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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사람] 소수의 삶

남초 속 여자, 상처많은 C부장

by 노서방 Mar 03. 2025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단어군이 있다. 여군, 여경, 여사원, 남간호사 등등 특정 성별을 강조하는 단어다. 언어도 하나의 습관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될 수 있으므로, 평소 혹시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용어는 애초 사용을 조심하고 또 지양한다.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이지만, 오늘은 모셨던 부장(여자 군인)에 대한 이야기다. 한때 필자를 참 힘들게 했던 상급자, 여러 시련을 줬던 그녀와는 2018년 초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리 해군의 첫 여군중령이라는 타이틀로, 갓 중령으로 진급해 배로 전입온 부장과는 삐걱대면서도 1년 4개월가량 함께 근무했다.



해군에서 첫 여성 장교로 임관해 철저히 소수의 삶을 살아온 그녀는 상처가 참 많았다. 소수는 그 자체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렇겠지만, 폐쇄적인 군대 안에서 소수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회식자리에서 성추행인가 싶은 알쏭달쏭한 말은 기본"이며, "(그녀가) 위관장교이던 시절 여군은 트럭으로 줘도 안받는다"는 부대장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 시대에도 그럴만한 오만한 부대장이 없겠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모두 겪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필자도 남자:여자 성비가 1:5에 가까운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와 소수의 삶이 얼마나 서러운지 겪어 봤지만, 그 생활을 20년가량 해온 부장의 삶은 어땠을까 싶다. 마음 한 편으론 안타깝지만, 동료로서 함께 일하기 참 곤란했다. 어떠한 업무나 이야기 주제에도 남녀 프레임을 계속 끼워 넣어 논제를 돌리는가 하면, 곤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여군이라 이걸 안 해주는 거겠지?"라며, 대답하기 어려운 답정너 질문이 매일마다 돌아왔다. 승조원들이 지시를 안 따를 때면, "전(前) L부장(남군이었고 다혈질이고 진짜 까칠한 성격이지만, 일은 기깔나고 책임감있게 했던..)이라면, 한 번에 척척 들었을 텐데 내가 여군이라 말을 안 듣는 것 같다."라는 식의 말이 레퍼토리였다.


당시엔 "왜 이런 말을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지나서 그 말이 일부 맞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근거 없이 부장을 여자라는 이유로 폄하하는 승조원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인도 여자이면서..) 그럼에도 중간관리자인 필자는 항상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마냥 승조원과 부장 사이에서 의견 차이를 조율하느라 진땀을 뺐다. 오해를 줄여가도록, 서로를 면담해서 이쁜 말만 앵무새마냥 전달하는게 주요 과업이 되었다.  


가장 심했던 건, 해외 훈련 시절, 부장의 근무태만에 대해 반발하는 민원이 심해져 승조원의 백지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다.(모두가 리셉션 행사에 집중할 때, 쇼핑 목록을 채워나가던 우리 부장이었다) "부장 때문에 근무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상처받아, 일주일 가량 집무실을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밥도 먹지 않고(흔히 사관식사는 장교들에게 회의이기도 한 가장 중요한 공식 일정) 버티며, 함장님을 비롯한 많은 이를 곤란하게 했던 부장의 감정적인 행동에, 우리 부서의 업무가 몇 주간 마비되기도 했다. 결정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해외 훈련에서 업무보다 감정이 우선되는 부장을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지금까지도 상당 부분이 이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필자는 매 끼니마다 밥을 퍼서 부장 방에 올려줬다.


해군 사관식사의 실상 / 회의 하다가 밥먹다가 회의함..(노트 사이 쌈채소가 보이는가!)


다른 구성원들처럼 부장을 패싱 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을 다했던 건, 무엇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동정했냐고 묻는다면, 맞다.) 필자의 능력이 닿는 데에서 모든 걸 해줬던 것 같다. 업무적으로나, 사적 심부름을 하거나, 규정과 법의 한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면서, 지금까지 상급자로서 '이빨이 먹히지 않아' 아쉬워했던 군생활을 잠깐이나마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수의 삶은 그 자체로 서럽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진, 필자는 문득 그녀의 '처음'이 궁금해진다. 어떤 일을 겪으면 그토록 방어적으로 변하는가? 과연 처음부터 그랬을까? 의지가 꺾인 건 어느 시점부터일까?


집단 속 소외감을 느끼는건 누구의 잘못일까. 조직에 적응 못한 개인? 배척하는 다수? 아니면 원래 조직이란 그런 것?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주제겠지만, 확실한건 소수가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할 책임은 다수에게도 있으며, 상황을 개선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부장과 근무한 1년 반의 시간, 필자는 약자에 대한 인식과 말에 더 유념하게 되었다. 그 후 어느 부서에서도 최소한, 함께 근무하는 소수와 약자에게 더 신경과 마음을 썼다. 이게 말로만 듣던 성인지감수성인지 장교로서의 책임감인지 뭔지 잘 모르지만, 소수라서 상처를 줄만한 말은 자동적으로 필터링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조직에 ‘제2의 C부장’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여성을 군대로 편입시킨 우리 군의 1차적 잘못이겠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했던 과거와 현재의 군인들 개개인에게도 그 책임을 묻고 싶다. 우리 군에 C부장이 다시는 없길 바라며, 더 성숙한 조직으로 변하길 바란다. 우리 개개인은 언제나 다수이면서 소수이고, 말은 부메랑 같이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 다만, 군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도, 부장의 잘못된 행동은 정당화시키기 어렵다. 신뢰한다 할지라도 필자에게 추행에 가까운 터치도, 상처가 되는 심한 말도, 책임과 직무 전가도, 사적 심부름도 많이 행했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도 용서가 안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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