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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서방 Feb 10. 2024

[군생활 잘하기]  7년의 실패(1)

군인의 가족도 군인인가?


    지금부터 지난 군생활에 대한 비관적 시각을 보이고자 한다. 누군가에겐 과장도 비약도 너무 심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군생활 중 어려웠던 점을 나열한 것이지 군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아님을 밝힌다.


먼저, 아래 3가지 문장을 제시한다.

1.가장이 가정의 안전을 직접 지킨다  

2.군이 가장의 안전을 직접 지킨다

3.군에서 일하는 군인도 가장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여러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는 군인도 한 집의 가장인데, 그들이 전방에 나가 있다면 그 군인의 가정은 누가 지켜주지?


사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정작 본인 가정은 직접적으로 지키지 못한다. 즉, 간접적으로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 만으로 가정이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현실이다.  


1. 군 가족, 그 불편함

    전역을 결심한 가장 첫 번째, 그리고 주된 이유는 군 가족의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아직 군인 스스로의 여건 보장조차 부족한데, 군 가족은 늘 그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곤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그래서 더 잔인하다. 남편 또는 아내를 군인으로 둔 배우자가 겪게 되는 보편적인 스트레스가 있다. 바로, 함께 있지 못하는 단절감주거의 불안정이다.


(1) 군가족의 단절감

    군가족, 특히 우리 해군가족을 만나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늘 배우자가 없다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과 공간 모두가 사회에서 상당히 단절된 해상 근무가 주를 이루는 해군은 , 아내의 출산에서 옆자리를 못 지키는 게 당연한 직업이 됐다.


    조금 더 극단적인 경우를 보자. 적의 수없는 국지도발과 위험한 근무환경 속에서 군인은 가족을 애써 안심시키며 전방으로 향하지만, 정작 그 가족은 영문도 모르고 가족을 타지로 보내곤 한다. 벌어져서는 안 되지만, 안타까운 사고가 늘 발생한다.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군 가족은 늦은 후회와 함께 평소보다 더한 끝없는 단절감에 빠진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 그 자체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직업이 군인이라지만, 군인의 가족은 군인이 아니다. 그들은 민간인이며, 군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군인과 같은 멍에를 지고 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끔, 이런 현실을 지적하려 해도 '그럴거면 따로 살라'거나, '모르고 결혼했냐'는 답변이 지배적이다. 군가족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답변이라 생각한다. 또한, 군인을 넘어 군가족에게조차 각종 의료/복지 서비스, 직업알선, 심리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군과 접근방식이 매우 다르다.  


(2) 불안한 주거환경

    또 하나, 주거의 불안정에 대해 알아보자. 최소 2년에 한 번 꼴로 다가오는 이사철. 매년 이삿짐을 챙기고 또 (언제고 다시 이사 갈 수 있게) 짐을 풀어놓는다. 군인 본인도 이사의 대상이지만, 가족*도 함께 한다. 이런 반복적인 전출이 수반되는 인사 시스템 속에서 가족들도 한 지역에 정착하기 어렵다. 가끔은 가족과 함께 이동하기조차 어려운 지역으로(전방의 오지나 섬) 전출 가는 위기 속에 주말부부냐 오지로의 이사냐를 고민하게 된다.

  * 자녀가 있다면 전학과 학원문제 등 더 복잡해질 것이다.


     장교와 부사관의 인사주기가 근소한 차이가 있다지만, 장교는 특히 인사 주기가 더 빠른 편이다. 위관 때는 1년에 한 번 꼴로 인사이동을 하게 된다. 해군의 경우 한 지역에서 이동하는 경우가 드물고,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 제주도 등을 오간다. 진급했다고 이동하고, 인사시기라고 이동하고, 어떤 직책이 공석이라고 또 이동하는 이사가 기본 '패시브'인 현실이다.


    여기서 가족의 입장에서 한 번 이사에 대해 바라보면 더 처참하다. 언제 이사 갈지 전혀 알지 못하는 군가족은 남편(또는 아내)의 이사 시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불안전한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간다. 부동산이라는 가치가 재산 그 이상으로 특별한 의미로 여겨지는 대한민국에서, 주거의 불안정은 재앙과도 같다.

    나의 이야기로 조금 보태자면, 사랑하는 아내는 26살의 어린 나이에 이삿짐 싸기에 달인이 됐다. 새로운 재능이 생겼다고 좋아할 법도 하지만, 한 편으로 슬픈 일이다. 이사철만 되면 2달 동안 머리를 싸매며 새 집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물건을 챙기고, 또 포장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밀려온다.


    또한,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먹는 게 낙인 아내는 나와 이사 다니는 7년간 '얼음 나오는 정수기'를 사는 게 꿈이었다. 정수기를 사고 싶어 따로 적금을 들고 100만 원을 진즉 모았어도 가전제품 하나 못 들인 이유는 '어차피 또 이사 가야 하는데'라는 암울한 미래에서 기인한다. 이사로 몸은 늘 고단하고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불안하다. 그게 군가족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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