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
남들은 아홉수를 조심하라며 외친다.
하지만 나는 다섯 수의 고비를 언제나 넘겨야 했다.
어린 시절 늘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고 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늘 그렇게 지내야 할 것 같고 엄마옆에선 그런 딸이 되어 기대를 채워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가 없었고 늘 도망치고 싶은 맘뿐이었다.
어쩜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딸들을 공부시키겠다고 일속에 파묻혀 지내는 엄마의 인생이 안쓰럽고 내가 잘해서 성공해야 한다라는 부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나고자 내가 했던 선택은 결혼이었다.
나는 경찰서에서 탈출해 감옥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었다.
부담감에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 나를 희망도 빛도 없는 골방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다섯 살 많았고 학원에서 만났다.
결혼 날짜를 잡고 이번엔 남편에게서 또다시 도망이란 걸 치고 싶어졌다.
결혼 준비를 하며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20대 시절 나에게 청첩장이 나간 결혼식을 취소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에게서 도망이 치고 싶어 결정한 결혼!!
그런데 학원의 과학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진짜 결혼하나요? 나 그 사람과 잤습니다. 그래도 결혼을 할 건가요?”
그때 나는 대체 어떤 시대에 살던 사람이었을까? 여자가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입 밖으로 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원장님께 “과학선생님 창피한 줄 모르시나 봐요!”라고 말했다. 오히려 화를 내야 할 남편에게 남자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관대하게 넘어가며 편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건 내가 남편을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사고방식 속에 있던 생각일 뿐이다. 그 과학 선생님 덕에 학원은 발칵 뒤집어졌고 내가 편을 들어주어서가 아닌 남편과 과학선생님 사이의 싸움에서 과학선생님이 지고 말았다. 학생들은 과학수업을 보이콧했고 과학선생님은 그만두시고 말았다.
세상 대부분 부부들의 문제는 돈 때문 일거라 생각이 든다.
친구들에 비해 결혼을 일찍 한 터라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끌려가듯 결혼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결혼을 하며 남편은 학원을 그만두었고 남편이 결혼을 위해 썼던 돈들은 카드값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취직할 생각 없이 게임만 하고 있는 남편곁에 구인광고지를 슬쩍 가져다 놓으며 애간장을 태우곤 했다.
카드값도 막아야 하고 생활도 해야 하고, 하지만 큰돈을 만져 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엄마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 얼마나 철없고 기가 막혔을까? 천만 원을 빌리고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나의 문제 해결방식은 틀렸던 것이다. 잘 못 푼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는 또다시 잘못된 풀이법을 적용시키게 되었다. 아는 언니와 통화를 하다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 갚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마에겐 갚을 수 있었지만 그 돈이 나의 고달픈 삶의 시작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시댁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은 어리지만 남달리 보수적인 나에게도 참 어려운 일이었다. 시댁에서 키우는 똥개도 시똥개라 칭한다더니 어쩜 그리 시어머니가 하시는 이야기는 모두 가슴에 남던지;;
결혼 후 게임만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싫어 운전면허라도 땄으면 좋겠다 말을 했고 면허증을 취득하고 남편은 곧바로 중고차 시장에서 차를 구입했다. 그리곤 음주운전으로 폐차를 시키고 말았다. 나의 선택은 결국 일을 더 키우는 일이 되었고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싸움이라 할 수 있을까? 그냥 일방적인 화를 받아내는 일이 내 결혼생활의 전부였다. 결혼이란 엄마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제2의 인생이다.
다툼이 있을 때마다 아니 남편의 화받이가 되는 듯 느낄 때마다 마음은 엄마에게 향했지만 차마 발길을 돌려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벼렸다.
그리웠다. 30분이면 보러 갈 수 있는 엄마가 너무나도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