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막을 내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넷플릭스를 타고 거의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드라마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 ‘언어유희’의 표현이 번역가의 속을 태웠던 모양입니다.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바나나)?’, ‘오렌지를 먹은지 얼마나 오랜지’, ‘쫄면 먹고 쫄면 안 돼’ 등과 같은 부분들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겠는지요? 일상생활에도 이런 표현은 많이 쓰입니다. ‘제일 지루한 중학교는? 로딩중’,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장마철을 싫어하는 이유는? 비만이 와서(비 많이 와서)’, ‘다리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
언어유희(言語遊戲)는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동음이의어, 음의 유사성 등 언어가 지닌 여러 성질을 이용해 재미를 추구하는 말놀이의 일종입니다. 언어유희는 옛날부터 사용되어 삶에 웃음과 지혜를 주었습니다.
세종 때 정승을 지낸 맹사성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벼슬이 재상에 이르렀지만 청백리(淸白吏)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맹사성이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비를 만나 여인숙에 들어갑니다. 먼저 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선비가 있었습니다. 무료하던 차에 맹사성은 그 선비와 ‘공당문답’을 하기로 합니다. 물을 때는 ‘공’으로 묻고 답을 할 때는 ‘당’으로 하는 말놀이입니다. 맹사성이 묻고 선비가 답합니다.
“어디 가는공?” “서울 간당.” “무엇 하러 가는공?” “벼슬하러 간당.” “내가 힘써 줄공?” “당신 같은 촌부는 택도없는 소리당.”
녹사 벼슬에 응시한 그 선비는 맹사성 앞에서 최종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맹사성이 묻습니다.
“그래, 어떤공?” “죽어지이당”
검소하고 겸손하고 청렴한 정승이 이런 말놀이를 즐겼고 이를 기록에 남긴 것을 보면 이런 놀이가 신분을 초월하여 행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미와 웃음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그러니 시대를 초월하여 재미를 추구하는 언어유희는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어유희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자주 사용됩니다. 조선 영조 때 가인(歌人) 이정신(李廷藎이)라는 사람이 지은 시조에 언어유희가 잘 녹아 있습니다.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
산채(山菜)를 맵다는가 박주(博酒)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이정신의 시조
매미는 맵다고 울고 쓰르라미는 쓰다고 웁니다. ‘매미’와 ‘맵다’, ‘쓰르라미’와 ‘쓰다’는 음의 유사성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고, 이것이 매미의 매운 삶과 쓰르라미의 쓴 삶이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매미와 쓰르라미가 높은 벼슬을 추구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들의 삶은 맵고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화자의 인식입니다. 화자는 산나물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산채(山菜)와 박주(博酒)를 먹으며 소박하게 사는 삶에는 맵고 쓴 맛이 없다는 것 또한 화자의 인식입니다.
문학에서 언어유희는 재미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좀 더 고차원적 언어유희를 보여주는 옛시조 한 편 더 보겠습니다.
떳떳 常(상) 평할 平(평) 통할 通(통) 보배 寶(보)
구멍은 네모지고 사면은 둥글어서 땍대굴 굴러서 간 곳마다 반기는구나
어떻다 조그만 쇳조각을 두 창이 다투거니 나는 아니 좋아라
-지은이 모름, 사설시조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소재로 한 시조입니다. 초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보배와 같은 돈, 상평통보를 제시합니다. 중장에서는 상평통보의 모양을 묘사하면서 이 돈은 언제 어디로 굴러가든지 누구나 반긴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종장에서 화자는 이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조그만 쇳조각을 두고 두 창이 다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돈은 한자로 ‘錢(돈 전)’으로 씁니다. ‘錢’을 파자(破子)하면 ‘金(쇠 금)’+‘戈(창 과)’+‘戈(창 과)’입니다. ‘金(쇠 금)’는 쇳조각이고, ‘戈(창 과)’가 아래 위로 겹쳐 있는 것은 창 두 개가 서로 다투는 모습입니다. 쇳조각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창을 들고 싸우는 형상이라 화자는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파자(破子)라는 언어유희를 사용하여 돈을 두고 싸우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고차원적인 시조라 할 수 있습니다.
풍자와 해학이라는 언어유희의 목적을 달성한 김삿갓의 한시도 한 편 보겠습니다.
日出猿生原(일출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 언덕에 나타나고
猫過鼠盡死(묘과서진사)
고양이가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黃昏蚊簷至(황혼문첨지)
저녁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夜出蚤席射(야출조석사)
밤이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김삿갓, ‘원생원(元生員)’
김삿갓이 함경도 어느 지방을 방랑할 때 지방 유지로 보이는 노인 네 사람이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원생원(元生員)’, ‘서진사(徐進士)’,‘ 문첨지(文僉知)’, ‘조석사(趙碩士)’라 부르며 거들먹거리고 있습니다. 김삿갓이 술을 한 잔 청하자 푸대접을 합니다. 김삿갓은 이런 한시를 남기고 자리를 뜹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의 한시입니다.
김삿갓은 ‘원생원(元生員)’은 猿生原(원생원)으로, ‘서진사(徐進士)’는 鼠盡死(서진사)로, ‘문첨지(文僉知)’는 蚊簷至(문첨지)로, ‘조석사(趙碩士)’는 蚤席射(조석사)로 바꿉니다. 네 명의 노인을 각각 원숭이, 쥐, 모기, 벼룩으로 바꾼 것이죠. 이들은 사람의 재물이나 피를 빨아먹는 존재들입니다. 네 명의 노인들이 마시는 술은 필시 백성의 피를 빨아 만든 것일 겁니다. 음은 같은데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라는 언어유희를 통해 신랄한 풍자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재삼(1933~1997) 시인은 언어유희를 사용해 ‘매미 울음에’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뒤 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머언 어린 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 하고 잎이 되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이 얼굴이 되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뻐 기삐 그려 낼 수 있는
明明한 明明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매미 울음에’
‘춘향이 마음 초(抄)’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의 화자는 춘향입니다. 한낮에 뒤 숲에서 각양각색의 매미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시절에는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구름이 꽃이 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구름이 잎이 되는 것을 보기도 하고 구름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기도 했습니다. 구름이 꽃으로, 잎으로, 친구 얼굴로 변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오늘은 매미 울음소리가 임의 말소리로, 임의 미더운 발소리로, 임이 대님 푸는 소리로 들립니다. 화자의 마음이 밝고 환해집니다. 그러니 매미 울음소리가 ‘맴맴맴맴’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明明明明’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맴’과 ‘明(명)’은 음이 유사합니다. 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임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밝고 맑은 화자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매미 울음이 누구에게는 맵게 들리고 누구에게는 밝게 들립니다. 매미 울음 자체에 정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기쁘게도 들리고 슬프게도 들리고 맵게도 들립니다. 이런 정서를 언어유희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하상욱 작가의 『시로』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대부분이 언어유희로 되어 있습니다. ‘작가 소개’ 란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작가’, ‘소’, ‘개’ 세 컷 그림으로 ‘작가 소개’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소개(紹介)’는 ‘소개[牛犬]’와 동음이의어입니다. 차례를 뜻하는 ‘목차(目次)’도 ‘발로 목을 차는 그림’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사나 기관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받는 사람을 뜻하는 ‘인턴(intern)’을 소재로 한 시는 언어유희의 웃음과 함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꼬집고 있습니다.
人턴,
사람을
턴다는
건가..?
-하상욱, ‘시로’에서
영어의 ‘intern’을 발음의 동일성을 이용해 한자와 우리말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식 구성원을 미끼로 영혼까지 털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해 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너는 충고를 기분 나쁘게 듣더라.
너는 기분 나쁘게 충고를 하더라.
-하상욱, ‘시로’에서
싫은 소리도 들을 줄 알아라 좀.
싫은 반응도 참을 줄 알아라 좀.
-하상욱, ‘시로’에서
자기 중심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시편들입니다. 충고의 내용은 같습니다. 충고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충고를 좋게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충고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 충고라도 듣기 싫다는 겁니다.
퇴근 후에 회식이라뇨.
회식 후에 퇴근이겠죠.
-하상욱, ‘시로’에서
단어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경우입니다. 회사에서의 ‘업무’와 ‘퇴근’의 개념은 직원에 따라 다릅니다. 회식을 업무로 보느냐 퇴근으로 보느냐에 따라 회식 참가 여부가 자율이냐 타율이냐를 가르게 되죠.
월세 내다가
세월 다가네
-하상욱, ‘시로’에서
단어를 이루는 글자를 바꾸어서 대상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경우입니다. 월세의 부담이 너무나 가중하여 월세 마련하느라 세월 다 보내는 현실을 풍자적 수법으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동음이의어를 잘 모르면 언어유희가 아닌 언어유희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TV 뉴스 백브리핑에 언급된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주체측에서 무엇인가를 잘못하여 사과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공지사항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일부 누리꾼의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고 심심한 사과를 한다고?”라는 댓글이 보였습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하다’와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의 ‘심심하다’를 잘 몰라서 언어유희 아닌 언어유희를 만들어냈습니다.
‘과제 제출에 대한 공지를 하겠습니다. 금일 자정까지 과제를 제출하면 됩니다.’ 이에 한 학생이 질문을 합니다. ‘금일’이 아니고 ‘금요일 아닙니까?’ 이 경우도 ‘오늘’을 뜻하는 ‘금일(今日)’과 ‘일곱 요일 중의 하나’인 ‘금요일(金曜日)’의 의미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질문한 학생은 정상적인 언어 사용이라고 생각하고 말했지만 언어유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번 주는 임시 휴일이 겹쳐 사흘 연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누리꾼은 ‘3일 연휴인데 왜 사흘 연휴라고 하는 거야?’라고 댓글을 답니다. 이 누리꾼은 ‘4일’에 해당하는 ‘나흘’이라는 어휘를 잘 모르고, 우리말 ‘사흘’의 ‘사’를 한자어 ‘사(四)’로 이해하여 언어유희 아닌 언어유희를 만들어 낸 겁니다.
언어유희는 말장난이지만 단순한 말장난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다양한 생각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재치있게 표현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며, 심각한 문제를 심각하지 않게 표현하여 웃으면서 사회의 문제점을 들여다보자는 뜻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언어유희의 글들을 읽으며 삶이 재미있고 여유롭고 풍성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