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훈련, 외국어를 못하면 아무것도 못할까?
흔히 말하는 Deal, 협상을 체결하는 일을 귀신같이 하는 사람과 함께 세계를 일주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은 특이한 분이다. 바로, 군에서 만난 H중사(지금은 원사되셨으려나..)였다.
그와 필자가 함께 세계일주 해외일정인 순항훈련 길에 올랐을 때 일이다. H중사는 해외훈련을 출발한 그날부터 손바닥 만한 여행회화 책을 들고 빈 시간을 채웠다. 파도가 몇 미터나 치는 날에도 흔히 "째린다(멀미 난다는 속된 표현)"고 말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항해 중에 핸드폰이 먹통인 바람에 궁금해도 인터넷 서칭할 수 없으니, 외국어를 잘하는 통역병을 찾아가거나 그나마 필자에게 물어가며 더듬더듬 입에 언어를 붙여가는 그의 열정이 아직도 인상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처음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그는, 영어권 국가가 처음이라고 했다.
필자는 대학시절 호주, 중국, 일본, 태국 그리고 어렸을 때 뉴질랜드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오고, 또 대학시절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처음 부딪치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영어는 전혀 문제 될만한 사항이 아니라 속단했다. 그리고 별로 긴장도 하지 않았다.
그런 언어가 되는 필자가 해외 훈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까? 결과적으로 필자는 첫 3개 기항지 동안 별로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영어는 되나, 수많은 협상과 의사결정의 과정 속에서 머뭇거리다가 시간을 다 뺏겼기 때문이다. 필자의 언어는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있고, 의미보다 형식에 집착했던 것 같다. 잘 배운 반듯한 문장을 구사하려 내용물은 빼먹고 이야기한다던지. 지나치게 현지인에게 저자세로 나가며 돈 내는 '갑님'이면서도 '을'을 자처하는 바보 같은 실수도 범한다.
반면, H중사는 어떠한가? 항해 중 급하게 배운 10여 가지 현지 문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했으며, 유쾌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기도 했다. 영어권 국가를 벗어나면 입이 자연스레 닫히던 필자와 달리, H중사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어떤 언어권에서도 단어 몇 마디와 비언어적 표현(표정, 손짓, 발짓 그리고 적절한 추임세)으로 협상을 이끌어갔다.
낯선 땅에서도 담배 몇 보루를 챙겨놓고 한 갑씩 현지 운전기사와 현지인에게 건네며 필요한 정보를 척척 끌어냈다. 바가지 씌우는 사장에 "NO"라는 말만 30분간 하며, 계산기를 수십 차례 두드리며 현지사람과 거의 싸우다시피하다가도, 끝엔 웃음으로 유쾌하게 분위기를 마무리하는 그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 그가 언어의 벽 앞에 힘들어한 순간은 서브웨이에서 뭘 넣고 뺄 지 메뉴 고를 때 뿐이었다.
멕시코에서는 한국에 두고 온 행사 기물을 받기 위해 현지 우체국을 찾아갔다.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던 우리는, 빈민가 정 중앙에 있는 그 우체국을 찾아가기 수많은 노숙자를 헤쳐나가야 했다. 마약과 술에 절어있는 무서운 사람들 속을 헤쳐나가면서도 오히려 "보급관님. 정신 바짝 차립시다."라던 그였다. 심지어 마약 상인 같은 질이 나쁜 사람들이 다가올 때, "HOLA"라며, 자연스레 받아주며 스쳐 지나가던 담력 있는 행동도 인상적이었다.
파리에서는 한 소매치기가 다가와 한국 축구의 팬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환심을 샀다. 일행의 지갑을 훔치려던 순간, 소매치기의 손을 내려치며 내쫓던 H중사 덕분에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해외가 거의 처음이라지만, 흡사 해외여행 마스터가 동행한 듯 든든했다.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분위기와 눈치를 누구보다 잘 살폈다. 필자가 15년간 갈고닦은 반쪽 영어는 그와 함께한 첫 15일 만에 새로운 배움으로 더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순항훈련 내내 H중사식 의사소통 방법이 밈이 되었다. 부족한 외국어는 잊고 모두가 당당함과 유쾌하게 현지인을 대했다. 가장 영어를 못하지만, 현지인과 가장 소통을 잘했던 소통의 달인 ‘H중사’ 덕분에 모두가 용기를 냈던 것이다.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다 했던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길 고민하는 요즘, 밤새워가며 머나먼 이국에서 함께한 그가 종종 생각난다. 언어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알게된 계기였다.
* 몇년 후 떠난 미국 유학길에서 우리 가족이 수많은 어려움도 이겨내고 무사히 다녀온 건 H중사 덕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