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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Oct 03. 2024

2024년에 만난 E.T.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리라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이 영화 내가 4학년 때 개봉했는데 그때, 우리 반 애들은 다 봤어! 나도 보고 싶었는데 아빠가 다달 학습은 다 풀었냐? 이런저런 핑계 삼아서

난 영화 못 봤어"영화 <E.T.>을 둘째 딸과 보려는데 남편이 들어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딸에게 손가락을 내밀지만 둘째 딸은 '어쩔'하는 표정이다. 남편에게 돌아가 시아버님을 떠오르게 한 E.T를 개봉한 지 40년이 지난 이제야 나는 처음 본다.

          

첫 장면은 숲 속이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찾아 쫓고 있다. 쫓는 자와 숨으려는 자 그러다 동그란 우주선은 굉음을 남긴 채  떠나고 그걸 지켜보는 무언가 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리, 바지춤에 매달려 쨍그랑 거리는 열쇠소리, 숲 속 풀사이 숨어있는 무언가는 있는데 화면은 롱쇼트로 40년에 지난 지금에도 적당한 긴장감이 전해진다.


이어지는 집안 풍경은 아이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놀며 동생 엘리엇은 형이 놀이에 껴 주지 않는다. 피자를 받아 오면 같이 놀아 주겠다 하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생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구나 싶다.

피자를 찾으러 나간 엘리엇은 밖에 무언가 있음을 알아차리지만 그건 엘리엇만 알 수 있다.

세상에는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자기 말을 믿지 않는 가족들의 냉담한 반응에 엘리엇은 “아빠라면 믿었을 텐데......”라고 말하고 형 마이클에게 떠난 아빠를 엄마 앞에서 이야기한 것에 대해 핀잔을 듣는다. 유독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는 엘리엇은 E.T. 을 찾아 숲 속에도 가고 초콜릿을 떨어 뜨려 놓기도 한다.          

다른 행성에 사는 E.T. 는 식물학자이고 지구의 식물을 조사하려 왔다가 일행에서 떨어져 혼자 지구에 남게 되고, 숲 속에 숨어있다가 마을로 내려와 엘리엣의 집 창고에 머물다가 지구 소년 엘레엇을 만나게 된다.


낯선 생명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공간인 방 한 칸을 기꺼이 내어주며 환대하는 엘리엇과 소년의 질문과 환대를 기꺼이 받아주는 식물학자 E.T. 는 의심 없이 서로를  내보이며 우정을 키워간다. 엘리엇은 형 마이클과 여동생 거티에게도 E.T. 를 소개해 주고 거티는 환영의 뜻으로 자신의 조금은 시든 화분을 선물한다. 꽃은 시작과 끝 그리고 기쁨과 애도가 있는 곳에 언제나 함께 한다. 아이들은 방 안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인형 꾸미기 놀이도 하며  E.T와 가까워진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대신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스스로 해려는 용기로,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진지함으로 식물학자 E.T. 와 지구어린이들은 그렇게 친구가 되어간다.       

나에게 콕 박힌 장면은 엄마가 부엌에 있고 E.T. 가 왔다 갔다 하는데 보지 못하는 장면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E.T. 의 존재를 말하려 하지만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잠깐의 도 낼 수 없는 엄마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집안일부터 아이들 픽업에 직장일에 함께 했던 남편마저 딴 여자와 떠난 상황이 숨 막혔다.   외계인이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고, 외계인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는 잠시 멈출 시간도, 모르는 존재를 알아갈 여유도  없다.

        

어른의 세계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헛짓거리인 경우가 많다. E.T. 를 발견한 후 온갖 무장을 다하고 엘리엇의 집을 찾아오는 어른들은 E.T. 가 죽어갈 때조차 자신이 해야 하는 일 밖에는 조금의 헤아림도 없다.

낯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이 있었다면, 인간의 약을 대량 투여하고 전기 충격을 주지는 않았으리라. 어린이가  E.T. 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환대하는 마음 때문이다.   E.T. 는 거티가 선물해 준 꽃이 시들자 함께 죽어갔고 냉동 상태가 된다.

E.T. 가 싸늘하게 죽어갈 때 둘째 딸은 “엄마 어떡해 E.T. 가 죽었어 어떻게...” 하며 울었다.

나는 역시 40년을 넘게 산 어른의 생각으로 ‘이렇게 죽을 리가 없지... 그래... 살아나겠지

그런데 어떻게 살아날까 ‘ 생각했다.

설마 백설 공주처럼, 라푼젤의 유진처럼, 쿵후 판다 우그웨이 대사 부처럼?


E.T는 화분의 꽃이 다시 피어나자 차가웠던 몸에 온기가 돌아온다.

피었다 지고 다시 피어나는 꽃

그리고 아이들은 위기의 순간에 더욱 높이 비상한다. 친구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 그들은 함께 하늘을 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한다.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다니, 이 얼마나 순수하고 낭만적인가! 이제 안 되겠구나 싶었을 때 더 높이 닿을 수 없는 그곳으로 날아본 아이들의 경험은 어떻게 기억되고 간직될까? 살면서 어떤 희망이 되고 힘이 될까? 아이들은 환대와 존중으로 함께 성장한다.

 

연약하고 섬세하지만 강인하고 씩씩한 꽃, 적당한 햇빛과 바람 흙이 있어야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꽃, 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에게로 와 꽃이 되는 꽃, 서로에게 알맞은 빛깔과 향기 가진 꽃이 된 엘리엇과 E.T.  

“난 바로 여기에 있을 거야”엘리엇의 가슴을 가리키고  E.T. 는 어린이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 됐다. 이 정도면 됐다 싶다.

익숙한 결말이 주는 안도감과 따스함을 느끼며, 겉과 속이 다른 불투명한 어른의 세계에서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것보다 뻔하지만 투명하고 밝은 어린이의 세계의  아름다운 결말로 족하다.

둘째 딸이 말한다.“엄마 이제 E.T. 도 잘 돌아갔으니까 아빠도 돌아오겠지?”

내 생각엔 멕시코로 떠난 아빠는 5년 안에 돌아올 것 같지 않았지만"그래... 돌아오시겠지 하며 영화를 껐다.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도, 엄마가 아이 셋을 키우느라 너무 바빠도, 마이클, 엘리엇, 거티 삼 남매는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리라.   




나는 하나의 정원이 되고자 한다. 그 샘가에서
수많은 꿈이 수많은 새 꽃을 피우는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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