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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사람] 망망대해 속 군인

해군 함정 근무자

by 노서방

앞으로 5주간 군대와 사람에 관한 5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군생활 잘하기]에 이어,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시리즈까지 마무리했다. 군대에 대해 준비한 이야기가 끝났지만, ‘브런치북’은 30개의 시리즈 단위로 이뤄지기에, 5편을 더 써야 온전히 마무리될 것 같다. 그래서, 군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해군 함정근무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필자는 항해병과가 아니라 군생활을 통째로 바다에있지 않았지만, 나름 7년 복무기간 중 약 1/3 이상을 함정에서 근무했다. (2017년에 1년 7개월, 2023년에 1년) 순항훈련으로 4개월 가량 해외에 있었던 것과 DDG를 탔던 시간까지 더하면 일정상 가장 빡빡한 함정에만 근무한 축에 속한다.


* 해군이지만 함정근무를 안하고 육상에만 있으면 dry navy라 부르는데, 필자는 꽤 촉촉한 편~


다만, 항해당직의 빡빡함보다 그 이면에 있는 지원부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함정병과 간부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던 시간이 많았다. 한 발짝 떨어져있는 보급관에게 후배장교들과 부사관들은 편해서인지 가까워서인지 함께 당직근무를 서며 여러가지 어려움을 말하곤 했다. "별일 없냐?"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 날도 있지만, 보통 야식을 먹는 중 자연스럽게 전해듣는 그들의 어려움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항해근무로 여자/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 조부상에 가지 못한 이야기, 자녀의 졸업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슬픈 사연, 심지어는 아내의 출산소식을 전화로 들어야 했던 일화(이건 순항훈련 중 직접 봤었는데, 안타까운 사연으로 여러 승조원들이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음) 등 자세하게 보면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조금 더 개략적으로 보면, 함정 근무자의 공통된 문제는 시간/공간/정보의 자유가 박탈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시간적으로 하루 4시간씩 2번의 항해 당직근무는 상당한 압박감이 있다. '자유롭다'는 말에서 가장 핵심적인건 분명히 시간이다. 즉,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하루 8시간의 당직근무가 절대적으로 긴 근로시간이라 볼 수 없지만, 지금의 함정근무자 근로환경은 보통 충분한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직과 당직 사이 쉬는 시간(취침, 운동, 등)을 낼 수도 있지만 보통 행정업무 1-2시간 정도와 각종 회의, 업무 보고, 이벤트 준비(항해 이벤트는 누굴 위해 하는건지, 준비하다가 몸이 다 갈려나간다), 쪽잠시간 등을 제하면 온전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2시간도 채 남지 않는다.



함정을 직접 지휘하는 함교 당직사관 2명이 룸메이트 였던 전투함 근무 시기를 회상하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는걸 알 수 있었다. 낮과 새벽시간 4시간씩 온전히 함교에서 보내다가 틈나는 시간에 운동하고 행정업무 보다가 또 식사(배에서 모일 시간이 많이 없어 식사는 회의에 가깝다. 그래서 먹기 싫어도 체해도 필참..)하러 사관실에 있다가 밥먹은 직후 살기위해 운동하거나 쪽잠을 청한다. 그러면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게 어찌보면 대단해 보였다. 이런 근무 환경이다보니 시간에 대한 자유도는 상당히 떨어지며, 가령 자유시간도 당직시간을 피한 '오후 1시-3시'와 같이 '내가 원할때 2시간이 아니라 짬을 낼 수 있는 2시간'을 겨우 할애할 수 있다.




다음, 공간적으로는 바다에 나가서 밟을 수 있는 땅의 면적은 함정으로만 제한된다. 함정이 크든 작든 그만큼 승조원의 숫자가 늘어나므로 1인당 할당하는 면적으로 보면 유사할 것 같다. 그나마 DDH 함정을 비롯한 1급함 통로 폭이 넓은 편인데, 그 외에는 누군가와 살이 맞닿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혼잡할 때를 '지옥철'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숨막히는 빽빽함으로 원치않는 접촉이 발생해, 개인간 최소한의 간격이라 정의되는 내 주변 1미터가 침범당하기 때문이다. 함정근무는 늘 이런 혼잡 속에 살아간다. (사실 잠수함은 더함 ㅎ)



심지어 황천(바람이 심한 날씨) 중에 너울과 파도로 인해 그 좁은 공간이 사방으로 흔들린다. 지진과는 결이 다른 흔들림이지만, 엔진 속도에 따라 진동도 수반되는 경우가 있다. 이 공간의 제약과 흔들림은 많은 어려움을 재생산한다. 가령, 멀미를 유발해 식욕을 잃게 만들거나 독서를 제한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부상도 입히는데, 황천이 심한 날 야간당직 중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구르거나 구조물에 머리를 찧는 찰과상은 꽤 흔한 일이다. 잠을 자는 중에도 계속되는 너울은 수면장애도 발생시키는데, 파도가 심한 날은 깊게 잘 수 없고 계속 깨거나 허리쪽이 눌려 무리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정보의 제한이 심각하다. 요즘 함정은 핸드폰 자체는 수거하지 않고 USIM칩 정도만 반납하기 때문에 심각한 정도로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이지는 않는다. YOUTUBE 프리미엄이나 NETFLIX 등은 다운받을 수 있고, 이북(e-Book)을 통해서도 충분히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핸드폰 자체를 수거하던 몇 년 전보다야 숨통이 트이는 상황이다.


다만, 정보 자체에 제한이 있다기보다 실시간 정보나 재테크를 위한 적절한 시기 맞추기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고 봐야겠다. 실시간으로 양방향 주고받는 SNS(가족/친척/친구와의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와의 교류, 인터넷 강의, 재테크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변화에 대응하는 등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진다. 함정근무자는 가족과도 생사 연락이 겨우 있을 정도다. 하나의 예로, 항해 중 조부모가 사망한 L대위는 발인날을 맞추기 위해 군용 헬기를 타고 인원이송을 해 장례식장에 겨우 갈 수 있었다. 다른 예로, 매번 항해 중 생일을 맞이했던 S장교는 카카오톡에 축하 메세지 확인이 안되고, 핸드폰을 열면 축하메세지는 다 사라졌다(5일간 카카오톡 메세지 미확인시 메세지 삭제) 이런 패턴이 몇 년 반복되니 중고등학교 친구와 지인들과는 원치않게도 연락두절됐다고 한다. 오해가 쌓인 것이다.




이 글을 통해 필자가 만났던 함정근무자의 어려움을 시간, 공간, 정보의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나열해보고자 했다. 정박 중 당직근무를 함께 했던 동료들은 위의 사례보다 더 많고 다양한 어려움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중에도 군간부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꿋꿋하게 지금도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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