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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Night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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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 Sep 20. 2024

천사는 까마귀다

햇빛 그림자가 빛을 삼킨 날. 태현은 축축한 숲속을 자동차로 가로질렀다. 나뭇잎들은 영양소를 끌어안았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몇몇 꽃들은 도로 위로 낙하했다. 그 낙하는 태현과 비슷했다. 공허를 채우기 위해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졌건만 결국 서현을 잃었으니. 위태롭고 젖어 있는 눈. 그 속에 하얀색 2층 별장이 펼쳐졌다. 단순하지만 철장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곳. 그 곳으로 태현은 자동차를 철장 앞으로 밀어넣었다.

 1층 통창으로 보이는 테일러. 테일러는 하얀색 앞치마를 입고 자신의 몸보다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초록색 배경 안에 긴 머리의 여자가 형체를 드러냈다. 테일러는 캔버스 모소리에 파란색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T.L. 태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칠게 연 문소리에도 테일러는 꿈쩍하지 않았다. 유화 물감의 기름냄새가 바닥, 벽 가릴 것 없이 거칠게 회전했다. 태현은 그 냄새에 정신을 놓쳐버렸다.

 테일러의 여인이 옆으로 쓰러지고 물감이 앞치마 위로 뛰어들었다. 테일러는 붓을 쥔 채 무표정으로 태현을 바라봤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붓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앞치마를 벗었다. 무슨 일이실까. 갑자기. 태현은 테일러의 멱살을 부어잡았다. 너지. 너밖에 없어. 숨소리조차 귀찮은 듯 테일러는 태현의 얼굴 위로 침을 뱉었다. 이런 짓을 하는 것도 너밖에 없지. 테일러는 입이 찢어질듯 웃다가도 살짝 화난 얼굴로 태현의 손을 뿌리쳤다. 참 너도 단순하다. 이렇게 바로 달려오면 어떡해. 내가 네 약점 쥐고 있는 거 광고하는 꼴이잖아. 테일러는 태현을 비웃곤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마셨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각오하고 있겠니 지금. 너도 대가 받아야지. 형. 태현은 바닥에 떨어진 팔레트를 짓이겼다. 네가 예술가야? 아니지. 가현이가 진짜 예술가지. 맥주의 마시던 테일러의 울대뼈가 멈췄다. 테일러는 아담이 될 수 없었다. 사과를 주저없이 먹은 사람과는 달리 이름 하나에 흔들렸으니까. 입 닫아. 난, 가현이를 건든 게 아니야. 너를 죽이고 싶은 거지. 네가 다 앗아갔잖아. 너야말로 네 힘으로 한 게 있어? 결국 서현이 가현이 연우. 그 애들이 해낸거지. 너가 한 건 없어. 남들한테 불행만 주는 놈. 테일러의 말에 태현은 숨을 가쁘게 쉬었다. 파랗던 하늘 위에 까마귀 떼가 몰려들었다. 까마귀 소리가 울려퍼지고 바니쉬 냄새가 둘 사이를 맴돌았다.

 파란 하늘 아래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운전하는 서우의 눈앞에 번진 빗물은 눈꼬리에 맺혀 흘러내렸다. 갑자기 뭔 비가 와. 서우는 싸늘한 기분에 질주하기 시작했다. 희미한 창문 너머로 하얀색 별장이 나타났다. 별장 앞 문이 부서져 있는 걸 보고 차를 멈춰세웠다. 그 옆에 태현의 차가 보였다. 서우는 옆좌석에 둔 옷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서우의 눈빛은 무언가를 결심한 향연처럼 보였다.

 부서진 철장을 피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총을 장전하고 앞으로 겨눈 채 걸어갔다. 주변을 살피며 문 가까이 다가가자 문고리가 박살난 채 제 집을 잃어버렸다. 권총으로 문을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이아몬드 상들리에가 천정에 줄줄이 달려 있었다. 대리석 바닥은 얼굴이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서우는 기름 냄새에 팔목으로 코를 막고 쫓아갔다. 그 냄새 속에는 태현과 테일러가 서로를 경멸하며 서 있었다. 지태현? 서우의 목소리에 네 개의 눈빛이 서우를 돌아봤다. 서우의 권총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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