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이십 칠세가 된 아내를 먼저 그 땅의 흙으로 보낸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결혼을 위해 평생을 그와 함께 했던 나이 많고 신실한 종(그는 엘리 에셀이었을 것이다)을 부른다. 그의 나이 일흔 다섯에 떠나와 반평생을 넘게 가나안에 살고 있었던 그는 자신의 종을 그의 고향으로 보내어 아들이삭을 위해 신부를 데려 올 것을 명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방 땅 가나안 여인이 아닌 자신의 고향에 살고 있는 자신의 족속 가운데서 아들의 신부를 데려올 것을 원했다.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가나안에도 여인들이 많았지만 아브라함은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자신의 고향 메소포타미아에서 찾기를 원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자고 그 반은 여자다. 여자에겐 남자가, 남자에겐 여자가 그렇게 많지만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만나야 할 사람은 지구상에서 단 한 사람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가나안은 세상- 자신이 살고 있었던 가나안은 범죄 했고 타락했었다 - 이고 고향 메소포타미아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가 그의 며느리를 그 고향땅에서 찾은 이유는 그가 세상에 속해서 살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크리스천들은 이 조상의 행동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이 그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야 되고 그녀는 하나님의 딸이어야 한다.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신실한 종은 아브라함에게 그곳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를 따라 가나안으로 오려는 여자가 없다면 그의 아들이삭을 데리고 그리로 가도 좋은 지를 물었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NO였다. 그에게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나이 일흔 다섯에 그를 처음 부르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시어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그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세기24:7). 그는 신실하신 그 언약을 믿었기에 그의 아들이 아내를 얻기 위해 축복의 땅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내를 얻는 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여자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는 일은 우둔한 일이며 남자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 아브라함에게도 고향은 정겹고 그리운 친척들이 사는 곳이지만 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보다 그것들은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이 땅엔 아직 사람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며 부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알았다. 그 하나님이 그 복의 근본이심을.
오늘 나에게 (그녀를)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명을 받들어 낙타 열 필과 그 등에다 주인이 보낸 온갖 귀한 예물들을 싣고 가나안 땅을 떠나 주인의 고향에 이른다. 신실한 종은 그 성에 도착하자마자 그 주인의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그는 그의 주인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응답하시기를 구한다. 기도는 구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성공을 준비하는 자의 첫 번째 행동은 바로 기도이다.
여인들이 물 길으러 오신 시간에 도착한 그 종은 하나님께 아뢴다. 물을 긷는 한 소녀에게 마실 물을 그가 구할 것인데 그에게 마실 물을 주되 그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낙타들에게 까지 물을 마시우게 하는 소녀가 있다면 그녀가 바로 주인의 아들이삭을 위하여 주님이 예비한 신부인줄을 알겠노라고 말씀드린다.
이 대목에서 주석가 메튜 헨리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는 그의 주인의 아내가 겸손하고 근면하며, 자기가 할 일을 잘 돌보고 처리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또한 기꺼이 일에 임하는 자로 자란 여인이기를 바랐다. 또한 그 여인이 예의가 바르고 나그네에게 너그러운 성품을 지닌 사람이기를 바랐다. 주인의 아내를 구하러 갔을 때 그는 유흥 장소나 공원에 가지 않았다. 또 그런 곳에서 신붓감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우물가'로 갔던 것이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즉시 일을 시작하셨다. 한 소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우물가로 나온 것이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훌(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아브라함의 친족이다. 종은 그땐 몰랐지만 그의 주인이 당부했던 ‘내 고향, 내 족속(my own relatives)’이란 조건이 들어맞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기다려야 한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기도한 사람은 일이 끝날 때까지 흥분해서도 안 되고 조급해서도 안 된다. 물론 그 일이 더디 온다고 실망해서도 안 된다 다만 기대하고 기다려야 한다.
심히 아리땁고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사람의 외모와 육체의 순결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특히나 21세기의 리브가들에게 그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얼마든지 뜯어 고칠 수 있고 다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성경 - 그것은 하나님의 기록이다 - 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녀가 그것도 심히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이제껏 순결한 소녀였음을 하나님은 그 책(The Bible) 두루마리에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가슴팍에다 그것을 기록한다.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시간에도 들판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었을 이삭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우 실 하나님의 이름 가운 자리에 버티고 있는 이름 ‘이삭’이기 때문이다.
순결했던 여인 마리아가 있었고 또 의로운 사람 요셉이 있었으며 그들이 서있었던 한 지붕 아래에 메시아가 오셨다.
그 사람이 그녀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브라함의 종은 우물가로 내려가 물을 가득 채워 올라오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는 하나님께 구했던 그대로를 살핀다. 먼저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해놓고는 그녀가 자신뿐만 아니라 낙타들 -열 마리나 된다. -에게도 물을 마시게 할 수고를 아끼지 않는지를 살핀다.
연약한 소녀 리브가는 그 사람에게 물을 주어 마시기를 다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물을 급히 낙타들의 구유에다 붓고 다시 바쁘게 우물을 오가며 모든 낙타들을 위해 물을 길어 날랐다. 나는 그 낙타들이 열 필이나 되었음을 다시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낙타들이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마시는 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얼마나 기쁘고 흥분 됐을 까? 그녀는 심히 아리따웠고 친절했고 부지런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더 기다려야 한다.
신실했던 종은 그녀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했다(창세기24:21).
네가 누구의 딸이냐?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며 아브라함의 충성스런 종은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 반 세겔 - 한 세겔은 11.4 그램이다 - 의 금 코걸이와 열 세겔의 금 손목 고리 한 쌍을 주었다. 그 선물은 이제껏 그 소녀가 수고한 땀에 대한 감사이다. 그때까지의 정리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물었다. “네가 누구의 딸이냐?”
이제까지의 상황은 그 종을 만족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다 된 것은 아니다. 그 주인의 고향에 와서 아름다운 소녀를 만났지만 그가 넘어가야 할 다음 단계는, 그가 만나 결정해야 할 처녀는 ‘주인의 친척’이라야 한다. 결정권은 그에게 있지만 그는 주인의 조건을 만족 시켜야 한다.
이제 그 주인의 종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 소녀가 입을 열 때까지 늙은 종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녀가 만약 이 땅에 많지 않을 주인의 친척중의 하나가 아니라면 또 어디서 그만한 소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밤 나와 내 친구들, 그리고 이 약대들은 어디서 유숙을 해야 하나.’
주인의 집을 떠나온 지 오랜 시간이 흘러 지친 노인의 심경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가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있다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함부로 세상에 던질 수 없는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귀한 존재들이다.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그 노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까? 그렇게 듣고 싶은 그 한마디의 말이 그 아름다운 소녀의 입을 통해 자신의 귀로 들어왔다. 그 소녀가 바로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의 친족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딸임을 확인한 그는 머리를 숙여 주인의 하나님께 경배를 한다.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였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창세기 24:27).”
우리가 이 이야기를 더 계속해서 뭐하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살펴 본 이상 다른 이야기가 뭐 필요하겠는 가. 나는 성경이 아닌 내 책이 두꺼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메소포타미아의 한 소녀는 그 땅을 떠나 천만인의 어미가 되고 그 씨들로 인해 대적의 성문을 취하는 어미(창세기24:60)가 되는 축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제 세상을 감동시킬 당신들의 웨딩 스토리
나는 기대한다. 이 땅의 거룩한 젊은이들로부터 생겨날 아름다운 가정들을 ,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해 순결한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들이 자라 이루어 갈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은 속성상(그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거룩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는 죄인도 사랑하시지만 그의 나라를 가꿀 일꾼들은 세상들 가운데서 거룩한 자들을 뽑으신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새의 여덟 아들들 가운데서 다윗을 택하셨고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에서 요셉을 뽑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셨다.
나는 지금의 아내를 기도 중에 만났고 세계 최대 교회를 목회하는 조 용기 목사나 세계적인 신유 사역자 베니 힌 목사도 그들의 아내를 기도 중에 하나님의 지시함으로 만나 그들의 가정을 이루었다고 그들의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나의 아들들의 리브가들을 그렇게 만나길 원하고 나의 딸들의 이삭들을 그렇게 만나게 되길 부지런히 기도한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뛰고 행복하다.
결혼은?
1. 이 세상의 한 남자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단 한 여자를 만나는 일이고 이 세상의 한 여자가 그녀를 위해 기다리는 단 한 사람의 남자를 만나는 일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그렇게 쉽게 만나지는 것도 아니다.
깨어 기도하는 남녀에게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세상만 따라가는 남녀들에게는 그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2. 아름다움은 순결함에서 오며 순결함은 기다림에서 온다.
이삭을 만나려는 여인은 아름답고도 순결해야 하며 리브가를 만나려는 남자는 해가 지도록 들판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야 한다. 그 가정의 아버지는 하나님 되시고 그 가정의 스승은 성령님이 되시며 그 가정의 구원자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굳건하고도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에게서 가지를 내린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