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의 원래의 이름은 요셉이다. 바나바의 고향은 구브로섬(키프르스)이었고 레위지파 사람이었던 그를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바나바라 불렀다.
교회의 아름다운 부흥
성령이 오신후로 예루살렘엔 교회가 시작되고 그 교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흥해 간다. 그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주님을 섬기고 서로를 아낌없이 나누었다. 그래서 그 교회 안에는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사도행전의 기록자는 말한다. 그 이유는 그들 중의 부유한 자들이 자신의 것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그 교회 안에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밭이 있으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에게 있는 여분의 물질들에 중대한 의미가 배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령이 그에게 오시고 난 뒤에 그는 이제껏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명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초대교회가 갑자기 부흥되면서 그 교회 안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가난한 유대인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줄 의무를 깨닫는다. 그래서 그 교회안의 무엇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들을 내놓게 되고 사도들은 그것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바나바는 자신에게 있는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껏 자기의 것이라고 여겼던 그 재산이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쓰여 질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깨달아 그는 그것들을 처분한 모든 돈을 겸손히 사도들의 발 앞에 내려놓은 것이다.
지갑이 회개한 사람이 진정 회개한 사람이라고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그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어느 날 예수는 무리 앞에서 가르쳤다.
“남의 밭을 갈다가 그 속에 감추인 값진 보화를 발견하거든 그것을 도로 감추어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모든 소유를 파시오. 그리고 다시 돌아가 그 밭을 사도록 하시오.
살아가다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거든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모든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사시오.“
바나바는 너무나도 놀라운 보화이며 진주와 같은 예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돌아가서 자신의 밭을 팔아 그 보물을 샀다.
크게 투자한 일에 사람들은 애착을 가지듯 자신을 몽땅 헌신한 사람들에게서 위대한 섬김을 본다.
바나바의 헌신이 교회에 힘을 주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 그는 초대교회안의 위로였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바나바라는 이름
바나바라는 이름은 사도행전에서만 스무네 번이 나온다.
그의 이름이 나오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로인해 위로를 얻고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며 교회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의 이름이 씌어져 있음을 우린 발견한다.
사울이 바울 되는 곳에 있었던 바나바
세기의 핍박자 사울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잡아 죽이러 가던 다메섹 길가에서 예수를 만난 뒤로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그는 그 후로 자신이 핍박하던 사도들과 교회의 사람들을 사귀고자 했지만 도리어 그들은 지난날의 사울을 떠 올리며 그를 두려워하고 그의 진실을 쉬이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바나바는 그를 데리고 사도들에게 찾아가 그가 예수를 만난 것과 그 예수가 그에게 어떤 말씀 하셨는지를, 그리고 그가 그 다메섹에서 예수를 어떻게 전파 했는지를 일일이 설명했다.
그로인해 초대교회는 사울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동료로 받아주었고 함께 사역하게 되었다.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
그 후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으로 복음에 반응한 안디옥 지방 사람들을 위해 선교사로 파송된다.
착한 마음과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했던 바나바로 인해 안디옥에 부흥이 찾아온다. 그러자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지 않고 오랫동안 자신의 고향에서 머물고 있었던 바울을 찾아가 그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온다. 그리고 그 바울과 함께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어 간다.
그로인해 안디옥 교회는 더 큰 부흥을 맞아 이방세계로 향하는 선교중심이 된다.
바나바는 어디서나 사람을 세우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수십 년을 함께하며 복음을 전하는 동료로 살아간다.
그는 진정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하는 위로의 아들로 살았다.
바울과 다투기도 했지만
의외의 일이긴 하지만 바나바는 바울과 심히 다툰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전날 마가와 함께 전도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가가 도중에 그들을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그 다음번의 전도여행 시에 마가를 다시 데려가는 문제에 대해 그들은 의견이 맞지 않았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가길 원했고 바울은 전날 그들을 두고 떠났던 마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그 둘은 다투게 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한동안 헤어져 각자의 길을 떠난다.
오래된 그 일을 두고 우린 누구의 생각이 옳았었는지를 잘라 말하긴 어렵다. 바울은 원칙을 중요시 하는 일 중심의 사람이었는데 반해 바나바는 그보다는 연약한 사람을 용납하고 다시 기회를 주고자 했던 사람중심의 사역자였다고 보아진다.
하지만 결과를 두고 볼 때 바나바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때 성숙치 못한 행동으로 사도들에게 누를 끼친 마가였지만 후에 그는 초대교회의 훌륭한 일군으로 거듭났으며 훗날 바울과도 다시 동역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향기로운 사람 바나바
바나바를 꽃으로 비유하자면 장미처럼 그리 화려하지도 그리 매혹적이지도 않지만 가시가 많은 연약한 가지에 달려있는 꽃이 아니라 튼튼하고 큰 나무에 피어있는 맑고도 그윽한 빛깔에 이루 표현 못할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라일락과도 같다. 그의 나무아래를 지나며 사람들은 아름다운 빛깔에 마음이 상쾌해지며 내 품는 그 향기에 영혼마저 깨끗케 되는 경험을 한다.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
어딜 가나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부리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바나바처럼 소리 없이 그가 속한 공동체를 살아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바나바는 그의 이름을 빛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섬기는 공동체를 명예롭게 한다.
하늘의 아버지는 그가 살았던 섬김의 삶을 귀하게 보실 것이고 그의 나라에서도 그를 큰 자로 여기실 것임에 분명하다.
당신이 바울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 바울과 같은 사람이 희귀하다면 그것은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