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못 잔 줄 알았는데 아침에 첫째 딸을 깨우니 "엄마가 코 고는 소리에, 나 못 잤어"한다.
내가 언제 코를 골았을까? 나는 코를 안고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최근에 남편, 두 딸들 그리고 함께여행 갔던 친구들에게서 나의 '코골이 청취담'을 들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나는 코를 곤 것일까?
남편말로는 자기보다 더 크고 규칙적인 소리라 하고 딸들은 아빠랑 비슷하다 했고 친구들은
코 골더라 그 정도였다. 나는 딸에게 엄마가 코 골면 한 번 녹음을 해달라 했는데 딸은 핸드폰만 들면내가 코를 안 곤다 했다.
나는 초등시절 비염수술을 했다. 고대병원으로 기억한다. 어찌나 울어 댔던지 왼쪽 코를 수술하고 오른쪽 코를 수술할 때 의사 선생님이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고 물으셨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줄기차게 계속 울었다. 선생님은 수술 후에 오른쪽 코는 일부러 빨리 수술을 마치셨다고 했다. 수술 전 첫 금식의 배고픔과 엄마가 수술하러 가는 내손을 부여잡고 기도했던 기억, 그리고 비염 수술 전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병원 침대에서 잠이 든 기억이 있다. 어릴 적부터잠이 많긴 했나 보다.
비염 수술 후에는 뻥 뚫린 코로 정말 편안하게 숨 쉬며 잘 때도 코골이도 없었다.
그런데 다시 코골이가 나를 찾아왔다. 그래도 매일 코를 고는 건 아니고 좀 피곤했다 싶을 때 코가 알려준다.'너 무리했어!' '차가운 맥주는 마시지 마' '그러게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거야?' '신경이 많이 쓰였구나'무심코 그냥 넘겨버린 일들도 코가 나에게 말을 걸며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코를 훌쩍이며 하루를 돌아본다.
월요일 아침, 시작은 사라진 조끼였다.
매일 체육복을 입고 등교했던 첫째 딸이 교복을 입고 가며 교복을 찾느라 옷장은 뒤집혔고 교복 조끼의 행방을 두고 책임소재에 대한 신랄한 대화가 오갔고, 둘째 딸은 침대에서 나를 부르더니"엄마... 나 머리가 아프고 목도 아파서 학교 못 갈 거 같아"하고 선언했다. 내 책상에는 120색 파스텔과 그리고 한쪽으로 몰아둔 다시 그려야 할 그림이 딱 버티고 있었다. 나름 심호흡하며 한 나절을 보냈는데 한숨 자고 일어난 둘째 딸은 반찬으로 준비한 소고기 미역국 노! 순댓국 노! 감자 노! 메추리알 노!삼각김밥이 먹고 싶다. 햄버거가 먹고 싶다. 하며 딴지를 걸었고 남편도 퇴근하며 전화해 오늘 반찬이 뭔지 물었다. 미역국은 안 당긴다며 순댓국은 어디서 샀는지 묻더니 한살림순댓국이라 했더니 안 먹겠다 했다. 다행히큰딸은 학교 체험활동이 있어저녁밥을 먹고 왔다.
여기 까지는 나름의 어두운 미소를 지으며 17년 차 주부답게 유연하게 저녁을 제공했다.
병간호를 하며 미뤄둔 옷장정리를 시작한 게 이게 문제였다. 오전에 시작한 정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섣불리 옷장 서랍을 여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옷장을 치우다 부엌을 치우다 끝내 베란다까지 가버린 나는어느 것 하나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그대로 두고 지친 몸을 이끌고,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고코를 골게된 것이다.
"드르렁드르렁 드르렁 대 드르렁드르렁 드르렁 쿵" 쉴 새 없이
마음을 순화하는 데 욕설을 용서하는 것보다 탁월한 훈련이 있을까! 물론 가능 한'진정 어린' 용서여야 한다."너를 용서한다"는 건 다시 말해 나는 너를 이해하고 선을 긋고 소화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