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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Aug 11. 2024

시골 가는 길 - 풍경 (2)

걷거나 타거나 (18)

3.


청주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지경으로 가는 길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꽝꽝 얼어붙은 고갯길을 힘없는 버스가 오르고 있을 때였다. 꼬불꼬불한 산비탈 도로에서 만약 버스가 미끄러진다면 대형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힘들게 헉헉거리면서 올라가던 버스가 갑자기 요란한 엔진 소리만 내기 시작했다. 버스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자 희미한 어둠 속에서 졸고 있었던 승객들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서 불안감에 젖었다. 정월 초 겨울밤에 버스는 첩첩산골 캄캄한 시골 산허리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운전기사가 투덜거리면서 애를 쓰는 듯했지만 버스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젠장, 바퀴가 헛돌아요. 웅덩이에 빠진 거 같습니다.”


버스 기사는 불안해하는 승객들에게 버스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적어도 버스가 고장 난 것은 아니었다. 얼어붙은 눈길에서 버스 바퀴는 작은 웅덩이에 빠져서 헛돌고 있었다. 버스 엔진에서 굉음이 나고 커다란 바퀴가 실속 없이 빠르게 헛돌기만 한 후 운전기사는 승객들에게 모두 내려서 버스를 밀어보라고 말했다. 어두운 밤에 졸다 자다 깬 승객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웅성거리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졸다가 깬 나도 아버지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아버지는 버스를 밀기 위해 가야 한다면서 나를 길가에 남겨두었다. 산비탈을 돌아가는 외딴 도로에는 눈이 별로 덮여 있지 않았지만 잔뜩 얼어서 딱딱하게 느껴졌다. 졸음에 취해 있던 나는 갑작스레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추위를 느끼면서 버스를 미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영하의 차가운 밤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정월 초 겨울밤이었지만 다행히 바람은 매우 잠잠했고 새카만 하늘에서 밝은 달만 흰 눈으로 얼어붙은 대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산에서 바라보는 대지는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먼 산들은 약간의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버스를 밀면서 구호를 외치고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다.


거대한 검은색 도화지 같은 하늘에는 희미하게 떨리는 성긴 별들만 총총 빛나고 있었다. 나는 스산한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 낯선 풍경과 대지를 무겁게 적시고 있는 적막과 외로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산 아래로 가까운 곳에는 하늘에서 조명처럼 빛나는 달빛 아래 흰 눈 덮인 허허 들판이 깔려 있었다. 더 먼 곳으로는 짙은 어둠이 안개처럼 깔려 있어서 그 어디에 사람 사는 집 하나라도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른들이 힘을 합해서 여러 번 밀어낸 끝에, 버스는 다행히 미끄러운 웅덩이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달밤에 승객들은 함께 공을 들여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얼굴로 손을 털면서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각자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버스는 다시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덜컹거리면서 고갯길을 힘들게 넘어갔다.


버스에 다시 타서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산비탈 아래로 보이는 대지를 다시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어두운 풍경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저 멀리까지 희미하게 드러났다. 산 정상으로 오를수록 비탈이 더욱 가팔라져서 나는 무서움을 느껴졌다. 버스가 지나온 휘어진 도로를 보니 그 아래로는 도저히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였다.


창문을 통해 그 풍경을 보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만약 버스가 이렇게 가다가 어디에선가 미끄러져서 산비탈 아래로 떨어진다면, 버스는 어둠 속으로 한없이 굴러 내려갈 것만 같았다. 낭떠러지 밑은 캄캄하기만 해서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지만, 버스가 굴러 떨어진다면 분명히 대형사고일 테고 승객들이 무사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러나 그런 상상도 잠시였다. 나의 눈꺼풀은 다시 무거워졌다. 어린 나는 눈을 비비면서 아버지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이내 졸기 시작했다.


그 차가운 겨울밤에 시골 버스는 어둠의 바닷속으로 하염없이 헤엄치듯 달려갔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흙길 위에서 버스는 덜컹거리면서 달렸지만, 나는 마치 버스가 물속에서 넘실넘실 유영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골집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해서, 나는 과연 그 캄캄한 밤에 큰아버지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저 졸리기만 한 나는 아버지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버스가 속히 지경에 다다르기만을 꿈꾸었다.




4.


중1 때쯤이면 남자아이들은 으레 학급 내부에서 대충이라도 주먹 서열을 정하려고 한다. 서열을 정하기 위해 아이들은 실제로 치고받으면서 싸우기도 했지만, 그것은 만만해 보이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대부분은 쌈박질을 하지 않는다 해도 겉으로 보이는 덩치나 말하는 기세만으로도 서열을 정할 수 있었다.


한 반에 7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최상위 주먹은 정말로 덩치가 크고 사나워 보이는 아이들이 차지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로 축구부 멤버들이 차지했다. 축구부 아이들은 매일 축구를 하다 보니 대체로 날쌔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꼭 싸움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상관없이 그들은 오직 축구부라는 이유만으로도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의 멤버들이었기 때문이다. 축구부 멤버를 건드리는 것은 그 조직에 덤비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간주해야 했다. 나머지 아이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싸움 전력과 아이들 사이에 펴저 있는 소문이 중요했고, 그다음으로는 대충 눈짐작과 덩치와 기세와 말싸움 등으로 서열이 정해졌다.


그때 우리 반에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있었다.

쌍둥이 형제 중 다른 한 명은 옆 반에 있었는데, 우리 반에 있는 아이는 동생이었다. 그들의 출생 시간은 겨우 한 시간 차이였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일생 동안 형과 동생 사이로 정해진 것이다.


쌍둥이 아이는 우리 반에서 대충 중상위 서열에 속했다.

그런데 그는 서열이 좀 낮다 해도 최상위 서열 아이들에게 기가 죽지 않았다. 주먹이 더 센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서열을 유지하긴 했으나 그 애를 함부로 건드리거나 다투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그 애와 싸움이 붙으면, 즉각 그의 다른 쌍둥이 동생이 뛰어왔기 때문이다. 쌍둥이 형제는 서로 분신과 다름없어서 학교에 올 때나 집으로 갈 때나 늘 함께 움직였다. 그러니 주먹이 센 아이들도 쌍둥이 형제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은 핏줄이 주는 놀라운 효과다.

쌍둥이가 그런 것처럼 형제자매도 그렇다.

그들은 웬만하면 서로를 분신처럼 여기도록 진화되었다.




시골에 갔을 때 나는 큰아버지를 보고 속으로 매우 놀랐다. 당신도 삼촌이나 외삼촌, 이모나 고모가 있으면 그들의 얼굴이나 행동을 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처럼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당신의 어머니나 아버지와 어딘가 매우 비슷하게 생겼고 비슷하게 말하고 비슷하게 행동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지 않은가.


서울에서 아버지만 바라보던 나는 시골에 가서 아버지와 매우 비슷하게 생기고 비슷한 말버릇을 가지고 있는 큰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매우 신기하게 느꼈다. 서울에 살면서 나는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닮은 큰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낯설고도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보다 나이 들어 보이지만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 어른. 그런 분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둘째 큰아버지를 보았을 때도 그랬다. 이미 첫째 큰아버지를 보고 놀랐었으므로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처음 보았는데도 그로부터도 역시 낯선 친근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달리, 그분들은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셨던 분들이라 아버지보다 얼굴이 검게 그을렸고, 손 마디마디가 아버지에 비해 거칠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생김새와 목소리, 그들의 몸짓과 얼굴 표정, 말하는 방법, 말없이 앉아 있는 태도까지 모두 아버지의 그것과 조금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했다.


조금 더 따져서 살펴보면, 아버지는 서울에 살면서 말과 행동이 더 빨라졌다고 할 수 있다. 충청도에 가서 보니, 사람들은 모두 말이 매우 느렸고, 말과 말 사이에 긴 침묵이 자주 존재했다. 그들의 대화 사이에 존재하는 긴 침묵에 나는 종종 참기 힘들 정도로 답답하게 느꼈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들의 대답은 놀라울 만큼 더디게 나왔고, 물었던 사람도 느린 대답을 기다림에 익숙해 있었다. 대화를 할 때 그들의 반응 속도는 너무 느려서,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속 터져서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듯했다. 말의 의미도 도대체 정확하지 않은 듯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상식이네… 거시기 아들인가 하는 애 있자녀… 그 애가 이번에 어디 핵교에 입학했대?”

“... 아, 상순이 오래비? 그 애 오래비가 하난가 둘인가 모르것네.”

“... 아… 거시기 오래비가 둘이잖아. 그중에 큰 애 말여…  그 애한테 아들이 있자녀. 이번에…  거시기 핵교 들어간다고 하잖았어?”

“... 그렇지. 그 애가 이번에 핵교 간다고 했지 아마. 어느 핵교 간다고 했드라… 나도 잘 모르것는디유.”


이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거의 1분도 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말이 느린 데다 대화 중간에 침묵하고 생각하고 때로는 다른 행동을 하거나 되묻는 시간이 있어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대화 속도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느린 대화가 아무 문제도 아니다.


큰아버지는 길고 긴 겨울밤 방 안에서 길이가 내 팔보다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계셨다. 그는 매우 자주 아랫목에 양반다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화로 안이나 빈 벽이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가 그렇게 하고 있을 때 나는 그분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쭈어본 적은 없다.


큰아버지는 가만히 있다가 이따금 돌연히 곰방대에 담뱃잎을 채워 넣기도 하고, 곰방대에 있는 재를 화로에다 털어내면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셨고, 그 사이사이에 아주 이따금 중얼중얼 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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