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ielding of state sovereignty
지난 세 번째 연재 글에서 1950년대 한반도와 유럽지역의 정치 역학을 역사적 맥락에서 비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으로 완전히 변해버린 세계 정치의 역학구도와 그 속에서 파생된 한국전쟁. 비슷한 시기의 전쟁을 경험한 유럽지역과 한반도는 전쟁이 종식되자마자 전혀 다른 정치적 항로를 선택하면서 70여 년이 흐른 지금 전혀 다른 정치적 결과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럽은 단순히 경제 공동체를 넘어 연합이라는 정치 공동체로의 발전을
거듭하며 역내에서의 전쟁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면, 한반도는 아직도 휴전의 상태로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전선언’을 두고도 남한 사이의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시민이자 유권자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사실 바쁜 일상을 살아내면서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는 현실, 이 분단은 단순히 한반도에 두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발발한 전쟁이 언제든 한반도에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휴전’의 현실이라는 점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남한에서는 대선 혹은 총선과 같은 중요한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정당과 정치인들은 여지없이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그리고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시민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 줍니다. 물론 최근에는 과거의 색깔론에 기댄 정치공세가 다소 옅어진 것은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과 북의 정치인들은 서로를 향해 비난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2년 전 대선 토론회 당시 외교·안보 관련 파트에서 나타난 특정 후보의 ‘선제타격 발언’과 한반도의 전략핵 도입 가능성은 간단히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특히, ‘선제타격 발언’이 고도의 외교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선거전략적 측면에서 자신의 주 지지층의 결집을 위한 국내 정치용 발언이었다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 후보는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 있고, 한반도는 다시금 안보위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국제정치의 공간에서 한 국가의 대외정책 결정 이론 가운데 가장 고전적이고 여전히 설득력이 높은 앨리슨(G. T. Allison, 1971)의 관료정치모델(Bureaucratic Politics Model)로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앨리슨의 이 이론은 1961년 미국과 소련 사이에 발생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분석하면서 정립되었습니다. 앨리슨에 따르면, 한 국가의 대외정책은 단순히 대통령 또는 최고결정자의 결정이 아니라 관료조직의 정치 산물입니다. 국가는 단일한 목소리를 가진 당구공과 같은 집단이 아니라 복수의 관료조직으로 구성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대외정책은 다양한 관료조직의 이익과 그 조직의 장이 가진 정치적 소신을 기초로 하는 정치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특정 대외정책은 대통령 개인의 결정이 아닌 다양한 관료조직 사이에서 지배적인 연합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특정 그룹의 정책이 곧 그 국가의 대외정책으로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와 같은 장에서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등과 같은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부처 사이의 치열한 정치적 싸움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앨리슨의 관료정치모델을 통해 볼 때, 왜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의 안보 관련 발언들이 중요한 걸까요?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은 북한에도 이 같은 관료정치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트럼프처럼 북한은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대외정책 결정이 김정은 개인에 의해 단순하게 결정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도 남한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통전부(통일전선부), 남한의 외교부에 해당하는 외무성 등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오히려 민주적 선거가 없는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내부 정치 투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보다 더 심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덧붙여, 북한과 같이 모든 면에서 군사적 관점이 우월한 병영국가 또는 군사국가(Garrison state)는 대통령과 같은 최고결정자라도 군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에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한의 지도부가 자신들을 향해 선제타격을 이야기하고, 한미일 3각 공조를 통해 안보적으로 압박을 한다면, 북한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외무성은 외교적으로 받아들이고 외교적 채널을 가동하려고 하겠지만, 북한의 군부 관료조직은 자신들의 입김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영국가인 북한에서 북한의 김정은은 이 같은 군부의 목소리를 간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군부의 지지를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의 상당 부분 잃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의 안보 관련 발언, 특히 ‘선제타격 발언’을 보며, 만약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당분간 한반도에서의 평화적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상대가 존재하는 외교 현장에서 힘에 의한 평화(Balanc of Power)에 의거할 경우, 결국 두 국가의 외교정책 방향은 주권의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느 한쪽이 철저하게 패배하거나 손을 들어야 끝나는 치킨게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끝내 항복했던 것과 1990년 고르바쵸프의 소련이 마침내 소련의 해체를 선언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북한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릴 개연성은 0%에 수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며, 1950년대 당시 (서)유럽 지도자들 사이에 발견되는 주권의 양보(yielding of a degree of state sovereignty)는 다시 주목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 2차 세계대전이었지만, 유럽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습니다. 패전국인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조차도 상처뿐인 승리였습니다. 1900년대 두 차례의 걸친 세계대전으로 유럽 국가들 사이의 적대적 감정과 경제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은 역내에서의 적극적 평화를 모색합니다. 그 방법은 개별 국가의 주권을 강화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일정 부분의 주권을 양보하는 방향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였습니다. 당시 이 제안을 했던 프랑스의 외무장관이었던 로버트 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역인 라인강 주변에서 많이 생산되는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관리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당시 전쟁에 가장 중요한 물자인 석탄과 철강에 대한 개별 국가의 주권의 일정 부분 양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랑스와 독일에 의해 라인강 지역의 석탄과 철강이 개별적으로 관리될 경우, 언제든지 이 두 물질이 전쟁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슈만은 판단했습니다. 만약 힘에 의한 평화를 상정했다면, 당시 승전국인 프랑스는 라인강 지역의 더 많은 석탄과 철강을 확보해 더 많은 전쟁물자를 생산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한 유럽은 힘에 의한 평화를 상정해 개별 국가의 주권을 강화하는 정책적 방향이 아니라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초국가적인(supranational) 기구를 설립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이 같은 슈만의 정책적 선택에 따른 결과물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 대해 디에볼드(Diebold, 1959)는 ‘초국가기구에 국가주권의 일부를 이양하는 서유럽의 첫 번째 기구’였다고 분석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기술되어 있는 국민주권 개념을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제1조는 1항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천명하며, 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합니다. 2항이 실질적인 국민주권의 내용입니다. 국제정치 그리고 유럽 통합의 역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대한민국의 헌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1950년 당시 유럽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굳이 왜 양보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초기 모네와 슈만을 비롯한 유럽 통합의 지도자들의 정책적 선택에서 발견되는 점은 사회구성체인 국가의 존속이 곧 국가를 이루는 국민들의 주권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국가의 존속과 국가 우선주의적 사고에 천착했다면, 어떻게 개별 국가의 군사주권을 일정 부분 양보하는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특히, 5년 전 자신의 국가(프랑스)를 쳐들어왔던 상대국(독일)과 전쟁물자를 공동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결국, 이 같은 선택은 국제정치의 공간에서 국가의 주권(홉스식 국가주권)은 궁극적으로 국가를 이루는 국민들에 의해서 나타난다는 국민주권 개념(로크식)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무조건적인 국가주권 중심의 대외정책의 결과로 두 차례 전쟁을 경험하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타협한 것이 바로 국민주권을 담보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국가주권을 양보하는 대외정책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권 개념의 이중적 속성에 따라 대결적 외교안보정책이 아니라 공동외교안보정책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전의 유럽지역에서는 국가주권 우선의 외교정책이었다면,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설립 이후는 국민주권을 고려한 유럽의 공동외교안보정책이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해야, 유럽연합이 초기부터 줄기차게 외교안보정책에서 왜 ‘공동’(Common)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공식적인 외교안보정책이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입니다.) 1950년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된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그 시작이 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개별 국가의 주권을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공동의 이익과 안보를 담보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와 퇴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유럽 지역 내에서의 전쟁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초기 슈만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는 ‘주권의 양보’라는 점이 지금의 한반도에 시사하는 정치적 함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힘에 의한 평화를 상정한 외교정책은 두 국가 가운데 한 국가는 사라져야 끝나는 치킨게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한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껴지는 상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유럽연합이 왜 외교정책을 ‘공동’ 외교안보정책이라고 명명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힘에 의한 평화만을 고려한 국가주권 우선의 외교정책은 국민주권의 말살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