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아이러브스쿨'로 뜨거웠던 시절에 만났다. 처음 모임장소였던 대학로에서 찐하게 한잔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우리는 한 정거정 차이여서 같이 택시를 타고 왔다. 먼저 내리며 나는 만 원권 지폐를 날렸고남편은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나는 지갑을 보며 혀를 찼지만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한 동네 친구,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보이스카우트사진속내 옆자리에서 어색한 미소로 남편은 웃고 있었다.
대학로에서의 첫 모습은 하얀 나시티, 청바지에 워커를 신고 있었다. 하얀 나시는 좀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아담한 키에 쪽 찢어진 눈매에 검은 테 안경이 잘 어울렸다. 나는 그 당시 자유분방하며 어눌한 듯 살짝 힙한 악동 같은 남편이 좋았다.
우리는 동네에서 주로 만났다. 도깨비 시장에 있는 족발집, 이모네부터 신도봉시장에 있는 선술집분위기로 꼬치와 간단한 마른안주를 파는 '여기서 한잔'은 저녁마다 퇴근 도장을 찍었다.
붐비고 화려한 곳보다 단출하며 맛있는 음식이 좋았다. 특히 떡볶이를 좋아했던 남편덕에 떡볶이집투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잘 만나다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 7년을 돌고 돌아 나의 프러포즈로 결혼했다.
그래서 요즘에도 "나 돌아 갈래~~'을 외치며 한탄을 할 때면 남편은 얄밉게 "이게 왜 이래! 네가 원해서 한 결혼이잖아" 한다.
풋풋한 시절 매력 넘치던 자유분방함과 솔직함은 이제는 직설화법을 넘나드는 독사의 혓바닥으로 바뀌었다.
한 번은 어린이집 방모임에 갔다가 깜깜한 밤에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나는 무릎이 까졌다.
아프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집에 와서 "이것 좀 봐... 쓰라려 죽겠어 아니, 어쩜 길이 그리 깜깜하고 어둡냐" 하며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자 한참을 듣고 있다가 말이 이어질 듯하니 "아니 나한테 왜 그래 내가 밀었어?" 하는 것이다. 어쩜...... 후훗!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독침을 날리고 싶었으나 말을 아끼고 돌아섰다.
스팸, 런천미트, 로스팜, 리챔에 들어있는 고기함량과 나트륨함량까지 비교 분석하는 꼼꼼하고 예리한 인간, 세탁기 수평을 3시간 넘게 맞추는 인간, 스탠드 에어컨을 다 분해해서 청소하는 인간이 내 남편이다.
비교와 분석은커녕 통장에 나오는 숫자도 헷갈리는 수에 약한 인간, 방바닥이 지저분할 땐 안경을 벗어 시야를 흐리게 하는 인간, 온동화를 빨아 신는다고? 나는 별로 빨 일이 없던데.. 하고 말하는 인간이 나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말처럼 원해서 한 결혼이지만 애즈원의 노래 가사처럼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지금 들어보면 오돌오돌 닭살이지만 '원하고 원망하죠... 그대만을... 내게 다가온 시간을 힘겹게 만드는 사람...지난날들을... 그대의 아픈 얘기를 모르고 싶은걸... 그런 그댈 끌어안아 주고 싶지만...잠시 그대 쉴 곳이 되어 주기엔... 나는 너무나 욕심이 많은걸... 원하고 원망하죠... 그대만을...'
원망이 들어설 때 말을 할수록 화가 나서 나는 끄적끄적 글을 썼다. 결혼 전 남편과 헤어진 기간에도 노트 한 권을글과 그림을 엮어서 한 달 넘게 기록해 나중에 선물했다. 결혼하고 나서 보니 남편은 안 읽었을 것 같은 느낌다운 느낌이 온다.
물론 남편에게만 준 건 아니다. 첫사랑 대학생 오빠, 나의 이상형이었지만 100일 반지만 하고 헤어진소개팅남, 그리고 마지막이 지금의 남편이다. 돌이켜보니 때마다 아주 절절한 사랑을 했었네 싶다.
아침엔 작은 동그라미 사랑, 점심엔 마름모꼴애증, 저녁엔 두둥실 양떼구름 같은 인류애로 시시각각모양과 질감이 달라지는 사랑이지만, 나는 지금도 남편, 너를 사랑하는가 보다.
토닥 한 줄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