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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May 29. 2017

노무현입니다

‘첫 파도’ 노무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께서 자리를 비우시면서 모두 눈 감고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반장인 나에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당부하셨다. 선생님께서 나가시자마자 아이들은 맹렬히 떠들었다. 나는 “조용히 해”라는 몇 마디를 외치다가 칠판에 떠든 친구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이 방법 저 방법을 써 봤지만, 별 수 없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혼자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다. 나라도 조용히 하고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의 화난 목소리가 울렸다. “이놈들, 조용히 하고 있으라니까 떠드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들려.” 올 것이 왔다. 내 머릿속으로는 특별히 까불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혼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선생님이 부른 이름은 나였다. “너는 반장이 돼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지는 않고, 너 혼자 눈 감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잘하는 거야?” 뜻밖의 꾸짖음에 제대로 변명도 못 하고 손바닥을 맞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손바닥보다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부끄러웠다.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다른 사람 일은 신경 끄고 나만 잘하면 되지, 하는 이기심. 그런 결과로 얻은 모범생이라는 타이틀. 그 온전치 못한 실체를 들켜 버린 것이 부끄러웠다.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다시 그 부끄러움을 느꼈다. <노무현입니다>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바보 노무현’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우직함에 감화되어 또 다른 노무현으로 거듭난 우리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일으킨 ‘노풍’과 민주화의 첫 파도. 하나 되어 꿈틀대는 열정의 에너지는, 나 하나 살아남는 일에 단련되어 굳은살이 박인 양심의 벽에 금을 내었다. 그 균열 사이로 부끄러움이, 눈물이 새어 나왔다.

     

<노무현입니다>의 주인공은 노무현만이 아니다. 노무현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고, 노무현의 신념을 지지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모두 주인공이었다. 이 영화는 그 주인공들이 결집하여 거대한 에너지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영화에는 거대한 두 줄기가 흐르는데, 첫 번째는 노무현의 바보스러움이다. 지역감정과 색깔론이 대세를 이루던 정치판에서 노무현은 바보스러운 싸움을 계속한다. 오로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일하겠다는 구호만을 외친다. 그러한 신념 이외의 것들과는 타협하지 않았기에 그는 국회의원, 시장 선거 등 출마하는 선거마다 번번이 낙선하고 만다. 영화에서 소개하는 일화들은 노무현이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악을 쓰고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그 싸움이 얼마나 무모하고 외로운 것이었는지를 부각한다.

 

    

견고한 적폐의 위력 앞에 ‘바보 노무현’이 패배하는 듯한 순간에 두 번째 흐름이 등장한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휘몰아친 ‘노풍’의 기적이다. 이전까지의 싸움에서 ‘바보 노무현’은 졌지만, 지지 않았다. 노무현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노무현의 편이 되어 주었다. 유시민 작가의 인터뷰 내용처럼 존경보다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노무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자발적이었다. 진심이 모여서 신념으로 굳어지니 그 위력은 대단했다. 전철 승강장에 끼인 승객을 구해내기 위해 시민들이 전철을 움직였던 장면. 그때의 기적이 오버랩될 만큼 인상적이었다. 제각기 살아가는 일로 무신경해 보였던 사람들이 옳은 일을 위해 모여 초인적인 에너지를 쏟아 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새 정권이 들어서니 몇 주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고. 영화를 보고 나니 변화의 씨앗은 이미 그때 수많은 ‘노무현’들이 뿌려 놓았던 것 같다. ‘첫 파도’ 노무현은 광화문 광장에 촛불로 번져갔고, 다시 한번 깨우침과 기회를 준 것이다.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에 눈 감고 귀 닫아 온 나에겐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봉하마을을 아들과 찾은 인터뷰이의 다짐처럼 내 아이가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게 가르치는 것으로 오래된 빚을 갚아 나가야겠다. 나와 마찬가지로 부채감에 영화 보기가 죄송하고 무섭다는 분들에게 영화 <변호인>의 대사 한 구절을 전한다.

     

“오래된 빚은 얼굴과 발로 갚는 거데이...”

     

함께 그 시간을 추억하고,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고 나니 위안받는 것은 나였다. 황송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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