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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Oct 29. 2024

엄마의 로망

그냥~그림 그려 엄마!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한 달에 한번 혜화동 <책 읽는 사회재단>에  그림책작가들이 모여 '비경쟁토론'을 한다.

큰 언니이자 품 넓은 김지연작가님이 모임을 열어주셔서 말로만 듣던 '비경쟁토론'을 접했다.

5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책으로만 만났던 여러 작가님을  만나 서로 인사도 하고 밥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토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럽던 나에게  사실 나뿐 아니라 다른 작가님들 또한  즐기지 않았던 토론에 '비경쟁'이라는 단어가 하나 붙으니 그동안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반짝이는 생각들이 나타난다.

아! 무릎을 치는 진리를  발견한다.

'경쟁보다는 함께, 정답보다는 질문!' 하는 쫄깃하고 담백한 토론이다.

책을  미리 읽고 오지 않아도 된다.

전 연령이 함께 생각을 나누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읽고 토론할 수 있는  그림책으로 한다.


  <비경쟁토론>

-토론은 진행자가 책을 읽어주고 인원수에 따라 3~5명까지 한 조(조장을 뽑는다)가 된다.

- 조장이 있고 15~20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진행자가  마감 5분 전을 알려주면 함께 질문 1을 만든다.

-조장은 그 자리에 있고 조원은 각 조를 돌며 마음에 드는 질문이 있는 곳에 앉는다.

-다시 15~20분 이야기를 나눈다. 진행자가 마감 5분 전을 알려주면 질문 2를 만든다.

-다시 조장은 자리에 있고 조원은  각 조를 돌며 이야기하고 싶은 질문에 있는 곳에  앉는다.

-마지막 15~20분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질문 3을 만들거나 토론 후 느낌이나 결심을 담아 슬로건을 만든다.


5월 첫 모임을 <쉬잇! 다 생각이 있다고> 크리스 호튼 그림책으로 시작했다.

-왜 계획은 계획대로 안될까? 허용가능한 여지의 범위는?

-모난 것의 반대는 둥근 것일까? 왜 변하지 않는 삶이 지속될까? 우리는 누구인가?

<non, stop, 아무것도 아닌'을 위하여> 토미 웅게러

 <오리건의 여행> 라스칼 (글) 루이조스 (그림)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요코

매달 마지막주 그림책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애잔함과 이상한 동경심, 외롭지만  벅찬 마음, 일상의 고달픔과 우정, 남들과 다르다는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에게 머리를 콩~ 쥐어 박힌 것 같았다.

서로 묻고 답하며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이 느낌이 토론이라니!

끝나고 난 뒤 얼굴이 밝아지며 가슴이 꽉  차오르는 이 느낌이 토론이었다고!

행복했다.


그런데 지난 모임 때 가위바위보를 이겨서 오늘 토론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혼자 이야기하는 건 왜 이리 떨리는 걸까? 날짜가 다가올수록 눌려 지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림책도 고르고 나름의  짧은 PPT도 만들었다.

내가 선택한 그림책은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9월 들은 시수업을  생각하며 그림책과 시에 대해 '그린다는 것'에 대해 짧게 나누고 함께 그림책을 보고  토론을 시작했다.

-아름다움을 맞이할 준비는 되셨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익숙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는 질문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시는 그림책이 될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만든 슬로건은  '오늘부터 당신은 시인' '세상에 있는 아름다움에 질문을 던지자'였다.


사실 나는 우리 동네 김수영 문학관에서 열린 시수업을 듣고 너무 감동받아서

수업을 마치고 시집 5권을  넘게 빌려  집에서 읽으며 둘째 딸에게 말했다.

"여기 이 시 좀 봐~모서리를 쫑긋 거리는 별 이래 아... 엄마도 시인이 되고 싶어"

그러자 딸이 게 한숨을 내쉬더니

" 엄마! 그림책도 3~4년에 한 권 나오면서 언제 시를  쓰겠다는 거야? 그냥 그림 그려 엄마"하고 말했다.


그렇다. 객관화 작업이 잘 되는 초등학생 소녀

내 딸이었다.

자기 객관화도 잘하면 좋으련만...

딸의 의견을 수용하여 그림에  매진하기로! 

짧게 다짐했다.



토닥 한 줄

수요일에 다니엘은 다람쥐 굴을 들여다보며
물었어요.
"다람쥐야, 넌 시가 뭐라고 생각하니?"
"시? 음... 시는 오래된 돌담이 둘러싼 창문 많은 집이야."
  
                                             -미카 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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