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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Oct 24. 2024

가을엔 부캐로 살겠어요

그녀는 수포자였다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가을인가 보다.


아침에  댄스를 마치고  집 앞 도서관에 들려 '완득이'를 뽑아 들고 읽으며 혼자 웃다가  찡한 마음에 울다가를 반복했다.

문장이 쫄깃하고 감칠맛이 있어  훅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화로 만들어질 만했다.

10시 도서관은 한산했고 내가 앉은 창가 자리는 뒤에 있는 유치원 운동장의 까쓸한 흙바닥과  큰 나무,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가을바람이 밀려와 절로 감성이 충만했다.

하지만 배가 고파서 끝까지 못 읽고 빌려 왔다.

걸어오며 놀이터 벤치와 보도블록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출렁거렸다.


가을이었다.


집에 돌아와 어제 해둔 떡볶이와 김치찌개로 배부르게 먹고 나니 웬걸 아까의 감성은 금세 사라졌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루 2시간 그림, 1시간 글쓰기, 1시간 독서'로 지난주 다시 다짐하고 달력에  붙여 두었건만 그게 그렇게 힘들다.

오늘은 기필코 지키리라~다짐하며 책상정리를 하는데  첫째 딸의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에  딸이 방과후 학교에서 받은 프로젝트수업이야기를 해 주었다.

문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그중에 1) 시나리오 기법(5단계 가설 세우기)  2) 페르소나  활용(가상인물 만들기)에 대해 말해주었다. 요즘 많이 나오는 부캐릭터(페르소나)를 이용해서 문제해결을 한다고?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오기도 하지만 문제을 해결을 위해 '부캐'를 설정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림작업을 할 때 구체적인 캐릭터를 잡아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과 비슷한 것 같았다.


파일은 어제 말한 프로젝트수업에 관한 것이었다.

<미래를 상상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로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고등학교로 찾아가서 하는 수업으로 6회기 12시간으로 맞춤형 진로수업이었다.

어제 받은 수업계획안은  6장으로 구성되어 미래를 상상, 주제를 정하기, 가상인물을 설정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되어 있었다. 6장에서 4장은 비어있었고 2장 정도 필기가 있었는데

설정에 놓은 가상인물을 보고 빵 터졌다.


이름:김윤아

나이:30세 0형 ENFP

가족관계:엄마, 아빠, 남동생(잘생김, 무용과, 23살)

사는 곳:노원 거주 월세(전세 사기)

성격:잘 미룬다

가치관:시간을 잘 쓰는 미루지 않는 사람

취미:그림 그리기

특징:청강대에 가고 싶었으나 그녀는 수포자였다

 무릎이 아픔, 손목도 아픔

마라탕, 간장게장 좋아함 닭고기 알레르기 있음

운전면허 2종  차는 없음

이상이었다.


부캐에도 본캐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학생인데 나보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더 많고  내일 필요한 프린터물이나 준비물을  바로 전날 오후 8시에나 이야기하고, 핸드폰이 고장 나서 통화가 안되는데 별 불편함이 없다며 3주 이상 고장 난 폰을 들고 다니고 수포자보다는 영포자에 가까우며 무릎통증을 호소하는 10대


그래, 엄마도  도서관에서는 감성녀로 눈물짓다가, 집에서는 눈뜨자마자  음식섭취가 이루어져야 움직일 수 있는 탄수화물녀로, 고운 말 사용하다가 갑자기 잇몸을 드러내는 야성녀로 살고 있으니


때로는 본캐로

때로는 부캐로  

이 가을과 사이좋게 지내보자~





토닥 한 줄

누구세요?
나!
나라니, 누구?
너.
그러곤 깨어난다. 너와 나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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