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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Mar 18. 2021

비망록 - 문정희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비망록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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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엘보 통증이 꽤 오래갑니다.
푹 쉬어야 낫는다 하는데, 살면서 오른팔을 안 쓸 일이 있기나 할까요.
한의원을 갔더니 붓글씨를 쓰는 일도 영향이 있다 하길래, 글씨를 멈출 수는 없는 일이고 그저 이렇기 가지고 오래가기로 했습니다.

팔꿈치에 침을 맞고 누워있다가 문득 문정희 님의 비망록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그저 침 하나 꽂혀있는 팔을 보며 돌처럼 아프다며 호들갑 떨 일은 아니겠지만,
가만히 누워 침이 전해주는 통증이 팔의 통증을 가라앉혀 주는 걸 느껴 봅니다.
우리네 삶도 그럴까요.
사랑은 그렇게,
별처럼 내 가슴에 날아와 박히고,
아픈 가슴은 저리지만,
그 통증이 사라질 무렵, 우리는 또 그리 생의 한 테두리를 넘어가고 있는가 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또 우리가 되어갑니다.
한 꺼풀 한 자락 우리의 모습이 덮여가며
비망록 한 구석에 채울 저린 가슴 한 구절 써보면서,
그렇게 또 가슴의 상처 보듬어 보나 봅니다.

조용한 저녁,
침 맞고 나온 팔꿈치를 휘휘 돌려보며,
채워 볼 비망록의 한 구절을 생각해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건강한 하루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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