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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해수욕장의 일몰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26일 (2)

by memory 최호인

3. 다대포해수욕장의 일몰


다대포해수욕장은 부산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이 나의 다음 일정이었다.


현대미술관에서 나온 나는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시 하단역으로 갔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10월 말, 일몰은 5시 반 정도였으므로 나는 마음이 약간 급했다. 30분 정도 일찍 움직여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동 시간과 전시회 관람 시간이 오래 걸렸으므로.


지하철 1호선의 서남쪽 마지막 정거장이 다대포해수욕장역이다.

오늘 오후 내내 나는 일부러 해가 질 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가고자 했다. 역에서 내린 나는 거의 달리다시피 해변공원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마침 부산정원박람회가 열렸기 때문에 하얀 부스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일몰 시간이 되면서 이미 모든 행사는 끝난 듯 보였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이 박람회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열리는 것이었는데, 내가 오기 바로 전에 개막식이 끝났던 듯했다.


해변공원은 바닷물을 수로처럼 공원 내로 끌어들여서 매우 아름답게 꾸며진 곳이다. 그 운하에다 각종 전구 장식을 설치해 놓았으므로 특히 밤에는 더욱 예쁘게 보였다. 시간이 많았다면 나는 해변공원 아래 최남단 바닷가에 있는 몰운대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카카오맵에 따르면 역에서 겨우 25분 정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바다 건너 서산 바로 위에 붉은 해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만약 내가 몰운대까지 가려고 한다면 해는 곧 지고 말 것이고, 자칫 일몰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곧바로 다대포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일몰 직전의 마지막 5분.


나는 다행히 바다 건너 서산 위에 있는 거대한 붉은 해를 볼 수 있었다. 해변공원 끝자락에서 파도가 다가서는 물가까지 가려면 거의 1백 미터 정도는 걸어야 할 듯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아마도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모래사장을 걷기도 하는 듯했다. 내가 조금 일찍 왔다면 나도 모래를 밟고 걸어서 그곳까지 갔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있다고 해서 내가 서 있는 곳보다 일몰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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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직전에 해는 놀랍도록 커 보이고, 이어서 순간적으로 빠르게 진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현상이었다. 커다란 원으로 빛나는 붉은 해는 산으로 다가서면서 조금씩 작아지는 듯했는데, 산과 가까워질수록 색깔은 점점 더 붉어졌으며, 이윽고 진홍빛을 띄었다.


빨갛게 불타는 듯한 해는 수줍은 듯 빠르게 작아지고 있었고 안으로 오므라드는 듯했다. 그러는 동안 파랗던 하늘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산 정상으로 점차 어두운 잿빛이 몰려드는 듯했다. 그 빛들은 사실은 이미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돌연히 하늘 저편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모여들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서산 바로 위에 걸린 진홍색 태양은 너무 작아져서 전혀 뜨거워 보이지도 않았고 두 손가락으로 집으면 부서질 듯한 작은 새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토록 작고 힘없어 보이는 해는 마치 산 아래에서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갑자기 산 뒤로 빨려 들어가는 듯 보였다. 마지막 1분 동안 그랬다. 그때 조금이라도 한눈을 판다면 당신은 조금 전까지도 보였던 태양이 갑자기 하늘에서 사라졌음을 깨닫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가 산 뒤로 모습을 감춘 후에 산 위에는 마지막 붉은 기운이 감돌았고, 그 양 옆으로는 잿빛 어둠이 더욱 성큼 다가섰다. 성스럽고 신비로운 태양의 하강식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그것은 매우 장엄하기도 하고, 감격적이기도 하고, 서글프고 쓸쓸한 감정을 자아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밝은 빛을 주고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던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태양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우주와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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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아서 내일 아침에 다시 태양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옛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의문에 찬 경이로운 현상을 두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상상했을지 모른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신이 저토록 뜨겁고 강렬하고 밝은 태양을 잡아당기고 있다고 말이다. 누군가 저 태양을 재빠르게, 정말로 아주 재빠르게 끌고 하늘에 나 있는 보이지 않는 길로 끌고 가고 있다고 말이다.


과거에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말과 마차였으므로, 옛사람들은 태양을 끌고 가는, 보이지 않는 말이나 마차가 있다고 상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늘은 인간이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했으므로 그곳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말이나 마차 또한 거대하면서도 날렵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의 능력과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를 신이라 불렀을 테니, 태양을 끌고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주체를 태양의 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신이 어떤 이유나 사명으로 태양을 날마다 같은 경로로 끌고 도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가장 잔인하고 처절한 형벌일 수도 있고, 인간과 자연을 위한 가장 고귀하고 특별한 수고이고 자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양의 열과 빛은 인간과 자연에게 무료로 무한하게 제공되고 있으므로 태양의 신에게 인간은 한없는 고마움을 표시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가끔은 심술을 부려서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게 인간을 혹사하는 태양의 신에게 인간은 한없는 두려움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그로써 자연스럽게 태양은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완고하기는 했지만 옛사람들의 그러한 상상력이 무참히 깨지고, 우주와 자연의 섭리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오늘날에도 우리는 태양을 그저 활활 타오르는 물질 덩어리로만 보기를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거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파워가 존재하고 그 파워가 우리의 길흉화복을 이끌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무도 감히 태양을 길 위의 돌 보듯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오늘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본 석양은 어딘가 고독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우울한 기분으로 바라본 해 지는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난 예전에 해가 지는 걸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봤어요!”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지.
“누군가 석양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아주 슬프다는 거예요.”
나는 물었다.
“그럼 석양을 마흔네 번 봤다는 그날 많이 슬펐던 거였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해 지는 풍경을 마흔네 번이나 바라보았던 그날 그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혼자 살면서도 마냥 슬프기만 한, 그런 날이 불현듯 오기도 할까.

작은 혹성을 빙빙 돌면서 그렇게 석양을 바라보면 그의 슬픔이 조금씩 사그라들긴 했을까.


다대포해변에서 보는 석양이 주는 고독과 슬픔은 그리하여 대기와 바다를 가르는 그 붉고 흐릿한 광경 속에서 어린 왕자를 떠올린 나에게도 알 수 없는 고독과 슬픔을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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