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코 Oct 19. 2024

Exit


 탈출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이쯤되면 왜 독립을 안 하는지 궁금해 할 텐데. 그런 질문할거면 돈 주고 말해라. 최소한 1억. 우울에 지치면 심장 뛰게 하는 것도 일이다. 탈출은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다. 은밀하고 숙연하게. 초겨울에서 한겨울로 넘어가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갑자기 추워져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게 그래야 온전히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이별도 그렇지 않나. 전조증상 하나 없이 사랑하는 이가 떠나가면 놀라는 것처럼.

 공기도 못 느낄 때가 오면 혼자 칵테일 바에 갔다. 그러다가 친구를 만난다. 나와 같은 삶은 살아온 사람. 유성.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다른 삶이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오늘은 유성에 대해 읊어보겠다.


 유성을 만난 건 고요함이 삼켜버린 새벽이었다. 한창 불면증에 시달렸던 때라 공기를 마시는 것도 나에겐 일이었다. 재즈 음악이 흐르던 바 안, 나는 홀로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유성은 진토닉 한 잔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무슨 영화 좋아해요? 첫 질문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독립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넘어 책에 대해 나눌 땐 시계태엽 오렌지를 빼먹을 수 없었다. 내용은 폭력적이고 이질적이지만 나에겐 문장을 자유롭게 만들어준 책. 물론 나 역시 때때로 중간 보다가 책을 덮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해진 것만 쓰던 내 세계에 자화상을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 유성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유성을 볼 때면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 혹은 그녀의 공간은 아늑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따뜻한 사람. 술이 한 잔씩 들어갈 때면 유성의 유년 시절을 깊게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유성인 이유는 태명이며 음악을 좋아하고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벗어 났다고 했다. 처음 집을 나와 일을 했던 곳은 수족관이었는데, 청소할 때면 애 먹었던 말에 서로 웃기도 했다. 그게 다 추억이 되고 현재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사는 모습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유성은 말했다. 무작정 집에서 나오면 집이 아닌 돈에 무너지고 또 다른 것들에 무너지니 단단한 등과 어깨를 가지고 나오라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는 몰랐다. 근데, 이제는 안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물론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하나가 너무나 치명적이지만. 그래서 살아간다. 밖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게.

 유성은 말했다. 원한다면 내 비석 위에 파란 장미를 흩날려 줄 수 있다고. 내가 살길 바라지만 막지는 않겠다고. 감히 고통을 이해할 오만함은 키우지 않겠다며 말이다. 나는 그 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영원히 내 행복을 비는 이가 있다니. 너무 값진 인생 아닌가.


 출구는 찾는 게 아니라 돈으로 만드는 거다. 잊지 마시길.


 또 내 장례식에는 가족 그 누구도 오지 마시고 오롯이 내 친구들만이 서로 위로하는 자리가 되길.

이전 08화 Reality ba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