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안전한 곳인가?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는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안도현, <나와 잠자리의 갈등 1>
잠자리가 수숫대 끝에 앉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슬아슬합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앉은 그 위태로움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평평하고 안전한 땅이 이렇게도 넓은데 왜 하필 그 위험한 곳에 앉아 있느냐?’고 따지듯이 한마디 합니다. 잠자리도 지지 않고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고 말대꾸를 합니다. 화자도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봅니다. 평지에 서 있지만, 온통 차들이 정신없이 달려들고 혼탁한 공기와 날카로운 언어의 파편들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곳에 서 있는 겁니다.
잠자리에게 수숫대 끝은 정말로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곳이겠는지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수숫대 끝이 위태로운 곳이지만 잠자리의 시각으로 보면 수숫대 끝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마치 아늑한 방이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듯이 말이죠. 그런데 왜 화자는 잠자리에게 아슬아슬한 수숫대 끝에 앉지 말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화자 자신이 수숫대 끝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잠자리에게도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허구적 합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고 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리 로스(Lee Ross)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여러 실험을 합니다. 슈퍼마켓에서 장보기를 마친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당신과 나눈 이 이야기(인터뷰)를 텔레비전 광고에 활용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동의한 사람도 있었고 동의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의 목적은 ‘다른 사람은 동의할 것 같은가?’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피실험자 중, 광고 활용에 동의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광고 활용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도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중심으로 대답한다’는 것이 이 실험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기 싫어하는 일은 남들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반장을 하고 싶은 학생은 다른 학생들도 반장을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장을 하기 싫은 학생은 다른 학생들도 반장을 하기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오류를 동반하기에 ‘허구적 합의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수숫대 끝이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곳이고 평평한 땅이 안전한 공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수숫대 끝에 앉지 말고 땅에 내려와 앉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인간 중심의 사고이기에 잠자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잠자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를 해당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에 허위가 되는 것입니다. 잠자리가 합의하지도 않았는데 합의한 것처럼 말하니까 ‘허구적 합의 효과’라고 한 것이지요.
이런 논리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모두 위험한 비상을 하고 있고, 나무 꼭대기에 지은 까치집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주택입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빠르게 오르내리는 다람쥐의 행동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아찔한 행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잠자리는 우리에게 ‘수숫대 끝은 잠자리의 보금자리이며, 하늘은 새들의 오솔길이며, 나무 꼭대기 까치집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까치의 주택이며, 다람쥐의 행동은 이웃집에 나들이 가는 일상임’을 깨우쳐 줍니다.
잠자리는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가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용 여부는 상대방에게 달려있지만 ‘나는 너와 생각이 다르다’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이라도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허구적 합의 효과에 피해를 입지 않게 됩니다.
글자를 막 배웠을 무렵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심심찮게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시켰습니다. 이것은 글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테스트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놀이고 재미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너무 정직하게 이름을 쓰면 쉽게 알아맞힐 것 같아 일부러 획의 길이를 길게도 하고 짧게도 하며 어른들이 쉽게 맞히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름을 정확하게 쓰더라도 잘 맞히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름을 쓴 본인은 상대가 너무 쉽게 답을 맞힐 것이라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어렵게 쓰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상대방이 잘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입니다. 이를 ‘투명성 착각’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허구적 합의 효과와 비슷한 심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