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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학교생활-알파벳 언제 배워요?

알파벳은 유치원 선생님께 맡기세요.

만 5세가 되는 해, 9월 아이들은 Kindergarten(유치원)에 들어간다.


2007년생인 큰 딸은 2012년에 킨더에 들어갔다. 한국 사람들과 나름 어울리며 지내다 보니 다들 play base preschool에 보내는 것보다는  몬테소리가 더 좋다는 이야기에 큰 딸은 만 3 살 때부터 몬테소리 유아원을 2년간 다니고 킨더에 들어갔다.


첫 아이다 보니 남들을 많이 보고 따라 했던 거 같다. 별생각 없이.... 다행히 큰 아이의 성격이 몬테소리와 잘 맞아서 2년간 힘 들지 않은 프리스쿨 생활을 했는데, 몬테소리라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는지 한국 애들이 많아서였는지 큰 아이의 영어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집에서 맨날 한국말만 쓰는 엄마, 아빠와 생활하다 보니 영어를 배울 기회가 프리스쿨 외엔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킨더에 들어가는 해의 2월에는 킨더가든에 가서 미리 아이를 등록해야 한다. 원하는 학교가 아니라 사는 지역에 따라 catchment 학교가 정해져 있다.


시마다 다르지만 내가 사는 시는 2월 한 달 동안 킨더 등록을 받는다. 옆 동네는 딱 3일 동안만 받는다고 한다.


암튼, 내가 사는 시는 킨더에 등록을 하며 교육청에서 연락이 오는데 mother language(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가정의 자녀들은 무조건 Welcome centre에 가서 영어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거창한 테스트는 아니고 아이가 영어를 얼마나 이해하고 어느 정도의 어휘력을 갖고 있는지, 표현은 어느 수준인지를 1:1 테스트를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는 그림을 보여주며 색 이름을 물어보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할아버지는 어디 있는지, 과일 바구니는 어디 있는지 등을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테스트는 놀이와 같은 분위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테스트를 받는 아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에게도 심리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우리 큰 딸 같은 경우에는 아주 초보 실력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 아이가 과연 킨더에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나의 걱정 어린 질문에 테스트를 진행한 선생님은 나에게 아주 정확히 이런 답을 주셨다.

"Children who can speak their mother language well are very good at learning other languages, too. So don't worry about English, please teach them your mother language more. They will learn the alphabet at Kindergarten. You don't even need to teach them it before school starts."


그 날 이후로 나는 아이들의 영어를 걱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큰 딸은 약 3개월 동안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킨더 담당 선생님이 너무 걱정하여 나에게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언급하곤 했지만, 친구랑은 대화를 잘한다고 해서 나의 걱정은 반으로 접어 놓았다.


대신 혹시 몰라서 의사와 상담을 좀 받았었는데, 아이의 성향과 성격으로 기인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워낙 내향적인 아이였고, 성격 자체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자신 스스로 확실히 맞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졌다.


그 이야기에 수긍할 수 있었던 건, 어릴 때부터 보여준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딸은 서글서글한 아이들과는 다른 참 까다로운 모습을 보여줬었다.

예를 들어 도화지에 쓴 글자의 획이 틀리면 보통은 지우거나, 대충 지익 긋거나하여 수정할 텐데, 이 아이는 틀린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 종이를 다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곤 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벌써 7학년이 되었고, 지금은 맨날 한국말로 하라는 잔소리에 시달리는 중이다.


아이 넷을 키우다 보면 주위의 엄마들에게 상담을 많이 받게 된다. 보통 첫 아이를 킨더에 보내며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물어보곤 하시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2가지 있다.


1. 공립학교 사립학교 어디로?

이 질문의 답은 없다. 그건 부모가 결정할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립을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이다. 초등학교의 수준이 차이가 나봤자 얼마나 날까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것도 있지만, 공립을 가면 무료인데 굳이 돈을 내는 사립을 선택할 이유가 나에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립은 보통 종교적인 곳이 많기 때문에 규율이 더 까다롭다. 자유분방한 아이들이 많은 공립을 보내면 내 아이가 나쁜 것을 배우고 오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부모의 교육과 함께 간다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쁜 행동은 학교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충분히 배운다. 나쁜 것을 배울 만한 곳을 피하는 게 아니라 나쁜 행동을 충분히 인지시키고 옳고 그른 것을 잘 가르치면 그 아이는 나쁜 행동으로 인한 나쁜 아이가 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규율이 너무 엄격한 곳은 억압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중에 반작용으로 다른 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곤 했다.

결국 결론은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가를 결정하는 부모의 문제라고 본다.


2. 영어(알파벳이라도) 가르치고 보내야 하나?

나의 답은 "노"이다. 나는 아이 네 명 다 알파벳을 하나도 가르치지 않고 킨더를 보냈다. 그리고 네 명 다 학교를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다. 먼저 가르쳐서 보낸다고 학교 생활이 쉬워지거나 좋아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킨더 선생님은 이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기 위해 계신다. 그 선생님의 직업을 뺏지 말자.


잘 생각해 보면 만 5살 또래의 아이들의 언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어른의 입장에서 이 아이들의 언어를 보면 이해하기 힘든 순간들이 참 많다. 한국어를 하는 아이들의 말도 이해하기 힘든데, 하물며 영어를 하는 아이들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떠할까?


그러나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들의 언어는 저들끼리 통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한국어만 하는 아이와 영어만 하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만나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하면서 노는 모습.

옆에서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지만, 아이들은 언어 이해 없이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순수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에겐 걱정되는 아이지만, 그 나름의 또래 사회에서 잘 동화될 거라는 부모의 믿음은 아이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줄 거다.

3개월 동안 선생님이랑은 말을 안 하던 큰 딸이 또래 친구들이랑은 대화를 하며 놀았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와 통하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캐나다는 공식 언어가 2개인 나라라 가끔 아이를 French Immersion(킨더부터 모든 과정을 french로 수업하는 학교) 학교로 보내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도 있다.


French Immersion 학교는 영어 수업을 하는 반과 프랑스어로 수업하는 반으로 나뉘어 있어서 신청을 해서 반을 결정할 수 있다.(모든 학교가 아닌 몇 개의 학교만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나도 큰 딸을 프랑스어 반이 있는 학교로 보내고 싶어서 신청을 했는데 대기자 명단에 올라만 있었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원하는 부모들이 많아 들어가기 쉽지 않다.


이 것 또한 부모의 선택인데, 영어도 잘 못하는 아이가 프랑스어로만 수업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아이를 믿어보시고 너무 원하시면 보내보세요. 만약 아이가 힘들어하면 영어 반으로 바꾸시면 됩니다. 시켜보지도 않고 아직 해 보지도 않았는데 걱정하면 뭐합니까? 아이를 믿어보고 해 보세요. 해 보고 난 뒤 결정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일반 영어 공립학교에 보내 놓고 아쉬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허나, 우리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보면서 점점 아쉬움이 사라졌다. 이 아이들도 기본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를 배웠던 거처럼. 프랑스 수업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따로 있다.


킨더 때는 보통 알파벳과 포닉스를 배운다.

N의 사운드는 ㄴ, A의 사운드는 ㅔ OR ㅏ 등등..

이런 것을 일 년간 반복적으로 배운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내 아이가 알파벳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말자. 킨더 선생님의 역할이 알파벳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킨더에서 아이들은 함께 나누며 노는 것을 배우고 학교에서 따라야 할 규칙을 배운다. 선생님을 도와주는 리더 역할도 해보고 스스로 치우는 것을 하며 책임감을 배운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물건을 갖고 가서 아이들 앞에서 발표도 한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남의 앞에 서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킨더의 일 년은 아이들의 작은 사회 속에서 사회성을 기르는 기초를 닦는 1년인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가 남보다 알파벳을 더 빨리하고 책을 더 빨리 읽는다는 거에 우쭐할 필요가 없다.


킨더를 졸업하고 1학년이 된 아이들은 그때서야 단어라는 것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1학년 한 해 동안에 알파벳에 따라 사운드를 연결하는 것을 배우며 단어 읽는 것을 배우고 전치사나 대명사 같이 항상 쓰이는 단어들을 익히면서 1년간의 대장정 동안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4명의 아이들은 다 배움의 속도가 달랐다. 허나 평균적으로 1학년이 끝나갈 때쯤 스스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읽기에 더딘 아이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책을 즐겨한다.

우리 셋째인, 큰 아들은 1학년이 끝날 때에도 스스로 책을 읽지 못했지만, 남보다 느리게 가면서도 결국은 스스로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다그칠 필요도 없었다. 읽고자 할 때 들어주었고, 끝까지 읽었을 때 칭찬을 해 주었고 아이가 책을 읽는 기쁨을 알게 해 달라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된 아이는 chapter book도 만화도 골고루 다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을 매일매일 즐기며 지내고 있다.


https://youtu.be/k8cdOkX2FEA

1학년 막내는 매일매일 한권의 짧은 책을 학교에서 받아온다. 반복되는 단어를 계속 익히게 하는 이 짧은 책을 통해 이 아이는 글자를 스스로 읽는 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서점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좋아한다. 그림만 보는 막내도 항상 책을 옆에 두고 지낸다.


이제 1학년인 막내가 책을 읽는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은 읽는다기보다는 외우는 것에 가깝다.

항상 책에 그림만을 보고 있는 아이지만, 어느 날 스스로 한글자씩 발음하며 책을 읽을 아이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벅찬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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