만 그 삶이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성령님과의 교제가 필요하다.
성령의 은사는 믿음으로 받지만 성령의 열매는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것.
열 명의 나환자는 길가에서 예수를 만나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제사장들에게로 가다가 그들의 병이 치유되었다. 예수를 향한 그들의 믿음이 그 치유를 당겼다.
하지만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그의 삶의 성숙은 그가 치유되기 전부터 그에게 있었다.
그의 육체는 병들어 낡아있었지만 그의 영은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깨어 있었다. 그는 치유된 뒤 예수께로 달려오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이었다.
성숙은 순간적인 산물이 아니다.
당신이 이 세상의 상위 십분의 일의 사람이 되기 위해선,
1.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라.
말씀에 대한 당신의 순종이 당신을 위협하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당신을 살린다.
2. 날마다 그 말씀을 읽고 외우고 읊조리라.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입김이다. 날마다의 그 읊조림이 당신을 이 세상에서 빛난 사람으로 세워줄 것이다.
3.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 모든 사람을 매일 떠올려라.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자주 감사를 표해라. 은혜를 감사하는 것은 당신의 삶에 오아시스를 세우는 일이다. 당신의 삶 군데군데에 그 오아시스를 만들어라. 당신은 마르지 않는 깊은 뿌리를 가진 시냇가의 나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