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리고 평화를 위한 여정'의 첫 번째 이야기-
얼마 전, 무심코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있는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차로 얼마나 걸릴까?”
이런 질문과 함께 네이버 지도 목적지에 평양을 입력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길찾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평양, 개성, 해주, 금강산 등을 여행할 수 없을까. 네이버 지도의 길찾기 서비스를 통해 경주, 부산, 여수, 부여 등과 같은 여행지들은 입력하지만, 제가 있는 서울에서 거리상으로 훨씬 더 가까운 개성, 평양 등은 입력해 볼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 네이버 지도의 길찾기를 이용해 남한의 다른 지역들은 쉽게 입력하면서 평양과 개성, 금강산, 백두산 등과 같은 목적지는 입력해 본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왜 이러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대한민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자고 나란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러한 질문 자체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 나의 주변, 그리고 세상을 조금은 낯설게 보는 것이 가끔은 필요합니다. 런던에서 공부할 때, 저희 학교 학생회관 건물 앞에 재밌는 설치미술 하나가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지구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구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구본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유는 그 지구본은 거꾸로 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중국, 미국, 한국 등이 적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지나가면서 그 지구본을 앉아서 또는 본인의 몸을 거꾸로 해서 보기도 했습니다. 미술과는 전혀 거리가 있는 저희 학교에서 그런 미술품에 비싼 돈을 투자한 이유는 아마도 학생들이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혹은 낯설게 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우리가 지금의 한반도 분단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에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것에 익숙해지는 순간 갈등에서의 평화로의 변화 가능성은 작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 세대는 냉전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세대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분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 혹은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의 와해가 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보다 갈등에 익숙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연재를 통해 갈등과 평화를 거꾸로 두고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의 내재화가 두려운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 국가의 이름으로 야기되는 개인을 향한 국가폭력의 정당화입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반공교육과 국가 우선주의적 사회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분명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주권과 국민주권을 모두 명시하고 있으며, 국가주권의 전제는 국민주권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 2항). 그럼에도 외부에 적을 상정해 국가는 개인을 향한 국가폭력을 조직적으로 양산했으며, 우리 사회는 이를 오랫동안 외면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설명한 대표적인 이론이 바로 ‘관심전환전쟁이론’(Diversionay Theory)입니다. 이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는 럿거스 대학(Rutgers Univeristy)의 레비(J. Levy) 교수입니다. 그와 그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와 국가의 지도자는 국가의 존립과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내부적 단결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내부적 단결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지입니다.
지난 70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이러한 사례는 얼마나 많이 존재했을까?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30여 년 간 이어졌던 독재 시기 있었던 국가폭력은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지난 1기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던 사건만 8,450건에 이릅니다. 이것은 건수이기 때문에 간첩단 사건과 같은 4-50명의 개인이 한 사건으로 묶이는 경우를 고려하면 국가에 의한 개인의 희생은 숫자로 확인하기가 어려운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1975년 11월 22일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대공 수사국장이던 김기춘(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에 의해 대대적인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이 발표됩니다. 당시 간첩으로 기소된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본인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모국 유학에 대한 꿈을 안고 대한민국에 왔던 청년들입니다. 이들의 꿈과는 달리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불법구금과 고문이었고, 이로 인해 그들은 하루아침에 일본에 있는 조총련의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으로 잠입한 간첩이라는 딱지였습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사형선고를 받고 자신의 청춘을 바쳐야 했던 젊은이들은 4-50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사법부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과 공산주의라는 외부의 적의 존재 하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의해 자신의 삶을 희생당한 개인들입니다.
둘째,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의 갈등이 가져오는 실제적인 불이익입니다. 실제적인 불이익은 경제적 측면과 인지적 측면으로 구분됩니다. 먼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은 엄청난 국방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버거운 것이 현실입니다.
위 자료(Figure 2)는 매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발표하는 세계 국방비 지출 현황입니다. 2018년 자료에 따르면 부동의 1위는 미국($ 649 billion)이며, 중국은 미국의 1/3 수준($ 250 billion)으로 따라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자료의 투명성을 고려할 때, 중국은 이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에 근거하면, 두 국가의 국방비 지출은 세계 상위 15개국의 총합에서 61%를 상회합니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의 핵심은 지난 2008년 오바마 행정부 이후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에 한반도가 속해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대결의 고조는 위 자료를 통해 확인됩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의 국방비 지출이 전 세계 국방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15개국 국방비 지출의 총합은 $1,470 billion, 동아시아 5개국의 총합은 $1,050 billion)
위 자료(Figure 3)는 2018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발표된 세계 상위 10개국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현황입니다. 대한민국은 경제규모에 걸맞게 10번째로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는 국가입니다. 특히, 대한민국과 경제규모가 비슷하다고 평가되는 유럽의 이탈리아($ 27.8)와 견주어 약 1.7배 가까운 국방비 규모를 기록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볼 수 있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속해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GDP 대비 약 0.9%를 사용하고도 우리보다 높은 국방비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GDP의 약 2.6%를 국방비에 지출하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방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세계적으로 10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과연 앞으로 현실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보다 많은 국방비를 지출할 수 있을지, 동시에 그러한 정책적 방향이 우리를 위해 좋은 선택일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인지적 측면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사라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세계 정치는 냉전의 와해를 선언합니다. 이에 당시 대한민국 정부도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과거 적대적이었던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습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한반도 분단의 현실과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은 냉전의 와해가 아닌 신냉전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여전히 우리는 냉전적 사고에 갇혀 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적 사고에 갇혀있습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패권을 미국으로 넘겨주고 국제 정치사에서 뒤로 밀려난 유럽은 새로운 정치적 실험을 거듭하며, 스스로 국제정치의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의 행위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실험에 기반한 유럽연합의 행위자적 특질은 기존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기반한 국민국가와는 전혀 다른 특질을 보여주며 듀센(Duchêne , 1972)의 ‘시민권력’(Civilian power)과 마너(Manners, 2002)의 ‘규범권력’(Normative power)이라는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실존하는 군사분계선은 우리의 일상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했듯이, 우리는 반도국가지만, 사실상 섬 국가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에 일상에서의 여행제한과, 무역에서의 운송수단의 제한 등과 같은 여러 한계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우리 사고의 경직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 있으면서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라는 정치적 실험이 유럽에 살고 있는 유럽인들(European)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학교 교수님은 영국 런던에 있는 학교의 교수지만, 그의 가족과 일상은 벨기에 겐트에서 이루어집니다. 친구들은 주말이면 다른 나라도 놀러 가는 것이 익숙합니다. 과거 총구를 겨누었던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핸드폰이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국경을 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유럽의 친구들은 열린 사고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라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한반도의 분단이 없었다면, 아니 1991년 군사분계선이 냉전의 와해와 함께 사라졌다면, 1990년 태어난 나는 지금과 다른 인지적 사를 하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의 세계 지도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한반도 분단과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 또한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네이버 지도에서 개성과 평양을 입력할 수 없는 현실을 이상하게 여기며 앞으로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국제정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