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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사람] 야, 네가 전역하면 뭐 먹고살려고?

“그럼 선배님은 입대 전엔 뭐 먹고살았습니까?”

by 노서방 Jan 18. 2025


앞으로 5주간 군대와 사람에 관한 5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군생활 잘하기]에 이어,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시리즈까지 마무리했다. 군대에 대해 준비한 이야기가 끝났지만, ‘브런치북’은 30개의 시리즈 단위로 이뤄지기에, 5편을 더 써야 온전히 마무리될 것 같다.


 



삶에서 가끔 독기를 품을 때가 있다. 자존심이 상하거나, 이불 킥할 만큼 흑역사가 생길 때. 때론, 위기감이 생겨 독하게 무언갈 해내야 할 때가 그러하다. 필자도 역시 그런 시절을 겪었다. 필자의 독기는 같은 배에서 근무하던 선배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군인이 전역하고 뭘 해?
군이니 너 써주지, 나가면 먹고살기 빠듯해
관사 나가면, 살 집은 있어? 직업은 구했어?
와이프도 있으면서 전역이라니, 성급하네.


7년이나 군생활 하다 사회의 페이스에 맞추지 못할뿐더러, 폐쇄적인 조직 생활하다 보니 사회보다 뒤떨이진 필자는 전역 후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이런 말을  듣다 보니 불안한 미래에 전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생기곤 했다. 상급자이기도 한 선배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겉으론 머리를 긁적이며, “그러게 말입니다. 걱정됩니다.”라고 허허 웃었다. 속에선 위가 꼬이는 것 같은 마음과 분함이 쌓였다.


선배님은 태어날 때부터 군인이었어요?
지금은 안나가 봐서 모를 뿐입니다.


이 말을 한 번도 내뱉지 못한 채 삼켰다. 함정 근무는 매일 똑같은 사람과 마주해야 한다. 망망대해에 나가면, 퇴근도 없이 일주일간 바다 위에 떠있기 때문이다. 선배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내게 전역할 건지 물었다. 그때마다 말로 씨름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미래엔 결과로 당신이 틀렸음을 알리고 싶었다. 관사 말고도 살 집을 구해서, 자격증을 따서, 사회의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매주 수 권의 책을 억지로 읽어나가며, 또한 새로운 직업을 구해내 밥벌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선배의 말은 대체로 틀렸다. 다만, 분하지만 그 증명의 과정 속에 있던 선배의 오지랖은 대부분 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군에 몸을 맡긴 7년여 시간 동안 사회는 빠르게 변해 있었다. 자격증 몇 개로 직업이 쉽게 구해질 리 없었다. 그동안 작은 봉급과 안락한 관사에 의탁하며 망가진 경제관념에 통장 잔고는 가벼웠고, 수도권의 집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좌절도 많이 하고, 또 현실에 순응하며 군에 계속 있을까 하는 고민도 (아주 잠깐) 들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현실의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벽을 넘거나 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생겼기 때문이다. 집을 구하기 위해 임대주택과 청약 공고문을 수십 개를 읽어보고, 퇴근하고 밥을 먹는둥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보내곤 했다. 방법이 없으면, 나올 때까지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네이버 카페, 브런치 스토리, 지인 등 정말 닥치는 대로 자문을 구해내며 발버둥 쳤다. 잠도 오지 않았고, 좋아하는 술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만들어가다 보니 2년이 지났고, 2년은 선배의 정답을 오답으로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엄청나게 풍족하냐고 묻는다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다만, 안정기가 되어 미래를 희망적으로 계획할 수 있는 상태까지는 왔다.


어찌 보면, 그 선배의 비난이 참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평소처럼 70-80점에서 타협하고 안주하기보다, 당시 상황에서 낼 수 있는 100점짜리 답안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던걸 붙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당근보다 채찍이 도움 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처음 입대하고 훈련받을 때, 훈련관님도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근데, 채찍질은 고래를 미친 듯 춤추게 한다.
앞으로 귀관을 미친 듯 춤추게 해 주겠다.


사관후보생인 우리를 굴리는 훈련관님의 사악한(?) 발언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선배의 비난이 필자에게 독기를 품게 해 미친 듯이 춤추는 고래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만약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만, 만약 전역시기에 필자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필자는 지금도 가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을 때, 선배를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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