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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Aug 10. 2024

시골 가는 길 - 풍경 (1)

걷거나 타거나 (17)


1.


버스를 타고 괴산까지 가는 것은 매우 멀고 힘든 길이었다.


그때는 버스가 어찌나 느리게 움직였던지, 대방동에서 괴산까지 가는 데 거의 하루 종일 걸리는 듯했다. 대방동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청주까지 갔다가 괴산으로 가서  큰아버지가 있는 지경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야 했다. 시외버스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낯설고 먼 길, 낯선 사람, 낯선 냄새, 낯선 소음으로 인해 어린 나는 시외버스를 타면 불안하고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덜컹거리는 버스. 끝없이 섰다 가면서 이어지는 정류장. 낯선 사람들이 소란하게 떠들고 오가는 버스를 서너 번이나 갈아타면서 가야 했던 곳. 언제 내리는지 모르는 채 한없이 가야 하는 듯했던 멀고도 먼 길. 대방동에서 지경 마을까지 가는 길은 그랬다.


시골 가는 버스를 타면 평소에는 맡지 못하던 여러 냄새를 맡게 되는데, 그중 나에게 가장 불편한 냄새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씹는 오징어 냄새였다. 그 시절에는 거리에서 마른오징어를 파는 사람도 많았고 그것을 사 먹는 사람도 많았다. 마른오징어는 먹는 사람에게는 맛있지만 옆에서 맡는 냄새는 좋지 않다. 특히 버스에 탔을 때 그 냄새를 맡으면 멀미를 느끼면서 토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불행한 사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벌어졌다. 시외버스를 탄 후 곧 자리가 나서 아버지는 나를 앉혔는데 하필 옆에 있는 사람이 마른오징어 다리를 먹고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매우 지긋하게 코를 자극적으로 찌르면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졌다. 추운 겨울날이라 버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갇힌 공간에서 풍기는 오징어 씹는 냄새는 고문과도 같았다. 침 묻은 오징어 다리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너무 역겨워서, 나는 그 사람이 제발 오징어를 빨리 먹어 치우기를 바라면서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무조건 참았다. 그러나 그는 아주 천천히 오징어다리를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고 있을 뿐 빨리 먹어치울 기색이 없었다.


버스가 안양을 지나갈 때 나는 속이 메슥거렸고 드디어 멀미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듯했고 현기증이 나는 듯도 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릴 수 있을까 해서 배를 쓰다듬기도 하고 죽을힘을 다해서 토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저히 참기 어려워서 수원에 도착할 때쯤엔 토할 것만 같았다. 기진맥진한 상황에 이르러 나는 앞에 서 계신 아버지 바지를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아버지, 나 토할 것 같아요.”

“지금? 못 참을 거 같아?”

“못 참겠어요.”

힘이 쭉 빠진 내 얼굴을 보고 아버지는 약간 당황했지만 금세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내 얼굴 앞에 내밀었다.

“여기서 내리지는 못하니까, 정 못 참겠으면 여기다 토해.”


불행 중 다행인지, 아버지는 내가 멀미할 것을 대비해서 작은 비닐봉지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사실 속이 메스껍다고 해서 시외버스에서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청주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요금도 비싼데 멀미할지도 모른다고 낯선 곳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큰 가방도 가지고 계셔서 그것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내가 불현듯 토할 것에 대비해서 내 입을 봉지로 가렸다. 나는 마치 산소마스크라도 쓴 것처럼 비닐봉지로 입을 가렸다. 비닐 안에서 낯선 냄새가 풍겼다. 이건 무슨 냄새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갑자기 위에서 식도를 거쳐 뜨거운 기운이 거슬러 올라왔다. 옆사람이 씹던 오징어에 못지않은 냄새를 느끼면서 나는 비닐봉지 안으로 멀건 음식을 토했다. 그 순간, 언뜻 막힌 것이 뻥 뚫렸다는 생각이 났지만, 나를 바라보는 옆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버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덜컹거리면서 가고 있었고, 나는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 잽싸게 내 입가에서 비닐봉지를 떼어내고 주머니에서 꺼낸 휴지로 내 입가를 닦았다. 이어서 곧바로 봉지를 꼭 묶은 후에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한 번 토하고 나면 몸에 힘은 없었지만 버스가 청주에 도착할 때까지 참을 만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버스는 덜컹거리면서 지루하게 달렸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버스에서 토한 것은 내 일생에 딱 한 번이었다. 때로는 버스에서 또 토할까 겁을 내기도 했지만, 멀미 증세를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설사 멀미 기운이 좀 있다 해도 잘 참으면서 토하지 않고 수원까지만 통과하면, 이상하게도 멀미 기운이 저절로 잦아들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버스를 타고나서 내가 버스의 흔들림과 낯선 냄새에 충분히 적응할 때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듯했다.



2.


나는 버스나 지하철 내부에서 술 취한 사람이 토했거나 토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는데, 중3 때 버스에서 본 것은 너무 특별해서 지금까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느 가을 늦은 밤이었다. 노량진 전철역에서 내려서 대방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술에 잔뜩 취한 중년 남성도 함께 탔다. 그는 버스에 오를 때부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비틀거릴 정도로 취해 있었다. 버스에서 그는 앉을자리를 찾았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그는 버스 천장의 손잡이를 잡은 채 어떤 아주머니 옆에 섰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가슴에 껴안고 있는 큰 가방에 고개를 숙인 채 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누군가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그는 다리를 휘청거리면서 몸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저러다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나아가 저러다가 그가 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면서 내 마음은 더욱 조마조마해졌다. 그는 버스 천장에서 늘어진 손잡이를 잡고 있었지만 두 다리가 모두 풀려서 버스가 서거나 출발할 때 금세 넘어질 듯 심하게 비틀거렸다.


노량진역에서 대방시장 앞까지는 겨우 네 정류장이었는데, 나는 애초에 그로부터 떨어져서 출구 가까이에 섰다. 버스가 섰다 가기를 반복할 때마다 그의 몸이 심하게 비틀거렸으므로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매우 불안해 보였다. 그들은 언제든 저 사람이 자신에게 쓰러지거나 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사람과는 올바른 대화가 되지 않으며, 그가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따질 필요 없이 무조건 재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힘겹게 손잡이를 잡고 끅끅거리던 그는 한동안 버스의 움직임에 덩달아 비틀거리더니 결국 느닷없이 토하기 시작했다. 토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토사물이 위에서 입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다. 불현듯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멀건 토사물이 희미한 버스 천장 등의 빛에 반사되는 듯했다. 그는 얼떨결에 재빨리 손을 들어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지만 실제로 입을 막지는 않았으며, 그의 입에서 분수처럼 튀어나온 액체가 잔뜩 섞인 토사물은 허공을 가로질러 버스 바닥으로 떨어졌다.


출입구 옆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나는 그의 입에서 별안간 튀어나온 묽은 토사물이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것을 마치 느린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보았다. 그가 토하면서 얼굴을 돌리는 바람에 다행히 대부분의 토사물은 버스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불행하게도 일부는 그의 앞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의  머리와 어깨 위에 먼저 떨어졌다. 아주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자고 있었다. 토사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주머니의 파마머리에 걸려 있는 꼬불꼬불한 라면 가닥들이었다. 라면 가닥들은 아주머니의 머리뿐 아니라 어깨에도 걸려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깜짝 놀라서 재빨리 우르르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모두 그 밤의 적막과 졸음에서 갑자기 깨어난 것처럼 허둥거렸다.


술 취한 남성은 자신이 토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여전히 손잡이를 잡은 채 비틀거렸다. 그런 사태는 무조건 피하고 볼 일이다. 누군가 그 남성을 야단쳐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버스 안 사람들은 술 취한 남성이 토하는 것이 다 끝난 것인지 아니면 또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두려움에 떨면서 최대한 그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승객들이 또다시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떨고 있는 사이에, 오직 운전기사 아저씨만 잔뜩 성이 나서 운전대를 놓지 않은 채 욕하면서 씩씩거렸다.

“야 뭐 해, 냄새난다. 빨리 바닥 닦아.”


버스기사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 것에 크게 당황한 버스 안내양에게 냄새난다고 빨리 버스 바닥을 청소하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 당시에는 버스에서 그렇게 토하는 사람이 많아서 버스 안내양이 있는 출입문 근처에 언제나 플라스틱 양동이와 대걸레가 준비되어 있었다. 버스 안에 토사물 냄새가 풍기자 사람들은 모두 창문을 열었다. 버스 안내양이 흔들리는 버스에서 바닥을 닦으려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에 나는 불쌍한 아주머니의 머리에 걸려 있는 라면 가닥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저걸 누가 떼어내 줄 수 있을까.


그런 소란 속에서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자고 있었다. 누군가 그 아주머니에게 닥친 불행한 사태에 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한 걸음도 떼지 못했고 곧 내릴 때가 된 것에 안도했다. 버스는 곧 대방시장 앞 정류장에 도착했고, 나는 어수선한 버스에서 내렸다.


늦은 밤,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불행한 사태는 아주 우연히 발생한다.

그 사태는 불행에 처한 사람들의 도덕성이나 인격이나 노력과는 별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재수' 또는 ‘운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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