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아줌마의 세상구경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에 벚꽃이 일찍 핀다면서 벚꽃 축제를 한달 가량 앞당겼으나 개구쟁이 벚꽃들은 인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아, 늦게 피나봐, 실망하던 그 순간 벚꽃들은 까르르 웃으며 일제히 만개했다. 갑자기 서울 온동네에 하얀 팝콘이 터져버린 거다.
딱히 꽃구경에 목을 매는 건 아니다. 작년에도 수국 정원에도 갔고, 제주도 동백꽃을 보러 갔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그냥저냥 국적불명의 조각상과 아치문을 이곳저곳 놓아둬서 사진찍어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정도였는데, 그것보다 더 실망한 건 모두 비슷비슷한 조경과 색감으로 꾸며놓았다는 거다. 당연하지, 이게 돈벌이가 된다는 걸 아는 지자체와 사람들이 급하게 만들어냈으니까. 그나마 아침고요수목원이 좀 낫긴 하더라. 결국 꽃도 이쁘지만 산과 나무와 들꽃과 풀이 최고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이른 봄 나무마다 올라오는 연한 연두색 새싹들은 화사한 봄꽃보다 훨씬 앙증맞고 이쁘다.
그래도 갑자기 온동네가 환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말 내내 돌아다녔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었고, 어디선가 워커힐 호텔 부근 벚꽃이 이쁘다길래 한번 가봤다.
완전히 벚꽃으로 뒤덮힌 정도는 아니고 구간도 긴 건 아니지만, 아차산을 끼고 워커힐 호텔로 가는 데크길은 산책하기 좋았다. 대중교통이 아주 편한 지역은 아닌 거 같긴 하지만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최적의 산책로일 거 같더라.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잠시 다른 곳에 들렸다가 우연히 광역버스 3100번을 타고 중랑천을 따라 쭉 내려왔는데 그 옆쪽으로도 벚꽃나무가 진짜 많았다. 그러면서 서울숲 옆을 지나가는데 아, 맞다 서울숲도 엄청 이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다음날 일단 서울숲으로 향했다. 날씨도 좋았고 예상한대로 튤립과 수선화 등등 아름다운 꽃들이 일제히 활짝 폈고 사람들도 진짜 많았다.
호수에 비친 그림자조차 아름답다.
꽃만 이쁜게 아니라는 사실!
당연히 벚꽃도 많이 볼 수 있다. 참고로 서울숲은 엄청 넓고 꽃 정원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데다 벚꽃나무들도 한군데만 몰려있는 게 아니다. 어딜가도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슴방사장과 바람의 언덕도 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화려한 벚꽃과 개나리와 수선화와 튤립도 좋았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장소는 바로 여기다. 꽃이 아니여서 그런지 사진찍는 이들 외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적해서 좋았다. 저 멀리 하얀 백로(?)처럼 보이는 새가 고상한 자태를 뽐내는 중이었다.
평소 같으면 서울숲에서 멈췄을텐데, 날씨도 너무 좋고 지금 이 순간이 벚꽃의 절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친김에 인왕산 둘레길로 향했다. 이렇게 싸돌아다녀도(?) 말쩡하다니, 내 건강이 정말 좋아진 듯 했다. 수성동 계곡은 여전히 아름답다.
인왕산 둘레길 역시 꽃천지이고 사람들도 많았지만 날씨와 주말을 감안치고 한적한 편이다.
이틀에 걸쳐 워커힐 호텔 - 서울숲 -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 둘레길에서 봄꽃들을 원없이 봤다. 행복이 별 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감사한 나날의 연속, 내가 이렇게 좋은 걸 이만큼씩이나 누려도 괜찮은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