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소설

by 아코

1부


아빠가 피칠갑을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빠가 내 다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아빠의 손을 발로 짓이겼다. 나는 성모상에 머리를 부딪힌 아빠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소파에 풀썩 앉았다. 그런 나를 승현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괜찮아? 승현은 용기내어 뱉었다. 나는 다소 허탈하게 대답했다. 알잖아.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사실 이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것 뿐. 내가 지금 이순간을 기다려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자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다 잊혀질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 화가 치밀었다. 아빠는 내 자유를 뺏어간 사람이었다. 이를 테면 아빠와 싸우지 않고 조용히 저녁 식사를 하는 것 말이다. 그건 고사하고 매일 밤 아빠가 술에 취하질 않길 빌었어야 했다. 누구한테 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나 확실한 건 내 소원을 들어줄 누군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매일 밤 나는 아빠의 욕과 알 수 없는 분노에 울어야만 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종종 집을 나갔다. 쓸모없는 것. 눈깔을 뽑아버릴라. 거침없는 말도 서슴치 않게 들려왔다. 그게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술이 깨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고 내 눈치를 살금살금 봤으니까. 결국 내가 한 마디 하려 하면 화를 얼버무리며 과거를 끄집어낸 내 탓이라고 했다. 이 집에 내 편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계단 밑 떨어진 흥신소 명함을 보기 전까지.

그날도 술 취한 아빠를 피해 아파트 계단에 앉아 벽에 기대있던 날이었다. 추위에 떨며 움츠려들던 내 발 밑에 무언가 미끄러졌다. 노란색 명함이었다. ‘희망 흥신소’ 뭐든 해결해 드립니다. 그 순간 내 눈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학교 운동장 모래성 사이에 오백원 짜리를 발견한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언가 찾은 것 같았다.

승현을 알게 된 건 스무살이 된 어느 겨울 날이었다. 그때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흥신소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때, 승현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단단하고 쉽게 깨질 것 같은 눈빛이었다. 얇은 막이라 결국 부서져버리는. 깨진 유리 잔은 설탕 결정처럼 빛났다. 달콤해 보이지만 쥐면 뜨꺼운 무언가가 흘러내릴 마음같이. 위험한 거였다. 그걸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빠를 죽여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내가 뱉은 첫마디였다. 기가 찬지 헛웃음을 짓는 승현은 꽤 진지하게 내 말을 귀울였다. 당연했다. 내 말에는 거짓 따위는 없었으니까. 하나는 분명했다. 내 안의 분노는 점화가 되어 이미 재가 된 채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죽여주시기만 하면 뭐든 다 할게요. 아니, 죽이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제 손으로 끝내고 싶어요. 나는 두 손을 싹싹 빌며 애원했다. 그게 애원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결심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승현은 탁자 위에 있던 술잔을 들어 위스키를 따랐다. 내 앞에 놓여진 술잔에서 아빠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술잔을 내던졌다. 찢겨지는 술잔 소리와 씩씩 거리는 내 숨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눈을 깜빡이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 사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은 내 진심을 전달하기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 후 승현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내 부탁을 거절했고 폭력이 가득한 집으로 다시 돌아가란 말 뿐이었다. 대신, 또 다시 그런 순간이 오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아빠는 잠잠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흥신소를 찾아갈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승현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기에 나한테 오라고 한 걸까. 내가 무슨 날카로움을 가진 줄 알고.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던 것 같다. 그런 척했다. 아빠의 욕설이 들리지 않아도 내 안에서는 비명을 질렀으니까. 손에 오 만원 짜리를 쥐어주는 아빠만의 사과가 끝나면 내 마음은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아빠의 술주정이 시작된 건 중학생 때쯤이었다. 아빠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술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아빠가 술을 먹고 홀덤 바에서 백 만원을 결제했을 때였다. 엄마는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 카드를 던지며 화를 냈고, 제정신이지 못한 아빠 역시 고운 말이 나갈리 없었다. 우리 집 안 거실에는 성모상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그 중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가장 큰 성모상이었다. 성모상이 깨지고 둔탁한 파편들이 내 얼굴과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때 나는 비로소 승현을 떠올렸다.

도자기 파편이 눈썹 위에 박혀 붉은게 흘렀다. 실연당한 여자처럼 핏자국이 눈물 자국처럼 뺨에 패였다. 손아귀에는 상반신이 날아간 성모상이 반쯤 손에 들려있었다. 제발 그만해. 이제 그만해. 제발 죽어. 죽어! 나는 소리쳤다. 쓰러진 아빠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아빠는 벌레약을 뿌린 바퀴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살려주세요. 승현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갈게.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니, 정확히 알고 있었다. 승현이 아빠를 죽여줄 것이라고. 아빠는 내 앞에서는 목숨줄이 길었다. 성모상 말고 칼로 내리쳤으면 달라졌을텐데. 내가 지금껏 지고 있는 그늘이 사라질까. 나는 그렇게 믿었다. 아빠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면 내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아니, 내 편이 아닌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나면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잠든 밤. 아직 거실에는 꺼지지 않은 티비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리모콘을 손에 쥐고 있었고 엄마는 먹다만 사과를 탁자 위에 올려둔 채 나를 쳐다봤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빠의 리모콘을 꺼내 티비 소리를 조금 키웠다. 흰 런닝에 누런끼가 물든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칼을 꺼내 천천히 아빠의 머리부터 배까지 그림자를 그을렸다. 서늘한 느낌이 났던 탓일까, 아빠는 반쯤 눈을 떴다.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뒤에서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 승현은 엄마의 입을 막고 명치를 칼로 찔렀다. 엄마는 천천히 꼬꾸라졌다. 아빠는 내 다리를 붙잡았다. 어림도 없지. 내가 비명소리를 낼 때 날 지키지 못한 대가가 이런 거라고. 이제야 엄마는 알았을 것이다. 한순간이었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 동물이다. 그렇다고 승현은 말했다. 그래서 내 발을 붙잡은 엄마는 승현에게 끌려나갔다. 아빠는 살려고 발버둥치며 소파 이곳저곳을 피칠갑으로 물들였다. 나는 아빠에게 천천히 다다갔다. 아빠는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했다.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공격을 당하는 충격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다만, 아빠는 금방 잊어버리겠지. 죽음의 대가가 고통은 짧다는 거니까. 아쉽긴 하지만 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빠의 손에 오 만원 권을 가득 채워 넣었다. 힘이 빠져 소파에 기댔을 땐 이미 월식이 끝나고 달빛이 드리워진 새벽이었다.

승현은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더니 알 수 없는 주사를 놓고, 내 찢어진 살을 꿰메기 시작했다. 그 정적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는 아직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몇 번의 따까운 느낌을 지나고 나서야 승현은 내 이마에 반창고를 붙여줬다.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있던 탓일까. 졸음이 몰려왔다. 그대로 나는 소파에 기댄 채로 잠들었다.

해가 눈부신 아침이었다. 내 몸 위에는 갈색 담요가 덮어져 있었고, 방 안은 고요했다. 나는 온전했다. 편안했다. 꼭 알맞은 옷을 입을 것처럼. 이 집이 내 집이구나. 나는 알수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라는 걸. 탁자 위에 올려진 담배곽과 잿덜이, 먹다 만 양주 잔 안에 빠진 날파리가 꼭 이 곳의 오기 전의 내 모습 같았다. 나는 술잔을 바닥에 쏟았다. 죽음을 맞이해도 해방은 해야지. 문 틈 사이로 승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해방을 맞이했다.


-


아빠가 어떻게 된지는 모른다. 다만 뉴스에 알코올 중독자가 집에서 사망했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하나 확실한 건 내 마음이 편해졌다는 거다. 처음에 나는 내가 사이코패스인줄 알았다. 일말의 죄책감 하나 없이 아빠를 덜어냈으니 말이다. 누구든 그런 상상을 하지 않나. 다른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내가 뭔가 특별한 이가 되는 것 말이다. 이런 특별함을 가지게 될지는 몰랐는데. 그렇게 나는 승현의 품으로 들어갔다.

햇빛. 다들 승현을 그렇게 불렀다. 마지막 절벽 끝에 만나는 사람이라고. 도망치는 것이 아닌 맞서려고 다들 햇빛을 보고 싶어 했다. 확실한 건 나 같은 사람이 즐비한다는 거였다. 나도 그래서 햇빛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나 스스로에게나 반짝거리는 것. 태어나 처음으로 빛나고 싶었다.


처음으로 총을 만졌다. 두꺼운 그립감에 딱딱한 느낌.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승현은 황무지 어딘가에 나를 데려왔는데 타이어가 즐비되어 매달려 있고, 그 안에 과녁표가 붙여져 있었다. 승현은 거침없이 장전을 하더니 총을 쐈다. 새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총알의 비명 소리만 들렸다.


“너 오른손잡이야?”

“네.”

“오른쪽 손으로 한 번에 총을 감싸. 총 끝에 세 개의 점이 있어. 그 틀에 직선으로 맞추고 쏘면 오케이.”


승현이 총을 건네줬다. 승현은 내 뒤에서 든든히 날 지키며 내 팔을 고정시켰다.


“천천히. 차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나는 숨을 몰아쉬고 왼쪽 눈을 감았다. 한 쪽 눈만 의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명쾌한 소리가 들리고 승현이 말했다. “계속.”


탕탕탕-


더 큰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소리와 비슷했다. 승현은 타이어 안에 걸어둔 과녁을 꺼내왔다. 과년은 정중앙에 맞은 건 거의 없고 왼쪽에 기울여져 맞춰 있었다.


“생각보다 총알이 사선으로 나가. 조금 더 아래쪽으로 쏜다 생각하면 정중앙에 맞을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동안 총을 쏘고 승현에게 어떻게 하면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지 배웠다. 감을 익힐수록 단단해지면서 말캉해지고 또 질겨졌다. 여기는 나 말고도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지우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 왔다고 했다.(정확히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출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다) 지우는 흥신소의 에이스였다. 조그만 몸으로 싸움도 잘하고 총도 잘 쐈다. 몇 번 지우가 상대를 해줬는데 그때마다 완패했다는 사실은 꽤나 부끄러웠다. 나도 지우처럼 되고 싶었다. 지우도 승현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다들 구원자처럼 모셨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생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그래서 더욱 더 훈련에 매진했다.


첫 번째 의뢰를 받았다. 의뢰자는 서른 살 남자였다. 의뢰는 간단했다. 아빠를 죽여달라는 것. 이유는 어릴 때 맞은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맞다. 이 의뢰가 나에게 온 이유가 뭔지 알겠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 사람이 더 깊이 공감하는 법이지. 나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그런 내 모습이 승현은 걱정되었는지 의뢰서를 내밀다 말았다. 그 새를 참을리 없는 나는 의뢰서를 뺏어 정독하기 시작했다. 꼭 죽여주지. 아주 갈기갈기 찢어서 말이야. 독이 오른 복어마냥 나는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었다. 승현은 말했다. 아주 간단하게 처리할거야. 질식 자살. 숨쉴 구멍만 꺼 놓으면 되는 일이지. 마치 너무 잔인한 일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밤이 되길 기다렸다. 노을이 지나 달빛도 구름에 가려진 새벽이 되면 우리는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박쥐라도 된 듯 은밀하게 날카로웠다. 소파에 누워 컵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치? 내 말의 승현은 어느 정도는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불어 호로록 소리를 내며 컵라면을 먹기 시작할 때 지우가 들어왔다. 지우는 오늘 나에게 일을 알려줄 사수였다. 어릴 때 이곳에서 자라 이 일을 했다는데 상상만해도 아찔하지. 어릴 때부터 한 일이라 별 감흥이 없다나. 그런 말들을 지껄이며 내 컵라면을 뺏어 먹었다. 너 오늘 잘 봐. 나는 지우를 빤히 쳐다봤다. 내 표정이 신기함에서 오는 건지 어이가 없는 것에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우를 잘 따라야 한다는 것은 사무치도록 알고 있었다.


지우는 소파위에 귀찮은 듯 겉옷을 걸쳐놓고 앉았다. 그리곤 우리가 죽여야 할 남자의 파일을 들고 읽어나갔다. 반쯤 정도 파일을 넘겼을까, 지우는 나에게 물었다. 너 선물해본적 없다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의뢰를 성공하면 ‘선물’ 이라고 칭한다. 선물은 맞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고민이나 고통을 영원히 이 세상에서 흔적을 없애는 거니까. 나는 두려웠지만 무섭지 않았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복싱 연습장에 도착했다. 지우는 실전에 나가기 전 훈련부터 해야 긴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우는 나무로 만들어진 단검을 내게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그걸 받아들고 손에 꽉 쥐었다. 내 눈빛은 지우의 몸짓을 빠르게 만들었다. 몇 번 단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나는 지우의 발차기 끝에 옆으로 엎어졌다. 지우는 한심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러면 못 가. 지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다시 지우에게 달려들었으나, 이내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마음만 급하다고 말했다. 지우는 선물을 하려면 냉담해져야 한다고 수백번 소리쳤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낮게 깔린 새벽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안과 싸워하는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