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그리움을 낳고
-함민복
바다가 보이는 그 집에 사내가 산다
어제 사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오늘은 내리는 눈을 보았다
사내는 개를 기른다
개는 외로움을 컹컹 달래준다
사내와 개는 같은 밥을 따로 먹는다
개는 쇠줄에 묶여 있고
사내는 전화기줄에 묶여 있다
사내가 전화기줄에 당겨져 외출하면
개는 쇠줄을 풀고 사내 생각에 매인다
집은 기다림
개의 기다림이 집을 지킨다
고드름 끝에 달이 맺히고
추척,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에 개가 찬 귀를 세운
몇
날
전화기 속 세상을 떠돌다 온 사내가 놀란다
기다림에 지친 개가 제 밥을 놓아
새를 기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
바다가 보이는 그 집의 주인은 사내가 아니다
그 집에 사내 혼자 삽니다. 어제도 오늘도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외롭습니다. 그래서 개를 기릅니다. 개는 사내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개는 사내와 같은 밥을 먹습니다. 그래서 개는 사내의 유일한 식구입니다. 사내는 전화기줄에 연결된 사람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전화기가 울리고 사내는 그리움을 떨치기 위해 개의 외로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뭍으로 향합니다.
사내가 뭍으로 나가자 개는 외롭습니다. 개는 쇠줄에 연결된 사내를 그리워합니다. 사내를 기다립니다. 개의 외로움이 사내를 기다리게 합니다. 고드름이 사이로 달이 지나갑니다. 고드름이 달린 지붕 너머로 달이 지고 아침 햇살에 고드름이 녹아 떨어질 때까지 개는 밤새 사내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과 그리움은 같은 무게로 개를 엄습합니다. 그러기를 ‘몇 날’ 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몇 / 날’은 행구분을 하여 한 글자를 한 행으로 처리했습니다. 천천히 읽게 하는 효과가 있죠. 천천히 읽히는 만큼 개가 기다려야 하는 날들이 천천히 갑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를수록 개의 기다림과 외로움은 사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합니다. 외로움이 그리움을 낳았습니다.
사내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개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새를 기릅니다. 사내가 자신의 밥을 개와 함께 먹었던 것처럼, 개는 자신의 밥을 새와 함께 먹으며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개는 사내의 외로움을 달래고, 새는 개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개가 외로움을 타듯이 새도 외로움을 탈 수 있습니다. 새의 외로움은 개가 달래줍니다. 개와 새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가 된 겁니다. 그 집에는 사내와 개와 새가 살고 있지만, 사내가 전화기줄에 당겨져 외출하면 그 집에는 개와 새가 남아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그러니 그 집의 주인은 사내가 아니라 개와 새가 될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양철집에 개가 새라는 손님을 끌어와 자신과 사내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그러니 그 집의 주인은 사내가 아니라 개가 되겠지요.
외로움과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서를 양철집과 사내와 개와 새를 소환해 손에 잡힐 듯이, 눈에 보일 듯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의 감수성이 고드름 끝에 맺힌 보름달만큼이나 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