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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미술관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26일 목 매우 맑음 (1)

by memory 최호인

1. 박물관 친구


정오에, 부산에 있는 유일한 친구인 K를 만났다.


그는 현재 부산에 있는 한 박물관의 관장이다. 5년 전에 그를 만났을 때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고위 관료였다. 그는 거기서 2년 전에 퇴직하고 나서 잠시 쉬다가, 1년 전부터 부산으로 와서 일하게 됐다.


서울에 있던 내가 부산으로 와서 한 달간 살게 된 데는 그의 도움이 컸다. 그는 나를 위해 서면에 가서 부동산중개업자를 만났고, 내가 묵을 숙소를 직접 보기도 하면서 나를 대신해서 계약을 해주었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그런 일은 귀찮은 것이라 피할 수도 있었지만, 성격 좋은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하철 남포역 입구에서 만난 우리는 매우 맛있는 샤부샤부 식당으로 갔다. 친구 K가 나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묻길래, “샤부샤부”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부산에는 샤부샤부 식당이 많지 않았다. 지난 한 해 동안 그는 부산에서 한 번도 샤부샤부 식당에 갔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아무거나 먹자. 샤부샤부 아니라도 괜찮아”라고 내가 말했지만, 나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해주고 싶어 하는 그는 기꺼이 인터넷에서 샤부샤부 식당을 찾았다. “생각해 보니까, 부산에는 이상하게 샤부샤부 식당이 없더라. 나도 그건 미리 생각해 본 적이 없네.”라고 그는 말했다.


그 역시 부산에 온 지가 1년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부산에 샤부샤부 식당이 왜 많지 않은지, 또 부산 사람들이 샤부샤부를 안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부산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고기를 주로 먹는 샤부샤부 식당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추측했지만, 그것 역시 확인할 길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남포동 뒷골목의 어느 건물 3층인가에 있는 샤부샤부 식당으로 갔다. 이름은 잊었지만 우리는 매우 맛있게 식사했으므로, 그 집을 남포동의 ‘맛집’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서울에 비하면 가격은 저렴했고 고기는 무한리필이었으며, 버섯과 채소 외에 떡볶이 등 각종 음식도 진열되어 있었다. 장기 여행 중에 영양 보충 시간이라고 생각한 나는 배부르게 먹고자 했지만, 어느새 먹는 양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많이 먹기는 어려웠다. 이럴 때는 기분 같아서는 사나흘 치 정도 먹고 나서 그다음에는 한동안 안 먹어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인간의 몸은 그럴 수 없다. 이런 데서도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식사 후에 커피도 마실 겸 그는 나를 자신이 일하는 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의 사무실은 매우 넓고 근사했다. 부산근현대역시박물관은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방문할 당시에는 그중 한 동만 개관되어 있었고, 다른 한 동은 내부 공사 중이었다. 내가 들어갔던 건물은 과거에 동양척식회사 건물이었다고 한다. 공사는 올해 말까지 이어지고 2024년 초에 모두 개관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내가 부산 여행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에게 부산의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주고 싶어 했다. 나는 그 당시 부산에서의 여행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매일 밤마다 적어서 곧바로 단체카톡방에 올리고 있었다. 그도 단체카톡방에서 내 글을 읽고 있었으므로 나의 부산 여행 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울러 박물관 기념 컵도 주고 싶어 했다. 그의 호의는 매우 고마웠지만, 나는 배낭에 빈 공간이 없으며 짐이 무거워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나 숙소에서 사용하기 위해 컵만 받았다. 그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한 후 나는 그가 타 준 따뜻한 둥굴레차를 내 텀블러에 옮겨 담고 오후 2시 반이나 되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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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현대미술관


나는 다시 남포동역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을숙도에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가 낙동강 직전에 있는 하단역에서 내렸으며, 거기서 버스를 타고 드디어 낙동강을 건넜다. 낙동강은 한강처럼 매우 넓었고 수량은 풍부해 보였다. 다만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한강과 달리 낙동강은 부산의 서쪽 외곽에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한강가에는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건설됐지만, 부산의 낙동강가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것이 낙동강을 더욱 자연 그래도 보존하는 결과를 빚고 있는 듯하다.


을숙도는 남해와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 퇴적물이 쌓여서 이뤄진 섬이다. 토사가 퇴적되어 1920년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대동여지도에는 을숙도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그 섬에 있는 철새 도래지를 보고 싶었지만,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는 듯했다.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서의 을숙도의 위상은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퇴색했다. 1987년에 낙동강하굿둑을 건설하고, 섬 전체를 공원으로 만든다면서 갈대숲과 습지를 훼손했으며, 여러 건물들을 지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철새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이제 와서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인공습지를 조성하기도 하지만 이미 떠난 철새들은 아직도 예전처럼 오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에 아무 건물도 없어서 그런지, 현대미술관은 밖에서 보면 대단히 우람해 보인다. 1층과 2층에 전시실이 있었는데, 미술관은 현재 주로 환경 관련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로 설치물과 비디오가 많았다. 기후위기와 땅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개발의 폐해를 주제로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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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보았지만, 박물관에 가면 눈에 잘 안 띄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시실에서 아주 가끔 관객들이 느닷없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작품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직원들 말이다. 어린아이들이 오기도 하고 철없는 어른들이 오기도 하므로 작품들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관객이 많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거의 할 일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단지 관객이 고의로 또는 모르고 설치 작품을 건드리거나 파손하는 일이 없도록, 전시실로 들어오는 관객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전시실 내부에서 서서히 돌아다니거나…


하여간 그들은 관객이 너무 없어서 오히려 힘들어 보였다. 온종일 할 일이 없이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것은 얼마나 고된 일일까. 그래도 작품을 잘 보관하고 전시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역할은 필수불가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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