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좀 좁은 것 같은데?”
결혼하고 처음 손님을 초대한 날, 그러니까 집들이였다.
그날 가장 먼저 들은 말.
21평. 둘이 살기엔 충분했지만, 여럿이 모이니 답답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했다.
“제가 배를 타면 아내는 1년에 8개월은 혼자 있어야 하니까요.”
“그것도 그렇겠다.”
내 직업은 선원이다. 긴 시간 집을 비우고 바다 위에서 생활한다.
그러니 아내 혼자 지낼 집이라면 21평도 크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애초부터 넓고 예쁜 집을 꿈꾸기보다는, 실용적인 선택을 했다.
그런데 집들이에서 빠지지 않는 화제는 언제나 ‘집의 형태’였다.
방 구조, 창 방향, 평수, 인테리어를 지나... 결국엔 묻는다.
“전세야, 매매야?”
그럴 때면 우리는 말했다.
“월세예요.”
그 대답은 종종 작은 침묵을 불러왔다.
“월세? 그래도 전세로 하지.”
“에이, 너 정도면 전세도 가능하잖아.”
“나중에 매매로 갈아탈 거지?”
그 말들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한 걸까.
사실, 알고 있다. 집은 단지 거주 공간이 아니다.
계급의 척도이자, 삶의 안전망에 대한 신호다.
전세냐, 매매냐, 월세냐.
그건 곧 돈이 있는가 없는가,
부부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
이 가정이 안정적인가를 가늠하는 도구가 된다.
아내는 옆에서 조용히 웃고 있었고, 나는 너스레로 넘겼지만
속으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내가 왜 설명하고 있지?’
사실 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선원이에요.”라고 말할 때마다 돌아오는 표정들-
고생 많겠다, 외롭겠다, 생선 많이 먹나?
그런 시선엔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날따라, 뻔한 질문들이 왠지 더 피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 가장 필요했던 시선은 정작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들이에 오지 않으셨다.
결혼식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주변에 결혼 사실조차 알리지 않으셨다.
나 역시 친척들에게 인사드릴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자연스레, 집들이에도 친척은 없었다.
가끔 명절 즈음, 혼자 아버지를 뵈러 간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한 번도 묻지 않으셨다.
‘며느리는 왜 안 왔냐’고.
‘왜 오지 않았냐’가 아니라,
‘그런 존재'가 없다는 듯
아예 화제에서 지우신다.
내가 먼저 아내 이야기를 꺼내도,
대화는 곧장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침묵은 무관심이라기보단, 부정에 가까웠다.
‘너의 결혼은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선언 같았다.
말이 아닌 방식으로 반복되는 선언.
반면 어머니는 달랐다.
집들이 날, 먼 길을 혼자 오셨다.
오랜만에 뵌 어머니는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아 보이셨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면서도, 눈빛은 사방을 살피셨다.
작은 부엌, 좁은 거실, 짐방과 안방.
그리고 문득,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아들 중학생 때 살던, 딱 그 사이즈 집이네."
"맞아. 연식이 있으니까."
"그때 참, 집 좁아서 키우기 힘들었는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어머니의 말뜻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어머니가 진짜로 궁금한 건
‘이 좁은 집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울 거냐’는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어머니는 드디어 내 결혼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걸.
그리고 현실에는, 언제나 다음 단계가 따라붙는다는 것을.
이제 '그 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